대안세상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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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상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 백창욱
  • 승인 2019.12.1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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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19. 12. 8) 대림절 두 번째 주일

마태 3:1-12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진밭 기도 999일되는 날, 여느 때처럼 사드불법기지 앞에서 오후 평화행동을 했습니다. 소성리에서 매일 아침과 오후,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치 않고 하는 고정일과입니다. 천일기념으로 원불교 교무님과 교도들이 많이 왔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구호를 하는데, 한 분이 “미국은 회개하라,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원불교인이 성서말씀을 인용해서 모두가 웃었습니다. 저는 그 구호를 들으면서 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회개와 심판은 기독교만의 개념이 아니구나 하는 통찰입니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처음 이 말을 한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냥 광야의 소리입니다. 이를 볼 때, 회개와 심판은 어느 시대, 어느 종교와 관계없이 썩은 질서를 주무르는 세력을 향한 경종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암시합니다. 본문 분량이 열두 절입니다. 그런데 7-12절까지는 전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를 향한 심판예고입니다. 본문의 절반이 기득권세력을 향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즉 요한이 던진 회개와 심판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주류세력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단서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이 두 세력은 일세기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기득권 집단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두 집단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매우 심한 욕을 퍼붓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에 의지하여 이스라엘의 모순을 변화하기는커녕, 모순에 기대어 욕망을 채웠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향해 가차 없이 비판합니다. 그리고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한 심판을 할 것을 말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11절) 어떤 능력이냐면, 더 큰 심판을 할 능력입니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있으니,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12절) 농부가 최종적으로 알곡은 곳간에 두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듯, 예수는 최종적으로 사람세상을 깨끗이 하실 분입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예수를 막연히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요한이 예고한대로 예수가 사람세상을 깨끗이 해 주실 것을 강렬히 고대해야 합니다. 

요한이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게 던진 말씀은 오늘날, 그대로 기독교파에게도 해당합니다.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우리는 예수 믿고 천국 간다’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천국백성을 만드실 수 있다.” 
기독교파는 값싼 복음에 기대어, 기득권의 단맛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순을 혁파하여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일은 전혀 안중에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 이익을 구할 뿐입니다. 주류 기독교파는 그들이 맞이한 예수가 심판주 예수인 것을 뒤늦게 알고 어두운데 쫓겨나 가슴을 칠 것입니다. 기독교파에 속하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아무 소용없음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입니다. 

진밭교 천일기도 날 기도회 때, 원불교에 대한 소감을 말했습니다. “고요히 수행만 하던 원불교를 사드철회투쟁의 최전선으로 이끌어낸 것은 정말 신의 한 수다. 요즘 걸핏하면, 문재인대통령이 내린 결정을 신의 한 수라고 치켜세우는데, 원불교야말로 사드철회투쟁 대오에서 신의 한 수다. 소성리가 원불교 성지일 줄이야. 같은 종교인으로서 말하자면, 한국에 있는 종교 중에 사드철회라는 중차대한 소명을 일관되게 끊이지 않고 성실하게 지켜 나갈 종교는 원불교뿐이다. 그분들의 삿되지 않은 진정성이 아니면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다. 만일 다른 종교였으면, 천일이 되기도 전에 다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사드철회가 한국의 주권문제이니만큼 한국에서 발생한 원불교의 힘으로 물리치는 게 종교와 역사의 정통성으로 봐도 백 번 마땅하다. 미제를 물리치는 데 미제종교인 기독교가 물리칠 리는 없지 않은가. 좋으나 괴로우나 원불교가 감당하는 게 마땅하기에 이 소명이 주어졌다고 믿는다.” 

문자주의 기독교인은 원불교를 높이 평가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특히 요즘 들어서, 미제종교인 기독교를 통렬히 반성하고 결별하고 우리식의 신앙을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신앙도 삶의 자리에서 나옵니다. 어차피 미국신자도 그들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고유한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절대로 우리와 같은 정서를 가지지 못합니다. 우리의 분단현실,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우리 민족의 통한의 역사, 우리 민족 분단의 제일 원인이 미국인 것 등을 아는 미국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소미아 종료임박해서 미국 의회가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하면 안 된다는 결의안을 낸 것만 봐도, 미국은 어디까지나 자기들 이익이 최우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우리식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신앙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해야 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은 무엇인가? 이사야는 요한의 등장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광야는 예루살렘에 대한 대안입니다. 예루살렘은 기득권의 아성입니다. 도저히 소망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성 멸망을 앞두고 그 도시를 탈출해야 하듯이, 우리는 대안세상을 찾기 위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광야의 소리를 생산하고 전해야 합니다. 광야의 소리는 주류가 생산하는 도시의 소리에 대한 거부이고 대안입니다.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기다리며, 그 분의 길을 닦기 위해 광야의 소리를 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가 가실 길을 닦아야 합니다. 대림절 주님을 기다림은 광야의 소리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외롭고 황량한 바람소리가 싫어서 광야를 피한다면 도시의 운명이 우리를 포획합니다. 기쁘게 광야를 감당하십시오. 광야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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