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잃은 사과나무와 우리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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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잃은 사과나무와 우리의 고통
  • 박병상
  • 승인 2019.11.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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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을 포함해 유기농업은 힘겹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에 소백산에 갔습니다. 점점 나이들어가는 선배의 과수원에서 사과 따는 일을 도우려 했는데, 별 도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사과를 따면서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주위 과수원의 기형적 나무들과 인간 탐욕의 일면을 보게 되더군요.

사다리가 전혀 필요 없게 가지를 수평적으로 늘여놓았는데, 낙지를 거꾸로 늘여뜨린 형상이라고 할까요? 커다란 사과들이 가는 가지마다 불안하게 달렸습니다. 하지만 줄기 대신 올라선 철기둥이 철사로 가지들을 잡고 있더군요. 많은 투입을 요구하는 사과 공장을 들여다 본 기분이 들었습니다.

온난화로 소백산 아래의 영주와 풍기는 병충해가 빈발해 사과를 포기했다는데, 소백산은 아직 괜찮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과는 포천 이북으로 주산지를 옮겼습니다. 머지않아 북한 쪽으로 이동할 텐데, 우리의 대책은 무엇일까요? 땅속 미생물 제거한 온실에서 석유 펑펑 태우며 열대과일을 심자고 농민 꼬득이는 농정은 아니겠지요?

돌아오며 들린 휴게소에서 바닥까지 시뻘건 사과를 '내고장 명물'이라며 팔더군요. 유기농 사과를 딴 제 눈에 화상을 입은 모습이지만, 잘 팔립니다. 저는 사다리에 올라 사과 따는 일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만. 생각이 깊어지더라구요. 그 생각을 <작은책>에 기고했고, 그 글을 제 블로그 링크로 잇습니다.

과수원을 포함해 유기농업은 힘겹다

강원도의 설악산에서 경기도 포천을 거친 단풍이 남쪽 산하를 거침없이 붉게 물들이던 10월 마지막 주말에 소백산을 찾았다. 국립공원 경계선 바로 아래에서 사과를 따려고 선배 과수원을 방문한 것인데, 아직 소백산 단풍은 무르익지 않았다. 대신, 푸른 기운을 잃어가는 산기슭의 과수원들은 붉은 사과를 가느다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은 선배는 한동안 수감 생활을 감당해야했는데, 역사를 전공하고 교단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원칙을 강조하는 연구와 강의에 부담스러워하는 학교를 포기하고 연고 없는 소백산에 들어온 건데, 유기농을 고집하는 고학력 농사꾼을 반기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농약을 치지 않아 자신의 과수원에 해충이 들어온다고 불만인 이웃은 집을 잇는 도로를 뜯어내는 횡포를 부렸지만 일손이 급할 때마다 찾아오는 후배들 덕분에 견뎌왔다고 칠순을 훌쩍 넘긴 선배는 고마워했다.

올해 태풍이 잦았지만 주위 과수원과 달리 세찬 바람에도 사과는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뿌리가 깊은 나무들이 건강하기 때문일 거라 짐작한 선배는 햇빛 아래 150일 정도 자라야 사과 맛이 가장 좋다고 귀띔했다. 그럼 이번 추석 차례상에 올라온 사과는 햇과일이 아닌가? 아내는 되도록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던데, 조생종이었나? 설익은 느낌이었는데 현장에서 배어 물은 선배의 사과는 맛이 기막혔다. 아래까지 온통 새빨갛지 않아도 깊은 향미를 선사했다. 모처럼 땀 흘린 육체노동의 효과만은 아니었다.

이맘때면 바람이 모질지 않아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떨켜가 할 일 마친 잎사귀를 나뭇가지와 분리하는데, 사과도 마찬가지인데, 요즘은 달라졌다. 당도가 높아진다는 신호를 붉게 보내면 신호를 놓치지 않은 동물이 겨울을 견디려 충분히 먹고, 동물 배설물에 사과 씨가 섞일 것이다. 이듬해 동물 배설물을 흠뻑 머금은 땅에 뿌리를 내린 사과나무의 싹이 오를 텐데, 요즘 그런 현상은 자연에 없다. 이맘때 사과는 과수원에 구속되었다. 떨켜를 억지로 떼어낸 사람이 소쿠리에 담은 사과는 크기 별로 분리돼 시장으로 나간다.

사진: 소백산의 과수원. 나무 가운데 줄기를 잘라 가지를 늘어뜨린 과수원은 아래 빛이 반사되는 비닐을 깔아 사과 아래까지 붉게 만든다.

완연하게 숙성한 사과가 저절로 떨어지기 전에 떼어내려면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떨켜는 자유낙하를 용인하지 않는다. 대신 잘 익은 사과를 아래에서 위로 틀어서 올리면 그만 떨켜는 힘을 잃고, 초보자도 가지에서 쉽게 분리할 수 있다. 가을 태풍이 기슭을 휩쓸며 거센 바람을 솟구치게 한다면? 뿌리가 약한 나무는 떨켜도 약할 터. 수확을 앞둔 사과들은 우수수 떨어질지 모른다.

지난 태풍에 낙과가 거의 없던 선배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면서 실수를 연발했다. 윗부분이 충분히 붉지 않은 사과는 떨켜가 질긴 편이다. 잘 떨어지지 않아 손동작이 거칠어지면 옆에 매달린 사과가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푹신하게 우거진 바닥의 풀숲이 안아주니 작은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햇빛을 반사하는 은박지 필름을 깔아놓은 이웃 과수원과 달랐다. 딱딱한 바닥에 떨어지면 그 부분이 곪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고 한다.

넝쿨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나무는 뿌리와 이어진 가운데 굵은 줄기가 하늘을 향하고 줄기 위에서 아래로 가지들이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다. 가지에 과일을 매다는 나무도 마찬가지인데, 요즘 과수원의 사과나무는 줄기를 잃었다. 심을 때부터 사람은 줄기 윗부분을 제거하고 아래 가지를 펼쳐놓는다. 사다리 없이 수확할 수 있도록 높이를 낮춘 것이다. 품삯을 줄이고 낙방 사고를 피하겠지만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사과나무는 영양분을 잘 빨아올리지 못하고 질병에 쉽게 감염된다. 적잖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소백산 기슭의 과수원들은 줄기를 제거한 사과나무 일색이었다. 사방으로 벌어진 작은 가지마다 커다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줄기가 서야 할 자리에 철 기둥이 박혀 있고 사과 달린 가지를 철선이 잡고 있었다. 가지가 가느다란데 어떻게 커다란 사과를 저토록 매달 수 있을까? 화학비료를 듬뿍 주었고 식물성장호르몬을 미리 처리한 결과라고 한다. 건강하지 않아도 화학비료를 제대로 흡수하게 하려면 잡초를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제초제가 흥건히 살포하면서 과수원의 바닥은 딱딱해진다. 사과나무 사이를 오르내리며 농약을 안개처럼 분무하는 기계는 땅 속에 지렁이 한 마리 남기지 않는다. 그뿐인가? 과수원 일꾼도 이따금 병원 신세를 진다.

아랫부분까지 붉은 사과는 어쩌면 화상을 입었는지 모르는데, 그런 과수원은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자한다. 일정량 이상 수확이 보장되어야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온난화는 기존 사과 재배지를 점점 북쪽으로 끌어올린다. 소백산 기슭보다 고도가 낮은 풍기와 영주는 병충해를 견디지 못해 사과 과수원을 진작 포기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포천까지 올라간 사과 재배지도 불안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러다 북한 지역의 사과를 제사상에 올려야하는 거 아닐까?

산비탈의 가을해가 서둘러 언덕을 넘자 이내 어두컴컴해진 소백산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별들을 허락했는데, 어두워지자 기괴한 소음이 귀를 요란하게 어지럽힌다. 멧돼지 접근을 막으려는 소음이라는데, 효과가 있을까? 학습이 빠른 까치와 까마귀는 과수원을 맴도는 맹금류 연을 무시한다는데 후각이 예민하고 지능이 높은 멧돼지는 산속에 먹이가 충분하다면 굳이 과수원을 찾을 거 같지 않다. 농약 냄새 외면하는 멧돼지들이 유유히 지나가는 과수원을 운영하는 선배는 사과를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유기농업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연의 풍미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판다. 큰돈은 벌지 못해도 손해는 피한다고 자부한다.

유기농업은 단순히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는다. 유기농업은 땅과 하늘과 사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땅속 미생물과 하늘의 새를 배제하지 않는 유기농업은 생태계 뿐 아니라 시간을 이어준다. 멧돼지도 내쫓지 않는 유기농업은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화학농약은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이래 자연과 유기적으로 이어졌던 수많은 관계를 끊으므로 농약을 거부해야 옳지만, 농약 없이 재배했으므로 유기농산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진: 소백산 유기농 과수원. 나무의 가운데 줄기를 살리고 나무 간격을 충분히 둔 뒤 일체의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사과는 관행(농약과 화학비료 투입이 많은) 과수원보다 적게 열리지만 나무는 튼실하고 사과 본연의 맛을 선사한다.
사진: 소백산 유기농 과수원. 나무의 가운데 줄기를 살리고 나무 간격을 충분히 둔 뒤 일체의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사과는 관행(농약과 화학비료 투입이 많은) 과수원보다 적게 열리지만 나무는 튼실하고 사과 본연의 맛을 선사한다.

과수원을 포함해 유기농업은 힘겹다. 은행에 빌린 자본의 투자가 없거나 적으니 이자 지출이 미미하지만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유기농업은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가격이 높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맛과 영양, 그리고 건강을 전한다. 의료비가 줄어드니 오히려 경제적이다. 나이 든 부모의 의료비 부담이 적은 가족은 화목하겠지. 땅속 생태계를 살리는 유기농업은 지구온난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예방한다. 화학농업은 땅속 생태계를 구성하던 탄소를 대기권에 추가했다. 유기농업은 더운 지구를 식혀준다.

10월 주말을 소백산의 유기농 과수원에서 땀 흘리고 들린 고속도로휴게소는 산더미로 쌓은 “내 고장의 명물”, 영주와 풍기 사과를 팔고 있었다. 유기농 사과를 따지 않은 사람들이 바닥까지 새빨간 사과를 눈여겨보며 가격을 흥정하는데,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지방을 돕는 기분으로 구입하는 사람들과 달리 화상 입은 사과를 외면한 우리는 유기농사과를 주문해 가족과 먹고 이웃과 나눌 것이다. 힘겹게 농사지으며 땅과 하늘, 그리고 우리를 살리는 농부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작은책,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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