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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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 백창욱
  • 승인 2019.11.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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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스물두 번째 주일설교문(19. 11. 10)

누가 20:27-38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오늘은 의열단이 창단한 지 백년 되는 날입니다.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자”는 취지에서 이름을 ‘의열단’으로 하고, 김원봉을 ‘의백’(대표)으로 선임했습니다. 김원봉의 나이 21살입니다. 의열단은 일제와 친일파가 가장 두려워한 항일 비밀결사단체입니다. 1910년 11월 10일 창단해서 1935년 6월 조선민족혁명당 창당을 위해 해체하기 까지 34건의 무장투쟁을 수행했습니다.

백창욱님
백창욱님

일제의 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은행 등 수탈기관을 폭파하고, 일본군 고위 장교와 밀정을 저격했습니다. 일왕에게도 폭탄을 던졌습니다. 영화 <밀정> 첫 장면은 의열단원 김상옥이 일제와 총격전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김상옥은 1923년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잠적한 며칠 후 은신처가 발각돼서 수백 명 일제경찰과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마지막 총탄이 남았을 때까지 싸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오른손 둘째 손가락은 권총 방아쇠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이날 죽은 일제 경찰은 15명입니다. 의열단의 용맹성을 보여주는 한 사례입니다.

1919년 11월에 창단한 배경이 있습니다. 그 해 3.1운동 열기가 식어가고, 일차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처리를 논의하는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독립 기대가 무산됐습니다. ‘외교 독립론’의 뼈대가 무너지자 항일운동은 후퇴합니다. 이 때 조선청년 13명은 항일 감정을 다시 촉발시키기 위해 의열투쟁을 선택하고 그 해 11월에 창단합니다. 의열단은 나치에 맞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일제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해방 뒤 남북에서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의열단장 김원봉은 북한에서의 행적을 이유로 색깔론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항일의 불꽃으로 스러진 무명의 대원들은 대부분 잊혀졌습니다. ‘조선혁명선언’을 만든 신채호,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서 2년 옥살이한 이육사(수인번호 264)도 단원입니다. 김원봉의 부인 박차정도 무장항쟁하다 일제의 총에 죽었습니다.

김원봉은 1948년 4월 김구와 함께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러 북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북으로 간 이유 중 하나는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당한 수모도 있습니다. 친일경찰이 평생을 독립투쟁에 몸 바친 사람을 치도곤하는 현실이 조선의 처지였습니다. 김원봉은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과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958년 숙청당했습니다. 김구보다 현상금이 높은 조선 최고의 혁명가로서, 훈장 열 개를 줘도 부족하지 않지만, 자한당은 전신인 새누리당 때부터 김원봉 서훈에 극렬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북한활동 때문이라지만, 진짜 이유는 반공으로 행세해야 지지를 얻는 정치공학적 이해타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서훈자에게 주는 건국훈장 이름을 독립, 광복, 항일훈장 등으로 바꾸자는 대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사두개파와 논쟁입니다. 사두개파에 대해서 누가 저자가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두개파 사람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하는데, 바리새파 사람은 그것을 다 인정하기 때문이다.”(행 23:8) 어째서 사두개파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할까요? 이 세상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좋으므로 굳이 부활해서 다른 세상을 살 필요를 못 느낍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집단입니다. 사두개파는 귀족계급이고 대제사장, 산헤드린 의원 등 유력자들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신념과 의지는 자기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나오는 바, 사두개파는 현세가 좋아서 부활이 필요 없습니다. 어쨌든 부활은 현 세상의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현 세상이 무언가 문제가 있고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어떤 연유로 인해 자기 수명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활을 소망합니다. 부활하여 다른 세상에서 다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정치경제적으로 사두개파의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부재지주입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데, 일세기 고대시대도 부의 편중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나라 곳곳에 땅을 차지한 부자들이 부재지주이듯이, 일세기 팔레스타인 땅도 부재지주가 차지했습니다. 정보취득과 관계망 때문에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만 이스라엘 전역에 대토지를 소유하고 토지를 통해 부를 키워나갔습니다. 부재지주는 정의와 평등, 소유의 균등을 깨는 적폐집단입니다. 예를 들면, 국가가 폭력적으로 토지를 강제수용하고 그 자리에 군사기지를 만들든, 무슨 국책사업 이름으로 개발을 할 때, 원주민은 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길 수 없어서(그 땅에서 쫓겨나서 어디로 가란 말인가?) 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런데 땅을 지키려는 원주민을 흐트러뜨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부재지주들입니다. 이들은 땅값만 많이 쳐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정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때 부재지주들을 주민 찬성으로 포장해서 여론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대구 내려오기 전 2006년에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기독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했기 때문에 그 때 돌아간 상황을 압니다. 한전은 송전탑이 지나는 선하지에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재지주들을 제 편으로 써 먹었습니다. 지금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도 부재지주가 원주민들의 단결을 깨뜨리고, 제 잇속만 차리려고 합니다. 부재지주는 그냥 경제적으로 시세차익만 노리는 정도가 아니고, 한 마을의 삶과 운명을 통째로 거덜 냅니다. 이스라엘의 오클로스도 부재지주들의 농간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리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사두개파는 이렇게 뒤에서 이스라엘 민중을 지배하고 갈취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대종파(젤롯당, 에세네파, 바리새파, 사두개파) 중 민중과 적대적인 집단입니다.

사두개파는 오늘 복음서에만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와 사두개파가 부활여부로 논쟁하는데, 그 배경에는 ‘시형제 혼인법’이 있습니다. ‘시형제 혼인법’은 이스라엘 평등사회를 유지하는 제일 상위법입니다. 창 38장은 이 법의 효력을 생생히 증거합니다. 자식이 없는 며느리 다말이 자신을 숨기고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고 임신했습니다. 유다는 과부인 며느리가 애를 가졌으니 화형에 처하려 합니다. 그런데 연유인즉슨 다말은 시형제 혼인법에 따른 권리행사를 했습니다. 유다는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라고 인정하고 다말을 살려줬습니다.

시형제 혼인법 근거는 모세의 법입니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사람의 아내는 딴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지 못합니다. 남편의 형제 한 사람이 그 여자에게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낳은 첫 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신 25:5-6)

자식없는 형제도 대를 잇도록 보장한, 형제애가 충만한 법입니다. 그런데 사두개파는 시형제 혼인법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온 내용이 그렇습니다. 사두개파의 논리가 그럴듯합니다. 부활 때 그 여자는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 그러나 사두개파의 말은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끔찍합니다. 실제 일곱 형제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게다가 모두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면, 이처럼 비극적인 일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인의 운명이 처참합니다. 처음 맏이의 아내인 여인은 사두개의 말대로라면, 남편 일곱을 차례로 잃는 사람이 됩니다. 게다가 일곱 형제 모두에게서 자식을 남기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입니다. 사두개는 부활이라는 대안적 삶을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례로 둔갑시켰습니다.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고 묻는 대신에 “부활 때에 그 여자는 처참한 운명을 위로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어야 했습니다. 사두개파의 악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모세의 법과 여인을 철저히 도구화했습니다. 모세의 법을 교묘하게 틀어서 형식논리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고대에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일 세대 프로파일러 이수정교수를 아실 겁니다. 강력 범죄에 대한 뉴스나 시사프로에 등장해서 범행동기를 분석하고 범죄 예방에 대해 말하는 여성 범죄심리학자입니다.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든 연고로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제목이 “앙심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을 바꿨어요”입니다. 이 분이 범죄심리 분야에 뛰어든 계기가 있습니다. 교도소 여성재소자를 만나서 심리치료를 하는데, 2004년 남편을 살해한 아내와 엄마를 도운 딸을 만났습니다. 만나보니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30년 가까이 상습적인 폭력을 겪은 모녀였습니다. 방어 목적으로 죽인 정당방위를 받을 만 하다고 봤는데, 경찰조서를 보니 범행동기에 ‘부부간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남편을 살해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때 이건 앙심이 아니라 자기방어적 본능일 수도 있음을 설득하는데 내 평생을 쏟아 부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30년 폭력을 겪은 여성의 행위가 그저 한 단어 앙심으로 둔갑합니다. 모녀는 가부장 사회 약자에다가 여성 민중으로서 더 큰 사회적 차별을 겪습니다. 어느 시대든 주류권력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기들의 이익을 유지, 확장합니다. 부활을 믿는 여부는 왜 소중한가요? 적어도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지금 생이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 전제가 부활입니다.

37-38절은 무슨 뜻인가요? 부활사례로 모세의 가시나무 떨기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출 3:6) 저는 그전부터 이 대목이 아리송했습니다. 이미 죽은 조상을 살아 있는 사례로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 죽은 사람을 만난 게 아니고 산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살아 있을 때 만났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만남이 영원한 칭호가 됐습니다. 후대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할 때, 그들은 죽은 조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조상들이 살아 있을 때 만난 하나님 현존을 말합니다. 부활이 이렇습니다. 육체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천사와 같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천사는 영입니다. 육체를 입지 않았지만 천사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영은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말하기를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 10:28)라고 말했습니다. 38절이 한 번 더 확인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부활은 소모적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감히 사두개 따위가 우스꽝스럽게 깍아 내릴 대상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입니다. 민중이 주체적으로 살게 하는 원천입니다. 따라서 지금 발붙이고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입니다. 불의가 온 땅에 가득하고 부의 정도가 하늘에 닿은 차별을 어떻게 변혁하나요? 부활신앙으로 변혁합니다. 부활은 민중이 권력의 지배에 굴종하거나 수단화되지 않고 참 세상을 살게 하는 동기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솟아납니다. 하나님이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남으로 주시는 은총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부활로 충만하기를, 또한 생명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

 

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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