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의 묘미가 극대화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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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의 묘미가 극대화된 예술
  • 음혁민
  • 승인 2011.05.1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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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절제된 음절들

모닝 캄(Morning Calm).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가곡(歌曲)은 고요한 아침의 ‘노래’다. 산중에서 홀로 새벽 안개를 맞아 보았는지. 청아하게 뽑아 올린 여창가곡의 목소리는 새침하고 고즈넉한 한국의 안개와 꼭 닮아 있다. 한 국악 전문가는 가곡을 일러 “동양의 신비로움인 ‘정중동(靜中動)’의 묘미가 극대화된 예술”이라고 요약했다. “마치 실의 조직을 분해해 놓은 듯 모음과 자음을 낱낱이 분해해 각기 벌려 부르는 창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곡만의 독창성”이라는 설명이다. 마치 현미경을 바짝 들이댄 것 같다. 가곡의 유장함과 섬세함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또르르르 이슬 방울 굴러가는 섬세하게 정제된 음절들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장대하고도 찬란하다.



조선의 상류문화의 ‘격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곡은 중인 이상의 양반, 선비 계층에서 주로 불려졌다. 가곡의 가사가 되는 시조들을 최소한 외우고 뜻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부를 수 있는 음악이었다. 때문에 장안 마당이나 멍석 위에서 불려졌던 서민 음악인 판소리의 호방함과는 다른 ‘젊잖은’ 매력을 품고 있다. 흔히 알려진 서경별곡이나 관동별곡 등 고려 때 불려졌던 시조들이 가곡의 원류. 형식적으로 17~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고 널리 불려졌으나 이윽고 일제강점기와 함께 그 맥이 끊기다시피 하고 만다. 해방 후 1964년 문화재 보호법이 생기면서 가곡은 1969년 30번째로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됐다.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로 짜여졌으며 아침부터 시작해 남창, 여창, 남녀창을 주거니 받거니 해 24곡을 불러야 한바탕이 완성됐다. 현재 전해지는 여창가곡의 원류는 김월하 명인(1981~1996). 그 제자인 김영기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여창가곡의 맥을 잇고 있다.

지난 11월 매사냥·대목장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된 가곡(歌曲)을 듣기 위해 지난 달 31일 오후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을 찾았다. 가곡 보유자 김영기 선생은 이 날 ‘정농악회’의 정기연주회를 위해 리허설 무대에서 결이 고운 목소리로 천상의 세계를 들려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마침내 가곡이 세계 유수의 전통음악으로 인정받았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소감이 어떤가.

가곡이 굉장히 느리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일반인에 많이 있는데 세계 유네스코 등재된 것 자체가 가곡의 예술적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재 제도가 있어서 문화재를 보호하듯이 세계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부분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이 좋은 일이이다.

+ 한중일 전통음악이 얼핏 닮은 점들이 많다. 구별되는 점들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처음 들었을 때 높은 음에서 여창들이 노래하는 것 보면 중국의 음악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은 비성이 많이 섞여 있고 굉장히 빠른 템포로 이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비성을 금기하고 육성을 내도록 한다. 일본의 경우 고대시로 부르는 노래가 있지만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지는 않는다. 관현악 반주에 맞춰 완벽하게 짜여진 음악을 구사하는 것은 한중일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다. 남창가곡은 진성으로 하고 여창가곡은 육성과 속청(가성)의 속소리를 번갈아 가며 부른다는 점 등이 차이점이다.

+ 가곡이 다른 국악의 분야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덜 대중적인 이유가 있다면?

들을 기회가 너무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거쳐 사회생활을 지나는 동안 가곡이라는 것을 한번도 들을 기회가 없다. 과거 교육과정이나 대중매체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았었다. 지금은 초중교과서에 국악을 다루는 내용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음악 선생님도 서양음악을 전공해 실연해 줄 기회가 거의 없다. 매체에서도 비교적 대중적인 민요나 판소리는 곧잘 다뤄주지만 가곡은 기회가 많지 않다. 아주 오래된 ‘시조’라는 생각에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해도 좋아서 찾아오는 매니아층 말고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멀리 있는 음악인 것이 아쉽다.

+ 그렇다면 가곡이 성행했을 당시인 조선 후기 때는 어땠을까? 그때도 대중적이진 못했을 것 같다.

가장 성행했던 가곡의 르네상스기는 영조 무렵부터 19세기 말이었다. 많은 가객들이 출현했고 가단의 형성도 활발했다. 김천택의 청구영언, 김수장의 해동가요 등 가집들도 이 때 만들어졌다. 당시는 좌서우금이라고 해 거문고와 시조를 즐긴 선비들이 많았다. 거문고와 가곡은 찰떡궁합이었다. 교육받은 중인 이상의 지식인 계층에서는 굉장히 성행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즐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조 사설들이 모두 노래였다고 보면 된다.

+ 가곡의 매력이 뭔가?

음악을 한 사람들은 노랫말이 잘 안들려도 노래 자체를 느끼시더라. 오페라나 좋은 음악들은 가사를 몰라도 좋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다. 현대 음악 작곡가들이 가곡을 많이 좋아한다. 가곡이야말로 정말 현대 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고 평가한다. 가곡을 들으면 영감이 떠올라 새로운 노래를 쓸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 그래도 일반 대중은 가곡이 거의 ‘학문’이라고 느껴질 것 같다. 일단 노래 자체가 매우 생경스러우니까.

그 점이 아쉽다. 기회만 된다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텐데. 할 수만 있다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해설이 있는 음악회 같은 것을 열고 싶은데 아직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 내가 금난새 선생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사도 아니고. 말은 문화재인데 대한민국에서 대접을 잘 못받는다. 직접 손수 뛸 각오도 되어 있는데 그럴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문화재청 등에서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열어줬으면 좋겠다.

+ 특이하게 앉아서 부르는 거의 유일한 음악이지 않나?

경기민요 중 12잡가와 서도잡가가 앉아서 부른다. 경기나 서도 쪽은 앉아서 부르지만 가곡은 100% 앉아서 불러. 문화 자체가 풍류방과 사랑방에서 즐겼기 때문일 것이다. 가곡의 미를 추구하던 시대의 사람들이 얼굴을 엄격하게 하거나 찡그리거나 하는 것을 금기했다. 유교적 양식을 지킨 셈이다. 판소리와 다르게 발성 자체도 크지 않고 밀도있게 내고 속소리를 통해 더 가는 새청을 쓰게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절제미가 있다. 조선시대 여인네들의 모습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창호지에 비친 여인의 실루엣을 보는 듯한 음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가만히 듣기만 하면 소린데 소리의 맥을 짚어가다보면 흔드는 요성에서 역동성이 있다. 스카이뷰로 산천을 훑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판소리의 호방함과 구성짐, 가곡의 고요함과 격조. 이 두가지가 한국의 두가지 매력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중국음악은 장식적인 요소가 많다. 더 글래머러스한 편이다. 반면에 일본은 정제미로 외국에서 각광받고 있다. 고즈넉한 이미지라면 우리 한국도 뒤지지 않는데, 우리가 그 면에서 일본에 많이 밀리고 있지 않나.

외국에 주로 알려진 우리 소리가 사물놀이나 판소리라서 그런 것 아닐까. 문화적으로도 외국사람 눈에는 일본이 더 고요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그에 반해 더욱 다양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겉은 젊잖지만 속에는 항상 뭔가 끓는 것이 있고. 해외여행을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활기 있는 모습이지 조용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즐기던 문화가 중간에 끊겼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가곡을 공부하는 우리들도 참고할 자료가 별로 없다. 그나마 일제 때 경성방송국에서 불렀던 유성기 음반 음원이 거의 유일한 자료다. 해방 후 노래하는 사람들을 신분이 천한 관기로 모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창자들이 숨어버렸다.

+ 한옥에서 부르는 가곡은 어떤가?

내 집에서 부르는 것 같다. 한옥 마루에 앉아 가곡을 하면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재질이나 대청마루, 문 같은 것이 자연과 한번에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노랫말과 너무 잘 맞고. 자연을 닮고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노래가 가곡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불러보면 알 수 있다. 무대 노래를 할 때도 항상 한옥의 사랑방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을 불러 교류하고 있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부른다. 관객은 긴장하고 듣겠지만 내가 그런 마음으로 부르면 더 나을 것 같다.

+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국악 극장이나 무대는 위에서 관객들이 내려다보는 구조다. 국악은 앉아서 연주되기 때문에 특히나 같은 눈높이에서 감상해야 그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소극장이라고 해도 가곡의 소리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300석이 된다 할지라도 눈높이를 맞추고 육성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그대로 둘러앉는 공간이라면 더 좋겠다. 연습실에서 2년 동안 몇 명 오지 않지만 일반인에게 한 달에 한번씩 노래를 들려준 적 있다. 소리가 정말 좋고 잘 안들리는 여운까지 다 들리니까 신기하고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 하는 것 같다.

+ 가곡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부르는 입장에서 압축해 표현해 달라.

노랫말에 시의 운율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노래가 가는 길 자체가 선율이 고요히 가다가 고요한 절제미, 절제 하다가 흔들어 올리는 역동의 미가 있다. 역동성이라면 과격한 역동성이라 하지만 가곡이 가진 내제된 힘이다. 약하기는 하지만 단전에 힘을 주고 아주 밀도 있고 곱게 뽑아내는 소리. 절제해서 곱게 내다가 흔들어주는 역동미가 가곡의 진정한 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 춤의 명인, 이매방은 요즘 춤은 동만 있고 정이 없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잃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뜻인 것 같다.

아주 멋진 표현이다(웃음). 요즘 사람들이 동적이고 화려함은 금방 알고 내면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철학과 인문학이 죽어버린 사회상을 반영하듯 사유하는 음악 자체가 대중에게 멀어져 있다. 경제력이 상승한 만큼 문화도 다각도로 즐기고 사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도 가곡을 즐기는 사람이 아주 극과 극이다. 아주 지식층이거나 아주 단순한 사람이다. 대중들은 여전히 흔한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 노래 부를 때 경건하고 성스럽고 심지어는 종교적이기까지 한데 실제 노래 부를 때의 마음가짐이 어떤지 궁금하다.

노래 부를 때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오직 소리로만, 노래로만 감동시키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작할 때는 도를 닦는 마음이다. 여창가곡 노랫말의 99%는 연시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이 주 소재다. 실제로 노래는 시작을 하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길게 가는 것은 구도자의 마음이지만, 공연 때는 노랫말을 생각하면서 부른다. 관객은 노랫말이 적혀 있어도 배우지 않으면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가곡은 본인이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 옛시인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부른다.

출처 : 헤리티지채털(글쓴이 김보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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