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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곡식 원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평화통일주일예배 설교문(2019.8.11)
2019년 08월 13일 (화) 15:18:07 김종수 목포산돌교회

2019.8.11. 평화통일주일예배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이사야 62:6~12)"


청산되지 않은 신사참배
요즘 심각한 한일관계는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 알면서도 마치 지금의 문제인 것처럼 오도하거나 오해하곤 합니다. 이것은 오래 된 우리의 현재이고 미래가 될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역사의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회는 역사에 무관심하거나 이상하리만큼 이분법적인 극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태극기 집회를 중심으로 한 친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일제 강점기 교회의 신사참배 지지입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일제의 박해는 다양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신사 참배 강요였습니다. 일제는 내선 일체(內鮮一體)와 황민화 정책(皇民化政策)의 일환으로 신사(神社, 神祠)에 정기적인 참배를 강요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우상 숭배의 강요였으므로, 심각한 신교(信敎)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천주교회와 감리교회가 굴복하였고, 끝까지 저항하던 장로교회도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 참배를 결의함으로써 일제에 굴복하였습니다. 신사 참배를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200여 교회가 파괴되었고, 2,000여 명이 투옥되었고 그 중 30여 명은 옥중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역시 큰 고통을 당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목사는 7년간 투옥되어 있던 중 1944년 4월 순교하였습니다.』(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그러나 그 뒤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는 사그라졌고 오히려 대부분 수용하고 타협하는 방향으로 일제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 교단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교회는 신사참배 지지에 대한 참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사참배를 하였기에 교회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주장을 펴는 교회사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대부분의 교회를 정치, 역사, 사회 문제에 둔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성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는 그토록 많이 알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타부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만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의 헌법에는 그토록 무관심 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율법에 대해서는 금지옥엽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제대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헌법에 대한 바른 이해로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서 속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역사 속에서 그들을 이끈 하나님의 뜻을 찾아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교회의 친일 성향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신사참배에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제징용
이스라엘의 역사 서술 계기, 즉 성서가 만들어진 계기는 약 70여년간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있었던 시절에 기인합니다. 이 때부터 성서가 문자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본 정신인 야훼 신앙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혹독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자기 땅이 없습니다. 설령 일을 해도 수확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하긴 땅의 주인이 다른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땀을 흘려도 그 소출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한일 문제, 일본의 수출 규제, 화이트국에서의 대한민국의 제외는 직접적으로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침략전쟁을 하는 일제에 의해 노동력을 강제 수탈당했습니다. 일제는 침략전쟁을 본격화하면서 특히 1937년의 중일전쟁 이후에는 산업의 군수체제화에 필요한 노동력의 조달이 여의치 않자, 조선인에 대한 징용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총동원법'을 선포하고 1939년 10월부터 한국·타이완 등지에서 '국민징용령'을 시행했습니다.

징용영장은 일본에서는 후생대신, 한국에서는 조선총독이 발급했습니다. 징용영장을 받은 피징용자는 지정된 사업장에서 복무하는데, 영장을 받고 응하지 않는 자는 국가총동원령을 근거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또한 보수·급여 등도 국가의 인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밖에 일제는 1943년 10월 '생산증강노무강화요강'에 의해 근로동원을 전면 동원체제로 바꾸고, 공장 사업장의 간이 작업에 충당하기 위해 도내 전체 호수의 2할을 동원목표로 종래의 근로보국대를 확대하여 가능한 한 동일업종 지역단위별로 편성해나갔으며, 학교근로보국대를 조직하여 학생들까지도 전시 근로동원체제에 편입시켜나갔습니다. 그리고 1944년 8월에는 '여자정신근로령'을 공포하여 수십만 명에 달하는 12~40세의 미혼 한국여성을 강제 동원하여 일본과 한국 내 군수공장에, 또는 행방도 알리지 않은 채 남방이나 중국전선에 종군위안부로 연행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 등 각지의 탄광·금속광산·수력발전·철도·도로·군수공장은 물론 군사기지 공사, 포로감독의 군요원, 종군위안부 등으로 연행되어 생사조차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가혹한 조건 밑에서 혹사당했습니다. 이렇게 강제노동에 동원된 한국인수는 일본·사할린·남양군도를 합쳐 72만 여 명에 달했으며, 조선 안에서는 근로보국대 등으로 충원된 도내 동원 414만 여 명을 제외하고도 관 알선 40만 여 명, 직장 자체를 징발한 현원징용 26만 여 명, 일반징용 4만 여 명 등 70만 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조선인 전체인구의 5.6%에 달하는 수치로, 여기에 도내 동원까지 포함하면 전체 조선인의 21.9%였다. 이처럼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기 동안 일제는 한국인을 가혹하게 침탈했으며, 한국인은 노예와 같은 생활에 시달렸던 것입니다.』(다음백과)

 강제에서 자율로의 변질
그런데 왜 일본 아베 정부는 강제징용 징병, 위안부 문제를 강제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은 수미일관 조선인의 자발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역대 일본 정부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1993년 고노담화나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는 전혀 다릅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4일 일본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군의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공식성명입니다.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 문제가 한·일간의 외교문제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1년 8개월 동안의 조사를 거쳐 일본정부는 고노 담화를 통해 “모집, 이송, 관리 등에 있어 감언과 강압에 의하는 등 전반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이 행해졌다”며 강제성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에게 사과와 반성의 뜻과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다음백과)

그리고 나아가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내각회의를 거쳐 전후 50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에 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 성명의 정식 명칭은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 로,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이름을 따 무라야마 담화라 일컫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외교적으로는 일본이 과거의 식민 지배에 관해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한 성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성명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의심할 여지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 말하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말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다음백과)

그런데 이런 일본정부가 고이즈미 준이 총리 이후 변질되기 시작하더니 아베에 와서는 후안무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베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던 때 자민당의 비주류 강경파인 ‘전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의 사무국장 대리였습니다. 이 의원모임은 일본 국회가 전후 50년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1994년 12월1일 결성했습니다. 연합국 점령체제 아래서 “일본에 대한 단죄와 자학사관을 고쳐, 공정한 사실에 기반한 역사의 흐름을 해명해, 일본 및 일본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게 결성 취지입니다. 이 모임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일본의 자위 자존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무라야마 담화 발표에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1996년 4월 ‘밝은 일본, 국회의원연맹’으로 이름을 바꾼 이 모임은 6월에 “종군 위안부는 없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위안부 문제를 서술한 교과서에 대한 비판과 삭제 운동을 본격화했습니다. 그해 12월2일 우익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족하자, 아베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로서 적극 지원했습니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아베 총리의 생각은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제 시기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대신으로 전시동원을 지휘한 기시는 패전 뒤 A급 전범 혐의로 3년간 갇혀 있다가 냉전이 시작되며 풀려나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기시 전 총리 등을 ‘전범’으로 단죄한 역사를 부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한겨레신문 2013.4.24)

기억하지 않는 반성
아베와 그 일당은 역사를 왜곡해서라도 일본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성과 참회로 잘못을 인정하고 해를 입힌 이웃국가의 아픔에 함께 하며 배상하는 것이 진정으로 성숙한 자부심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대해 일본의 양심세력의 중심에 있는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종전 40년을 맞아 1985년 5월8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했던 ‘황야의 40년’이란 유명한 연설이 있다. “문제는 과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뒤에 와서 과거를 바꾼다든가 일어나지 않은 일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눈을 닫는 사람은 결국은 현재에도 맹목적으로 됩니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지 않으려는 사람은 다시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수도 베를린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나치에 희생당한 600만 유대인 추도 모뉴먼트를 세운 것도,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 아들·손자세대에까지 독일인이 잘못한 것을 전하겠다는 독일인의 결의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독일은 당시 강제수용소에 수감했던 동성애자나 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도 계속 지불하고 있고, 주변국과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활동도 한다. 그런데 일본은 서울에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한국이 철거 약속을 안 지킨다느니 같은 말만 한다. 독일의 대응식이라면, 일본 도쿄의 가스미가세키 국회 앞에 일본 정부 스스로가 일본국 ‘위안부’상을 세워야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이것만으로 끝내고 싶다, 손자에게도 죄책감을 전해선 안된다는 듯한 말만 반복한다. “”』(한겨레 21, 2019.7.31)

이어 그는 종전만 있고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독일은 뉘른베르크에서 연합국에 의해 나치 전범 재판이 이뤄졌을뿐만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서도 계속됐다. 검사청 아래 설치된 나치범죄추궁센터는 지금까지 10만7천명 이상 용의자를 조사해 7천명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반면 일본은 도쿄재판만으로 끝났다. 끝났을뿐 아니라 전범과 기시 노부스케라는 아베 총리의 할아버지 같은 이는 부활해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총리대신까지 했다. 여기엔 ‘천황제’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당시 전쟁에서 일본인 310만명이 죽고 아시아인 2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그런데 미국과의 일종의 거래를 통해 상징천황제를 남기며 최고책임자였던 전전의 천황에 대한 책임 추궁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게 일본의 민주화를 애매한 형태로 만든 측면이 있다. 또 하나,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해 시민들이 싸워 인권을 획득한 한국과 달리 일본 헌법은 인권은 인정하지만 패전의 결과 주어진 헌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이나 자유, 민주주의가 충분히 정착한 사회가 되지 못했고, 지금의 아베 같은 정권을 탄생시킨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런 불충분함에 대해 일본 사회 전체가 자각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잘 안되고 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등 일본국민이 피해를 입은 점은 모두 배우지만 가해책임에 대해선 교과서에서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 분명 가해책임을 모두 배우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아시아 각국, 아시아인들과의 우호·연대는 구축되기 어렵다.“』(한겨레 21, 2019.7.31)

지금 우리는
그러나 일본인들이 반성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일본놈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욕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다만 독일과는 다른 일본의 실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된다는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런 일본이니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에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갈 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한말 그 일본에 ‘개화’라는 이름으로 의존했고 그 결과는 일제 강점 36년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행히도 그 개화는 이제는 일본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일제 강점 36년 우리는 우리의 땅을 빼앗기고 우리가 흘린 땀의 수확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마저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8절과 9절은 바로 바벨론에 빼앗긴 나라에 대한 그들의 혹독한 현실을 말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사실은 이 장면은 포로기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다시는 우리가 흘린 땀의 수확을 다시는 남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8절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 곧 그의 능력 있는 팔을 들어 맹세하셨다.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다시는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 사람들이 마시도록 내주지 않겠다."”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수고 없는 수확, 땀 없는 결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내 땀으로 이룬 내 수확을 나와 내 가족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다시는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 사람들이 마시도록 내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어 9절도 그러합니다.

“곡식을 거둔 사람이, 곡식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거둔 것을 먹고, 주님을 찬송할 것이다. ‘거둔 사람이 자기가 거둔 것을 내 성소 뜰에서 마실 것이다.’”

추수한 것을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축제를 벌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런 맹세를 하나님은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혹독한 포로시절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수확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포로로부터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서 세울 나라를 잘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10절 이하입니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이제 포로촌으로부터 돌아오는 백성은 다릅니다. 다시는 그 혹독한 포로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백성들입니다. 이제는 다시는 나의 땀의 결실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는 우리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마지막 12절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 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 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일제 강점을 경험한 우리 부모들에게서 들은 가장 많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저는 ‘징용’이라는 말과 ‘공출’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 나이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103년 전에 태어나신 제 아버지는 제 어린 시절 3.1절과 8.15때마다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뼈아프도록 일본을 경계하라고, 그리고 너의 세대에는 일본을 이겨야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시편 137년은 포로기 이후에까지 전승된 잊지 말아야 할 포로기 그 날들에 대한 시입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 주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 날에, 에돔 사람이 하던 말, "헐어 버려라, 헐어 버려라. 그 기초가 드러나도록 헐어 버려라" 하던 그 말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일상의 시절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저주의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성서의 말씀치고는 너무하다 싶기도 합니다. 사실 더 심각한 시편 109편은 예배 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주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역시 포로기를 전제한 기도시입니다.

파순꾼으로서의 교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억입니다. 역사의식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읽은 6절은 그 기억을 채찍질합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님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이 구절은 난해한 구절로 여겨지지만 ‘주님’이라고 번역한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의 뜻을 안다면 전혀 난해하지 않은 구절입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히브리 성경을 기초로 번역되었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부르지 않고 ‘주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본문의 ‘나’와 ‘주님’이 헤깔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인 내가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파수꾼을 세웠는데 어떻게 파수꾼들인 ‘그들’이 반대로 하나님 보고 이스라엘을 지키는 약속을 상기하라고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라고 번역한 ‘야훼’가 ‘나’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면 의문은 자동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나’이신 야훼 하나님이 주님이며 그 주님을 내 안에 모신다면 나는 바로 나라고 할 수 있는 주체성 있는 존재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잠들고 계신 하나님을 깨우며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한 엄청난 고백,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의 ‘주님’은 주종관계의 주님이 아니라 주체적 존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모세에게 노예인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인으로 만들 때 당신 이름을 “나는 곧 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내가 내 안에 있다면 주님이 세운 파수꾼인 나는 오히려 내 안에 잠든 하나님을 깨워 약속을 지키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파수꾼을 세워 자신의 뜻을 펼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십니다. 여러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홀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생명체인 자연과 사람을 통해 펼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홀로, 하나님만으로는 관념입니다. 사람이 함께 할 때에만 실천이고 힘입니다. 사람을 빼고 하나님을 말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파수꾼으로 쓰십니다. 우리는 쓰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아멘은 바로 이럴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순간순간 우리는 힘이 약해 내 안의 나다운 참 나이신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나의 주체성, 나의 참 주인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사야는 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러분, 제발 잊지 마십시오. 이 나라가 다시는 일본의 종이 되지 않도록, 나의 주인 됨을 잃지 않도록 내 안의 주체적인 하나님을 쉬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이 민족의 자부심입니다. 자존감입니다. 다시는 우리의 수확이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강제 징용당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우리의 참 나, 우리의 주님, 우리의 주체성을 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파수꾼으로 세워 평화통일의 나라를 세울 때까지 우리는 결코 우리 안에 계신 우리의 하나님을 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울 대한민국이 세상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 받게 하시기까지 내 안의 주님을 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산돌교회는 하나님을 쉬게 하시 않는 바로 이 나라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분단 조국이 하나된 나라, 평화통일의 나라가 될 때까지 우리는 파수꾼의 역할로 하나님을 깨워 쉬지 않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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