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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무리여
성령강림 후 아홉 번째 주일, 남북공동기도주일설교문
2019년 08월 13일 (화) 14:54:41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9. 8. 11) 성령강림 후 아홉 번째 주일, 남북공동기도주일
누가 12:32-40 “적은 무리여”

오늘은 교회력으로는 평화통일 남북공동주일이고 절기상으로는 말복이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자유의 몸이 된 날입니다. 어제 날짜로 청도 삼평리 철탑반대 투쟁 때 받은 집행유예 2년이 끝났습니다. 실정법을 털어내서 홀가분합니다.

   

지난 주 신문에서 두 법조인 기사를 봤습니다. 한 사람은 일본의 양심이라고 소개한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이고 한 사람은 ‘어떤 양형이유’ 책을 펴낸 박주영 부장판사입니다.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의 인생역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쓰노미야 겐지는 대부업 금융채무자, 파산자 변호로 스타가 된 흙수저 출신 변호사입니다. 2010년 일본변호사 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회장이 된 내막이 특이했습니다. 변호사 연합회 회장은 도쿄와 오사카 변호사회, 두 파벌이 주고받는 자리인데, 처음으로 무파벌 출신으로 회장이 됐습니다. 그의 남다른 활동에 다른 지역변호사회와 젊은 층이 전폭적 지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해 말 대한변협과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공동선언을 주도했습니다. 일본 대중과 정권이 일제 식민지 범죄를 극구 부인하는 마당에 자국의 전쟁범죄를 시인하는 선언을 주도했으니 우리로서는 매우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런 양심적인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국가주의에 빠져서 일본을 반대하기 보다는 아베정권을 반대해서 일본의 민주시민 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이성적인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쓰노미야 겐지가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은 젊은 변호사들에게 큰 용기를 줍니다. “내가 큰 사무소에 들어가 금방 독립했다면 대부업 사건을 만나지도, 알려지지도 못했을 거다. 그러니 좀 돌아가는 걸 두려워 말고 처음부터 너무 돈 되는 일만 좇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두 번 잘린 사람이 회장까지도 했으니 자신들도 할 수 있겠다며, 모두 안도한다.”

이 사람이 돈 안 되는 금융채무자들 변호인이 되면서 파산자들도 살 길이 열렸습니다. “퀭한 얼굴에 스스로 손목을 그은 자국이 있는 의뢰인들, 폭력배 추심원들이 집이건 직장이건 밤낮없이 들어닥치니. 그런데 얼마 뒤 만나면 혈색을 되찾고 표정이 달라지더라. 변호사가 생기니 추심이 좀 부드러워졌다며.” 겐지가 양심변호사가 된 배경은 그가 비주류이고 돈 안 되는 금융채무자들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덕분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러 사회약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혐오발언에 반대하고, 강제징용피해자 배상을 막는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힘있는 사람이 뜻있는 일을 할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은 기득권세력 유지에 바쁘고, 오히려 비주류인 사람이 역사발전에 공헌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은 판사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제 솔직한 심정은 다시는 그쪽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검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별로 대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법부는 정의수호의 보루가 아니라, 한국사회 기득권 카르텔을 법적으로, 최종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박주영 판사 인터뷰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항상 비주류로 살았던 것 같아요. 법원 안에서는 아웃사이더였고 어디서든 떠돌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수자나 약자에도 친밀감이 있었어요. 반드시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보단, 내가 비슷한 심정이 들었기 때문에….” 자기 삶의 경험이 이렇다면, 한번 관심을 줄만 하다는 생각에 그가 쓴 『어떤 양형이유』를 구입했습니다.

책 머리말 일부입니다. “국민의 신뢰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구호는 내 털끝조차 건들지 못했지만, 재판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눈빛은 고스란히 누적되어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소년재판을 할 때 보았던 아이들의 눈빛, 소년원으로 가며 울부짖던 눈빛, 집으로 가라고 했는데 더 당황하던 눈빛, 전 재산을 사기당한 피해자의 눈빛, 성폭행 피해 여성의 분노와 수치심 가득한 눈빛, 꽃 같은 딸이 살해된 부모의 눈빛, 빚에 쫓겨 떠도는 파산자의 눈빛... 그 눈빛들은 내 목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그들은 집요하게 따졌다. 당신은 구할 수 있었잖아요. 당신이 우리를 버렸잖아요. 당신은 그럴 힘이 있었잖아요. 우리가 정의를 맡겼잖아요. 정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잖아요.” 약자를 보는 안타까운, 따뜻한 정서가 있습니다.
우쓰노미야와 박주영에게서 보듯이, 비주류가 받는 복이 있습니다. 어떤 복인가요? 약자를 귀히 여기는 감수성을 통해 기득권에 매몰되지 않고 인생을 더욱 값지게 사는 복입니다. 기득권 주류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맛 볼 수 없는 영생의 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적은 무리의 복을 말씀합니다. 32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이 말씀은 누가에만 있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마태에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마 18:20) 『분단체제에서 예수살기』에서 두세 사람에 대해 이렇게 주해했습니다.
“현실에서 힘 있는 자가 돈과 폭력으로 대세를 결정하고 그렇게 해서 허다한 사람들을 자기 뜻 아래 복종시키지만, 세상에는 진실과 정의에 뜻을 둔 두세 사람이 있다. 그리고 주님은 거짓과 폭력에 빌붙은 허다한 사람들 대신에 약하디 약한 두세 사람 편에 계신다.”라고.

비주류 두세 사람이 예수의 현존 아래 있듯이, 누가 말씀은 하나님나라는 오직 작은 자에게만 돌아간다고 합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세력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나라는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하지만, 힘 있는 자들은 자기들 세계가 너무나 달콤해서 결코 하나님나라 따위에는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영남공고 이사장과 교장, 기간제 여교사들을 교육청 간부들 노래방 도우미로 썼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 권력 누리는 맛에 취해서 기간제 여교사들의 모욕감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나라가 가장 우선시하는 약자배려 생각이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나라를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 세 가지 사례가 등장합니다.
1) 너희 소유를 하늘에 쌓아라, 2) 깨어 기다리는 종, 3) 깨어 있는 집주인이야기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같습니다.
우리는 소유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고 하나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일단 냉장고가 없으니 음식을 쌓아놓을 수가 없고, 자연히 과잉이나 부패가 없습니다. 그런데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독점이 생기고 과잉과 부패가 생깁니다. 소유 집착이 그렇습니다. 하늘 재물은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는 말씀은 이미 자선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돌아갔으므로, 독점과잉부패를 유발한 재물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재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는 말씀은 가장 귀한 것에 마음이 따라가기 마련이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이 가 있다면 자연히 재물도 그곳에 있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사례도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이 언제 집을 뚫을 것이라고 예고하는 도둑은 없습니다. 그처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오므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주목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번째 사례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한 특징이 있습니다.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37절)

보통 주인은 일을 잘하는 종에게 어떻게 하나요? 크게 칭찬하고 상을 줍니다. 그런데 오늘 사례를 보면, 주인은 종과 역할을 바꿉니다. 아예 자신이 종이 돼서 시중을 듭니다. 실제 이런 사례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파격적입니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하나님나라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나라는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엎은 세상이라고. 주인은 여전히 주인으로 군림하고 종은 끝끝내 종으로 있는 나라는 하나님나라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듯이, 역할이 바뀌어 평등을 누리는 세상이 진정 하나님나라입니다. 주인은 종이 될 수 있고 종은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 하나님나라입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평생 주인노릇만 해 온 사람은 이 역할분담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세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돈으로, 합법적 폭력으로, 이데올로기로. 모든 세계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기존세계를 추인하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하늘이 정해 놓은 양, 주인이 종을 학대하는 세상을 고정시키기 위해 예수는 하나님나라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지금 우리 세상은 하나님나라와 너무 멉니다.

종은 밤중에도 새벽에도 깨어 있어서 복되다고 합니다. 말씀에서는 주인을 기다리느라 깨어 있는데, 실제 우리는 무엇에 깨어 있어야 하나요? MBC 스트레이트에서 방송한 교회의 친일행각을 보셨나요? 헛소리, 망발이 교회의 공식언어가 됐습니다. 카톡으로 설교로 거짓을 유포합니다. 한 교회는 건물에서 숙식하며 기도회하고 댓글 다는 일을 밤낮으로 합니다. 내년 총선을 대비해서 조직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선교라는 미명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거룩한 전례가 망령된 말을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구약 본문인 이사야는 외칩니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사 1:12,13)
똑같은 심정으로 예수님도 외칩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 23:15)

우리가 깨어서 부단히 수행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북한을 혐오할 게 아니라 분단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미국에 달라붙을 게 아니라, 자주주권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놓은 노동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노동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지구의 기후가 급속하게 위기로 치닫는 세상에서 후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부자 되기를 포기하고 개발과 성장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자족하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득권 경제와 정치권력에 매몰돼서 그들이 조장하는 질서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고 궁리하고 선도해야 합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온다고 하지만, 이미 위기징후는 충분합니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향해 전심전력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소유에 집착해서 때를 분별 못하고 세월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을 하나님나라에 맞게 투신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감동이 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지금처럼 맘몬이 하나님인 세상에서 맘몬을 거부하라는 말씀은 자연히 적은 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적은 무리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적은 자들의 헌신과 투쟁으로 역사를 변혁했습니다. 여러분도 그 대열에 드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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