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운동계의 자아성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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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운동계의 자아성찰서
  • 백창욱
  • 승인 2019.07.1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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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동글이, 싸움의 철학'

『둥글이, 싸움의 철학』 나는 이 책을 펴기 전에는, 둥글이가 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 일화 등을 재미 위주로 쓴 줄 알았다. 알다시피 둥글이는 유머와 해학의 달인이기에. 그런데 읽고 보니 그게 아니다. 인생 철학서다. 시중에 범람하는 처세서와는 근본이 다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진보운동계의 자아성찰서다. 성찰하지 못하는 자칭 진보운동 시민에 대한 죽비이다. 왜냐하면 전국에서 내노라 하는 민주시민이 모여든 분쟁현장에서 보고 겪고 사고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한 문장이라도 놓칠까봐 밑줄 치며 읽었다. 그만큼 글이 수미일관하다. 도대체 이런 의식과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싸움의 고수가 아니라 인생의 고수로 모실 판이다. 며칠 전 이 책을 소개할 때, “이 책 읽고 싸움의 고수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투쟁에 임하는지, 싸움을 통해 어떻게 수행을 하고 자아성찰과 완성을 향해 가는지 배울 참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오늘 둥글이의 존재가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님을 새삼 감탄하며 확인한다.

몇 군데 인용한다. “온정주의적 사고의 결정적인 맹점은 감각과 감성을 자극할 때, 즉 눈앞에 사태가 보일 때에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안 보일 때에는 그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 “하지만 돈벌이는 많이 하고 싶고, 버려진 쓰레기는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니, 종이컵과 비닐봉지 문제에만 맹렬히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적할 때마다 자신의 도덕적 허기가 채워지는 충만함을 느끼기 때문에 더더욱 집착한다. 이는 열정낭비이다.”(116, 118쪽, ‘감성의 저편’에서)

“매사에 공식을 적용하듯 하는 ‘성찰없는 정의감’이, 남들에게보다 본인 자신에게 해악이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오히려 그 리듬과 패턴을 끊는 것, 사사건건 나서서 성에 차지 않는 것을 바꾸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그 발상 자체를 끊는 것에 더 본질적 정의와 선이 자리하고 있다.”(133쪽, ‘어린이 되기’에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이는 증오로 변질되고, 그와 어우러지는 공포와 함께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냉소주의, 허무주의, 파괴주의로 치닫게 된다. 그렇게 자기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이상을 향한 투쟁은 빛바랜 구호로 퇴색하고, 스스로 건사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161쪽, ‘분노와 증오’에서) “자기 존재의 기반을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자신의 ‘정상성’을 의심하며,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와 자율의 길을 뚫는 것은 싸움의 고수가 되는 관건이다.”(248쪽, ‘제 정신일리 없는 나’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여유이고, 높이는 목소리가 아니라 낮추는 침묵이며, 나아가려는 추진력이 아니라 한 발짝 뒤로 물러날 줄 아는 겸허이다.”(290쪽, ‘여유 만들기’에서) 인용할 게 무수히 많지만 몇 개만 추렸다. 글 하나하나가 그냥 나온 게 아님을 느낀다.

또 놀란 것은 소주제 글이 끝날 때마다 명사의 격언을 실었는데, 그 내용들이 주제를 압축하는 절묘 그 자체다. 나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이 많은 사상가들은 어떻게 아는 것이며, 그 중에서 필요한 말을 끄집어내는 역량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추구하는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 이 많은 사상가와 연결됐을 것이다. 단적으로 본인의 학습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자신이 진보운동권에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무조건 읽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이 책이 대박나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온전함을 위해 필독서로 감히 추천한다. 그동안 둥글이를 재미있는 사람으로만 인식했던 나의 선입견을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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