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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진통없이 평화는 없다.
2019년 07월 15일 (월) 14:57:25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출애굽기 1:8-14;22, 마태오복음 10:34─11:1 (시편 124)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10:39절)

   
▲ 십자가 없이 부활 없듯 진통 없이 평화는 없다. 그래야 그 부활 그 평화는 진짜가 된다.

주님은 진정한 평화를 주고자 하십니다.
허울 좋은 안정이 아닌 참된 평화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에 함몰되어 부화뇌동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것을 살려내기 위해 거짓된 것을 과감히 잘라내는 칼질로 일궈내는 평화입니다.
그러니 당장 의리에 휩쓸리던 사람들에게는 분열을 획책하는 듯이 보일 수 있습니다.
가정공동체마저도 깨지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가 온전히 상봉할 때 그 깨짐이 왜 필요했는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주님은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의 칼질’은 폭력이 아닙니다.
남을 해하며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 모두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힘의 균형’을 통한 것이 아니라 우아한 패배를 통한 평화입니다.

그런 길을 가는 그리스도신앙입니다.
그러니 그다지 만만치 않은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갈 때 냉수 한 사발 얻어먹기도 힘들다 하시는 것입니다.
냉수 한 사발이라도 주는 이가 있으면 그는 하늘 상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파송된 길은 단단한 각오와 결의가 필요한 길이기에,
식별력 있는 사랑의 길이기에,
패배의 미학이 있는 길이기에,
좀 드세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격려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하루 또한 주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시간입니다.
참된 평화를 일구기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준엄한 꾸짖음처럼(이사 1:11-17)
손에 피를 가득 묻힌 채 겉만 번지르르 꾸민 평화가 아닌
진실이 아름답게 새겨진 평화가
나를 통해, 우리를 통해 피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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