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의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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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의존하라
  • 백창욱
  • 승인 2019.07.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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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설교문(19. 7. 7)

주일설교문(19. 7. 7)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
누가 10:1-11, 16-20 “서로 의존하라”


저는 24살 때 근본주의에서 전향한 이후, 한 번도 근본주의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59년 살아온 인생에 허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근본주의와 결별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근본주의와 결별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평생 소수로 산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제가 소수인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소명으로 여겼습니다.

▲ (@ Pixabay)
본격적으로 신학수업을 할 때부터는 한국교회의 관습적인 성서해석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부단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여전히 남의 글을 따라가기 바쁜 때여서 창의적으로 내 주장을 할 단계는 못 되었습니다. 제가 주체적으로 성서를 해석하려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대구 논공에서 개척교회 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개척 십년은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2007년 개척해서 3년 동안, 도움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 말고, 정착교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3년을 아내와 딸, 장인 장모님과 예배했습니다. 2010년 손영준 집사님이 첫 교인입니다. 성서로 와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을 겪을래? 하고 누가 물으면 단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입니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오직 하나, 근본주의 신앙을 극복하고 대안신앙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알다시피 저는 무재주입니다. 행사나 이벤트에 젬병입니다. 교회가 부실해도 재주가 없어서 어떻게 이 곤란을 헤쳐 나갈지 방법을 몰라서 그냥 견뎠습니다. 천성이 조금 성실한 것과 성서에 대해서만 조금 친숙할 뿐입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교회노선은 근본주의를 따라가지 않고 대안교회상을 지향하겠다는 일념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요즘 여러분을 만나고, 교회가 조금 활성화된 것은 십년 세월 견딘 것에 대한 하나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또 하나 감사한 일은 대안교회를 지향한다는 일념이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성서해석 할 때 하나씩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권의 책을 낸 것도 대안신앙, 대안교회 노선에 대한 결과물이고, 요즘 진밭교 평화기도회 때도 오랜 세월 쉬이 풀리지 않는 말씀들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자주의 성서해석 대신 ‘대안성서해석’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 진밭기도회 때도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귀신들림, 나병, 중풍에 대해, 또 예수님의 사죄선언에 대해 민중해방적 시각으로 해석했습니다. 긴 세월 고군분투는 대구새민족교회를 한국교회에서 대안신앙과 대안교회의 특징있는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에서 이새의 줄기이며, 그루터기 같은 교회입니다.

지난주에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를 읽었습니다. 부제는 ‘예수의 복음과 복음서 예수의 역사적 진실’입니다. 두 번째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나 하고 흥분한 대목도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 비교해서 그간 저의 관심사와 안목의 발전에 따라 그전에 못 보던 것들을 재발견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은 주옥같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장인 7장 ‘부활절 일요일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간추려 전하겠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그 이야기들은(복음서 부활증언) 부활절 첫 일요일에 발생한 사건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또는 부활절 일요일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 것이다.(그날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뜻) 역사적으로 실제 발생한 일은, 예수가 처형되기 전부터 그를 믿었던 사람들이 처형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부활절은 새로운 신앙의 출발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옛 신앙의 계속과 관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맨발로 갈릴리의 도로를 걸어 다녔던 사람들, 발이 부르트도록 계속해서 마을들을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 위해 성서(구약)를 탐구해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다.(기독교를 역사에 남긴 사람들을 말한다) 예수의 모든 제자들이 성금요일(예수가 처형된 날)에 그들 자신의 신앙을 잃어버렸으며 부활절 일요일에 예수의 현현을 체험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회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끔찍한 단순화이다. 용기를 잃고 달아나 숨은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 소망, 사랑까지도 잃어버렸다고 가정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단순화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적 권위를 놓고 경쟁하는 일에 관한 부활 이야기들을 원초적인 기독교 체험에 관한 이야기들로 오해하는 것 역시 단순화일 뿐이다.”(302쪽)
이 글을 소개하는 까닭은 저자가 끔찍한 내지는 평범한 단순화라고 말하는 세 가지가 사실은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소개하겠습니다. “역사적 예수는 유대인 농민 견유철학자였다. 그의 시골 마을은 셉포리스와 같은 그리스-로마 도시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견유철학에 대해 듣거나 보는 일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남부 갈릴리의 촌락과 집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전략은 무료 치유와 공동 식사를 결합하는 것, 즉 유대 종교와 로마 권력 양쪽의 계층구조적이고 후견체제 현실을 똑같이 부정하는 종교적이고 경제적 평등주의였다. 그리고 자신이 단순히 하나님의 새로운 브로커로 여겨져서는 안 되겠기에, 그는 나사렛이나 가버나움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여 나갔다. 좀 역설적으로 말해서, 그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브로커도 매개자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한 사람이었다. 기적과 비유, 치유와 식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간에 어떤 매개자도 없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들 서로 간에도 만나게 해 주었던 계산된 전략이었다. 다른 말로 해서 예수는 브로커 없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313-314쪽)

크로산 글의 특징은 예수와 복음서를 분석할 때, 성서만 분석하는 게 아니고, 교차문화적 인류학을 통해, 다양한 자료들을 동원해서 상호 비교, 검증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분석방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서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복음서도 역시 그 시대 타문화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한국사회 영향을 고스란히 받듯이,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 분석에도 성서의 사복음서 뿐만 아니라 도마복음, Q복음(마태와 누가의 공통말씀)에서 같은 내용을 비교 서술합니다. 자료가 하나이면 주관적 주장이기 십상인데 여러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서 나온 객관적 서술입니다.
크로산의 책은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통찰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견유학파의 행태, 예수 선교사 윤리규정이 그러한 이유, 질병과 치유에 대해서 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 70인 제자 파송은 누가의 창작입니다. 열둘과 끊임없이 이동하며 다니는 것만 해도 큰일인데 별도로 일흔을 육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9장에서 ‘열둘’을 파송하고 10장에서 ‘일흔’ 사람을 파송합니다. 누가는 이스라엘에서 열둘과 일흔이 갖는 의미에 착안해서 자신의 신학서술에 활용합니다. 열둘의 요점은 예수의 공동체가 야곱의 열두 아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이룬다는 뜻이고 일흔은 창 10장에 나오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의 수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선교사 윤리입니다. 선교사 윤리규정을 보겠습니다. 4절입니다.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이 규정은 하나님나라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왜 이런 금지조항을 말씀하나요? 동시대를 살았던 견유학파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디오게네스로 대표하는 견유철학자의 행태에 대한 글을 보겠습니다.
“견유철학자는 자기의 전대와 지팡이, 그리고 오른쪽 어깨를 다 드러낼 만큼 헤어지고 찢어진 더러운 외투를 걸치지 않고서는 아무 곳에도 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신발을 신는 법이 없으며 머리와 수염은 길고 텁수룩하다.”

이 설명은 무엇을 말하나요? 견유학파는 사회의 물질적 가치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들의 입장이 반문화적임을 드러냅니다. 기원전 336년,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 사이의 일화를 알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기원전 45년 키케로도 그의 책에 실었습니다.

“알렉산더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만 하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해를 가리지 말고 조금만 비켜 주시오. 알렉산더는 그가 햇볕에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화에서 보듯이, 견유학파의 생활과 의복은 그들의 말과 설교만큼 강력한 웅변이 되었습니다. 견유학파의 행태는 선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즉 일세기 급진적 선교사들은 대중에게 나아갈 때 그들의 말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통해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견유학파와 예수의 선교사들 사이에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견유학파는 자급자족을 했습니다. 전대 곧 배낭에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다녔습니다. 전대(纏帶)는 돈 주머니가 아닙니다. ‘돈 전’을 연상하기 쉬운데, 한자를 보면, ‘얽힐 전 띠 대’ 입니다. 허리에 두르거나 어깨에 메는 자루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의 선교사들은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왜? 처음부터 예수운동은 세리와 죄인, 이방인들을 수용하는 환대와 치유, 차별없는 식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상호의존 관계가 예수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에 예수의 선교사들은 떠돌아다닐 때도 자급자족하는 대신, 전대도 자루도 신도 없이 집들을 방문하면서 활동했습니다. ‘순회하고 의존하라.’ 즉 치유하고 머물고 계속 나아가는 방식으로 하나님나라 운동을 유지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치유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서 에이즈를 질병의 차원에서 치료하는 것과 고통의 차원에서 치유하는 것의 차이점을 보자. 에이즈에 대한 치료는 절대적인 요구 사항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을 추방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또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공감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감싸줌으로써 그 고통을 치유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질병이 사라지면 고통도 그와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질병은 치료될 수 없지만 고통은 어떻게든 치유될 수가 있다면 어떨까? 바로 이것이 예수가 행한 치유기적의 핵심 문제다. 그는 질병을 치료했던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치유한 것인가? 그 병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병도 치료하지 않았고 또 치료할 수 없었던 예수는 그 질병에 따르는 종교의례적인 불결과 사회적인 배척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가련한 사람의 고통을 치유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140-142쪽) 예수는 나병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병자를 이렇게 치유했습니다.

예수 선교사들의 생활윤리는 자급자족 대신 상호의존입니다. 처음 예수운동의 핵심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세리와 죄인, 이방인을 환대하고 치유하고 배제하지 않는 열린 식사로 평등한 하나님나라를 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질병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질병으로 배제와 소외당하는 사람을 감싸는 치유는 할 수 있습니다. 각자생존 대신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생활로 예수운동을 실천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브로커 없는 하나님나라를 살아간 것처럼, 우리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단결할 때 노동자로 옳게 서 듯이, 서로 믿고 서로 의존하십시오. 하나님나라를 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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