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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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 양재성
  • 승인 2019.07.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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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4주 하늘의 소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사 66:10-14, 눅 10:1-11,16-20

▪ 아름다운 동조
급식과 돌봄을 담당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3일부터 사흘 일정의 파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교육 당국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연대회의의 협상이 결렬되자 파업에 돌입하였고 전국에서 5만여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당초 급식 대란이 우려되었으나 정작 파업의 ‘볼모’이자 급식·돌봄 대란의 ‘피해자’라는 학생들 사이에서 파업을 지지하는 선언이 잇따라 주목을 받았습니다. 여러 시민단체나 학부모단체들도 파업 지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일부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급식·돌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사정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는 안내문을 보냈고, 교장과 교사들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장미꽃과 격려금을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 사진제공 : 한현실님
일부 언론이 말하는 급식·돌봄 대란을 이들은 ‘불편’이나 ‘차질’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파업권은 핵심적인 노동기본권이며, 누군가 불편을 겪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제약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는 뜻이 깔려 있습니다. 그 위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실태에 대한 문제의식과 파업에 대한 연대 의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9급의 64%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고, 법률적으로 신분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급식 노동자의 94%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 등 산업안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일선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임금 차별과 신분 불안, 산업재해 문제는 노동 차원뿐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도 큰 문제로 보입니다.
학생들의 파업 지지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 학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70만명 중 절반이 넘는 38만여명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만연하다”며 “이 수치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가 졸업을 하면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라고 밝혀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메시지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얘기하기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교육 당국은 미래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준다는 태도로 이번 파업에 대응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동조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증언에서 비롯되었고 곤란을 겪고 있는 현세대와 미래세대간의 공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예수는 그리스도다
지난 주 금요일, 마포지방 교역자회의에 다녀왔습니다. 햇빛발전소 건설과 지방 내 환경위원회 설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는 예수의 증인이란 설교를 통해 당신의 39년 목회 경험을 정리하여 나누었고 이제야 목회자의 제자리를 찾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70년대 공장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여공들의 참혹한 삶을 보면서 산업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공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동현장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정치와 사회에 분노했고 혁명을 꿈꿨습니다. 그러다 그는 기독교사상 편집주간을 하면서 인문학에 깊이 심취했고 책을 출판하면서 인문학자로 불렸습니다. 종교와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회 개혁가 혹은 영성운동가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목회자로 예수의 증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의 전부로 여겼습니다. 예수에게 완전히 귀의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겐 놀라운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를 절대화했고 그 어느 것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무오설을 믿지는 않았지만 성경 절대주의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대를 혁명하고 변혁하려는 운동권을 비판하였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려는 개혁주의자들을 혹독하게 비난하였습니다. 분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생명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과 그 고백을 살아내는 삶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몇 가지 경험을 들었지만 전체적인 동의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함으로 운동가, 혁명가들의 숭고한 삶을 비판하고 매도하였습니다. 대화는 장시간으로 이어졌고 내 문제제기도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1990년 처음 목회를 시작하면서 예수는 어떤 목회를 하셨는가를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는 크게 두 가지에 천착하셨습니다. 성령의 생각이기도 한 생명과 평화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과 평화로운 세상을 짓는 일이 예수의 일이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는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로마제국에 분노했고 제국에 기생하여 민중을 학대하는 헤롯정권과 민중을 착취하는 가야바 종교권력에 분노하셨습니다. 거룩한 분노는 혁명으로 이어졌고 유대교라는 그 두꺼운 껍질을 뚫고 새로운 종교 운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게 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단순히 교회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운동만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핵심 테제입니다. 이 고백을 기반으로 기독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은 매우 정치적인 고백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민족과 백성들이 그리스도로 믿고 있던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민중을 해방하여 역사의 주체로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한 갈릴리 사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당시 이 만큼 정치적인 메시지는 없습니다. 제국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 하나님의 질서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경제사회적인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공동으로 소유하고 함께 나눔으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원시 공산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대치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급진적인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 소종파 운동가들이었다는 것을 보면 기독교의 경제관이 공유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작금의 세상이 자본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신앙적인 선포입니다. 유대 종교 사회에서 해방자 즉 그리스도를 보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고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범상치 않은 행동으로 요한이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행동을 통하여 위로를 받았고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고 몸의 자유를 위해 싸우게 됨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1990년 첫 목회지에서부터 나는 교회만을 위해 보내지지 않았음을 확신하였고 지역사회와 한반도, 더 나아가서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해 파송되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제를 예수 정신을 갖고 풀어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당연히 교회 밖의 과제도 교회의 기도 제목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회변혁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30년 동안 교회 목회와 사회 선교를 적절히 조합하며 목회하였습니다. 나에게 예수는 혁명가였고 사회변혁을 꿈꾸는 사회운동가였으며 가난한 자들의 친구요 하나님의 뜻에 목숨을 거는 순교자였으며 참 된 영성가였습니다. 예수는 진정한 교육가였으며 삶을 축제로 만드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시인이었으며 탁월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그는 병든 자를 사랑으로 고친 진정한 치유자였고 기도와 예배 공동체를 세운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진정 휴메니스트였습니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자신을 개방하고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 참혹한 세상을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건 예수를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분노를 넘어서지만 분노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작은 소책자가 3천 만권 이상 팔린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분노를 잃어버린 세상은 변화를 멈춘 세상으로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세상은 고인 물이 썩듯이 악취가 진동할겁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나의 목회와 교회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아니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진심을 가지고 예수를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산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어도 그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란 고백은 누구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해석자의 몫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와 목회의 획일화는 위험한 일입니다.

▪ 파송
오늘 성서일과는 누가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0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12명의 사도를 세우고 72명의 전도대를 파송합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두 명을 한 조로 마을에 파송합니다. 여러 원칙이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전대나 자루나 신도 가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화가 있기를 빌고 어느 마을로 들어가든지 영접하는 가정으로 들어가 차려 주는 음식을 먹고 병자를 고쳐주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영접하지 않거든 발에 먼지를 털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그 동네가 소돔과 고모라 성보다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 당시 이미 유대의 마을들이 로마제국에 길들여져 분노를 잃고 노예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끝 모를 절망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로마제국과 헤롯정권과 가야바 종교권력에 저항하지 못하였습니다. 분노를 잃은 사람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유령들의 고장이었습니다. 예수는 그것이 확인이 되면 두 말 하지 않고 그 동네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어느 동네가 들어가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집으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병을 고쳐주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사람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동조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험한 결단이었습니다. 여기서 병은 불신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일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이지만 너희를 거부하는 일은 나를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단언하심으로 제자들의 권위를 당신의 권위로 하나님의 권위로 세우십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70명의 전도대와 당신을 일치시키십니다. 이는 예수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통치에 철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동운명체가 된 것입니다.

▪ 독일의 사과와 일본의 보복
독일은 2차 세계 대전 중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을 포함하여 1000만명의 넘는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가장 잔인한 학살이 폴란드에서 일어났습니다. 일명 아우슈비치 사건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는 독립국이 되지만 독일을 극도로 혐오하게 됩니다. 1970년 서독의 총리가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하여 게토 영웅 기념비에 헌화하기 위해 섰습니다. 여기서 서독의 총리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그 비를 그대로 맞으며 돌바닥에 무릎 꿇고 희생자에게 사죄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본 폴란드 국민은 서독 총리에 대한 반감을 거두게 되었고 독일이 전쟁범죄를 청산하고 사죄하여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재임 기간 중 "동방정책"을 추진해 동독, 폴란드, 나아가 소련까지도 관계를 개선하여 훗날 독일 통일에 초석을 놓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빌리 브란트는 나치가 저지른 죄를 직접 사죄할 이유가 없는 나치에 탄압받은 운동가였다는 사실입니다.
폴란드의 유대인 중 나치에게 끌려가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부부가 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청소 당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당연히 독일 하면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아들도 독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습니다. 아들은 건축가가 되어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통일 후 베를린에서 박물관 건축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응모합니다. 그것은 나치에게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는 박물관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산증인인 그의 설계가 당선되어 그의 구상대로 박물관이 완성됩니다.
그는 희생자가 받았을 상처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기괴한 건축물을 완성했습니다. 건물은 다윗의 별(유대인의 상징문양)을 찢어발긴 모습으로 자리 잡았고, 건물의 외벽에 칼로 베인듯한 수많은 날카로운 장식을 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리베스킨트입니다. 그가 만든 유대인 박물관이 개관식을 가질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초청받아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합니다. 이 때 행사에 참석한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리베스킨트의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사과합니다. 슈뢰더 총리의 아버지는 전쟁 당시 독일군이었습니다. 독일군의 아들이 홀로코스트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입니다.
사과란 사과 받을 사람이 "이제 됐으니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겁니다. 그게 진심이 담긴 사과입니다. 독일인은 그의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나라가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의 역사에 가장 아픈 상처를 준 나라 일본입니다. 아베 정부는 한국의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3개 전략품목에 수출통제 조처를 실행했습니다. 일본이 한반도 강점 시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합니다. 청와대는 4일 “최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해 취한 수출 규제 조치는 WTO 규범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보복적 성격”이라며 “조치를 철회하도록 WTO 제소를 포함해 외교적 대응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내 언론들도 앞 다투어 보복조치가 부메랑이 되어 일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철회해야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신문이 치밀한 대응전략을 주문한 가운데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일본과 적극 소통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역시 친일 신문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오만에 대응하는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의 행동이 눈에 띕니다. 마트는 일본 제품을 반환 처리하였고 일본 상품 코너를 비웠습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가배상과 정부차원만 기다렸던 시민들이 이젠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건강한 한일관계는 건강한 시민들이 나서서 길을 모색해야합니다.

▪ 인류를 향하여
지난주일 오후, 남북미 정상들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문자적 선언문은 없었지만 이 만남은 실질적인 남북 종전선언이었고 북미종선 선언이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으로 한반도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정치적 계산이 아닌 양심의 소리를 따라 평화의 길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이 고착되고 남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길 기도합시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갑시다. 이제 예수의 삶을 이어 살아감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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