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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성령강림 후 제3주 하늘의 소리
2019년 07월 04일 (목) 11:17:03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나를 따르라
갈라디아서 5:1, 13~25 누가복음 9:51~62


▪ 아버지 1주기 추모예식
아버지가 소천하신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타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 만나 점심을 드시고 집에 돌아와 동네 반장을 불러 고추 밭에 농약을 치라고 말하시곤 사과나무 밑에 풀을 뽑으시다가 쓰러져선 그만 일어나지 못하시고 귀천하셨습니다. 급작스런 비보에 황망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1주기를 맞아 온 식구가 고향에 모였습니다. 벌초를 하고 추도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 사진 : 한현실님 페이스북
아버지 귀천 1주기에 간밤에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계절이 참 예쁩니다. 나의 아버진 농부이셨습니다. 아버진 농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천직으로 여기셨습니다. 흙과 더불어 평생을 사셨습니다. 서정홍 시인의 말처럼 흙과 살아서 저절로 착해지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노력한 만큼 열매를 얻는다는 진리를 철칙으로 여기며 사셨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나의 아버진 신앙인이셨습니다. 뒤 늦게 믿음의 길로 들어섰지만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셨습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첫 목회를 나갈 때 이삿짐을 싣고 내려오셔선 이제 내가 교회에 나가마 약속하시곤 한 번도 교회를 빠지지 않고 출석하였습니다.
나의 아버진 좋은 아버지이셨습니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기분파셨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놀라웠습니다. 그 사랑이 오늘날 저를 살리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진 애처가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어머닌 아셨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 귀천 후 아버지의 홀로서기는 아슬아슬했습니다. 형수님과 동생 덕분에 홀로서기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젠 하늘이 별이 되셨습니다. 가끔은 내려와 너 잘하고 있다며 격려도 아끼지 않습니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입니다.

▪ 부르심
오늘의 성서일과는 누가복음 9장의 말씀입니다.
예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건 순례입니다. 예수님은 미리 심부름꾼을 보내어 당신이 들어갈 마을에 거할 처소를 미리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마을에선 예수님의 일행을 거절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분노하며 불이 내려와 태워버리라고 명령하자고 제안하지만 단번에 거절하시며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분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목사의 신분으로 사욕을 쫓는 일이나 하나님의 은사를 돈 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마을로 가자며 길을 가고 있는 데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탄하시곤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작 그들은 이런 저런 합리적인 핑계를 대며 부름에 응답을 미룹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장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심부름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임을 인식하셨고 평생을 그 일을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출가하시어 처음 하신 일은 제자를 부르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고 치유와 기적 사건을 통해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 실현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도는 단호합니다. “죽은 이들은 죽은 이들이 장사하게 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책망하십니다. 신앙은 여가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적당히 타협하여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신앙은 내 생의 보험을 드는 안전장치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이 우리 삶의 본업인 것입니다. 신앙을 잘 이루기 위해 내 삶이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신앙적 행동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 제자도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존 스토트 목사는 88세에 <제자도>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신도들에게 당부한 것이 제자도였습니다. 그는 8가지 제자도의 주제어로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 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을 뽑았습니다.
먼저 세상 풍조에 대한 불순응입니다. 그는 신도들이 맞서야 할 세상 풍조로 물질주의를 뽑았습니다. 부를 추구하는 삶이나, 자녀의 학교 진학에 대한 부분, 성공주의 등이 물질주의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질주의는 경제논리에 기반 된 바벨탑이요 바알숭배신앙입니다. 신앙생활에 세상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난다면 이는 참 된 신앙이 아니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의 모델은 역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짐과 섬김, 기도와 사랑의 삶을 닮아야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백성을 약탈하고 억압하는 제국과 종교권력에 저항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민중들과 함께 하셨고 민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면 개별적 자각과 성숙이 요구됩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성장이 아니라 성숙입니다. 정신과 영혼의 성숙을 통해 관계의 성숙을 가져와야합니다. 기독교에서 관계를 말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 간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자연과의 관계는 피조물들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무분별한 자연 파괴 행위와 맞서야 합니다. 생태계 파괴를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궁극적으로 창조세계의 청지기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좁은 길로 초대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삶에로의 초대입니다. 아울러 균형 있는 삶을 요청받았습니다. 경건한 삶, 우애하는 가족, 민주적인 시민, 평화를 위한 일꾼, 인류에 헌신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이 할 수 없는 균형이 필요한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에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만 의지해선 세상을 돌파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버려두지 않습니다. 애비가 자식을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제자는 세상의 지혜와 권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릅니다. 제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또 다른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 본회퍼의 값진 은혜
요즘 전광훈이라는 작자에 의해 본회퍼 목사가 희롱당하고 있어 화가 납니다만 본회퍼야말로 놀라운 신앙인이었습니다.
“값싼 은혜란 우리 교회의 철천지 원수이다. 오늘날 우리의 투쟁은 값진 은총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투쟁이다. 값싼 은혜란 싸구려 상품과 같은 은혜요. 헐값으로 팔아치우는 사죄요, 위로요, 성례전이다. 값싼 은혜란 교회의 창고에 무진장 쌓여 있는 상품처럼 손쉽게 주저 없이 그리고 무한정 쏟아버릴 수 있는 은혜다. 값싼 은혜란 공짜로 주는 은혜요.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은혜다. 값진 은혜란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기쁨으로 이를 산다. 값진 은혜란 귀한 보석이다. 이를 얻기 위해 상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놓는다.”
본회퍼 목사의 값싼 은혜와 값진 은혜에 대한 견해입니다. 희생이 없는 은혜는 값싼 은혜입니다. 하지만 값진 은혜는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부르심은 온 삶을 불러와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참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그 부르심에 경도됩니다. 값진 은혜란 역사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값진 은혜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처음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들은 아비와 가족,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자기가 목숨처럼 여겨왔던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주님의 부르심에 단순하게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말씀의 요구에 이성적 이해 타산적 개입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급진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순종입니다. 그리스도가 원하는 것은 세상보다 말씀을 더 든든한 토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는 불의한 권력과 시민종교와 예수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력을 향해 죽기까지 싸운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독일의 황제이자 신이였던 히틀러에 저항하고 믿음을 지키고 십자가를 지었던 위대한 순교자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독재와 우상숭배를 찬양하고 사악한 권력을 지지할 때 끝까지 주님을 따르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갔던 진정한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본회퍼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강조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다운 행동과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렇다 성경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살라고 합니다.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어 공공선을 회복하고 사회적 진리를 펼치라고 합니다.

▪ 나의 부르심
저는 여러 차례 부르심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목회에 대한 부르심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난 후 나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감지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며 이후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번도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했던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를 거역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진 당신의 체면과 나의 생활을 위해 더 나은 대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도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 때 내가 취한 행동은 단순한 순종이었습니다. 그 이후 단순한 순종은 매번 요구되었습니다. 지금도 단순한 순종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목회를 함양으로 내려간 것도 환경연대 사무총장으로 온 것도 임기를 마치고 예수살기 총무로 일하게 된 것도 가재울녹색교회를 세우게 된 것도 새물결을 맡게 된 것도 모두 단순한 순종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거기에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읽히면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놀랍기만 합니다.

▪ 감리교회 개혁
학연을 넘어서 연대, 세대를 넘어서 통합, 성별을 넘어서 평등, 진정한 감리교회 개혁을 위해 일어선 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총회 입법의회에 상정할 장정개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총 세 가지 법안의 개정안을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감리사 피선거권 제한을 철폐하도록 제안하였습니다.
현재 감리교회는 비전교회(미자립교회)가 50%에 육박합니다. 하지만 감리사 피선거권에 비전교회가 제외되어 있습니다. 결국 절반의 목회자는 감리사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여 위헌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제한을 폐지하자는 개정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감독, 감독회장 선거법입니다.
선거법은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크게 서너 가지로 정리되었습니다. 먼저는 선거권자의 확대입니다. 현행 정회원 11년 급을 마친 목회자와 동수의 평신도 대표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선거권자를 19세로 규정하고 있는 일반법 취지로도 이해할 수 없는 법 규정입니다. 이에 모든 정회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제안입니다. 이 개정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어 개정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거기에 후보 추천제와 선거공영제를 도입하여 보다 공정하게 선거를 운용하자는 제안입니다. 문턱은 낮추고 후보자 검증은 강화하고 정책 발표회 횟수를 늘려 선거권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불법 선거에 사범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돈을 준 자도 돈을 받은 자도 돈을 요구한 자도 일괄적으로 처벌하자는 제안입니다. 일명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입니다.
세 번째는 의회법입니다.
총회 대표 선출을 평신도는 지방회에서 평신도들이, 여성대표는 여성들이, 50세 미만 대표들은 50세 미만들이 모여 직접 뽑기로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총대를 세 번 연속하지 못하도록 하여 다소 기회를 균등하게 주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일로 목회자들, 평신도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물결에 대한 기대가 큼을 느꼈고 그 만큼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책임감도 커진 셈입니다. 또한 내부 동력도 상당부분 가동되어 검증도 되었습니다. 이제부터입니다. 감리교회의 개혁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하며 끝까지 가야합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은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 초대하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신앙의 길에 들어선 여러분, 하나님 신앙을 위해 여러분이 포기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버렸습니까? 리스트를 작성해 보십시오. 버린 것이 별로 없다면 아직도 값싼 은총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값진 은혜는 제 목숨을 버릴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경도되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내 목숨을 필요하신 분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를 살릴 뿐만 아니라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 나아가 인류를 살리는 길임을 믿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자고 제안하십니다. 이제 바쁘다고 핑계하지 맙시다.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십시오. 믿음이 없다고 손 놓고 주저앉지 맙시다. 믿음을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적당히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도 믿은 만큼만 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궁무진하지만 나의 태도와 참여에 따라 책정됩니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길에서 인류의 구원을 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 그 길(The way)에서 “길은 내가 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란 말이 아들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진정한 길은 주어집니다. 자신이 걸어야할 진짜 길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길이 그를 찾아옵니다. 우리 그 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그 길에 함께 나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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