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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공동체적이어야
공동체 믿음 신실하고 끊김 없어야 복됨
2019년 07월 04일 (목) 10:42:41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창세기 22:1-19, 마태오복음 9:1-8 (시편 116:1-9)

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호수를 건너 자기 동네로 돌아오시자 2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3 그러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 사람이 하느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며 수군거렸다. 4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어찌하여 너희들은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5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마." 하시고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하고 명령하시자 7 그는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8 이것을 보고 무리는 두려워하는 한편, 사람에게 이런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마태 9:1-8)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2절b)

   
▲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믿는 이들의 믿음 안에서 더불어 함께 생활한다. 그 공동체적 믿음은 신실하고 끊김이 없기에 교회를 사는 이들은 복되다.

요즘은 동네 어디를 가도 중풍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큰 형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오랜 기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셨기에 뇌졸중이라는 병의 본 모습을 익히 알고 있지요.
어머니는 오랜 기간 식물인간으로 누워계시다 돌아가셨고 그때 마침 시간이 많았던 제가 어머니 곁에서 수발을 해드린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의 난감함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는 전신마비가 온 환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지요.
꽃동네 같은 시설에 가면 이런 환자분도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는 한 병실이 아닌 일반 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이는 그 방 사람들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환자의 팔다리가 되어주는 이들이 있어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별다른 시설이 없던 예수님 시절에는 필경 그와 같은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겠습니다.
중풍병자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은 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일생을 사는 것이니 그 고생이 말이 아닐 터입니다.
애가 타는 마음은 환자나 함께 지내는 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이들이 한 마음이 되어 예수님께 나아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곧 환자와 환자를 데리고 온 일련의 사람들, 그 애타는 삶의 공동체의 믿음을 가상하게 보셨지요.
그들은 주변 여건의 어려움을 뚫고 예수님을 만나고 마침내 삶의 질곡에서 해방됩니다.

중풍병자의 이야기는 사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중풍병자일 수도 있고 환자와 더불어 사는 이가 나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중풍병자처럼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공동체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공동체적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누군가 말했지요. 혼자서 천국 가면 외로워서 어찌 살겠냐고. 그게 어디 천국이겠냐고.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믿는 이들의 믿음 안에서 더불어 함께 생활합니다.
그 공동체적 믿음은 신실하고 끊김이 없기에 교회를 사는 이들은 복됩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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