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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에 참여하는 아픔
교회 지켜온 순교자들의 이야기
2019년 07월 03일 (수) 11:36:01 김경호 kim17kh@hanmail.net

거룩함에 참여하는 아픔
고린도후서 12장 6~10절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은 여행, 단지 노회에서 바람쐬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례다운 성지순례가 되었다. 기획하는 목사님께서 그냥 여행상품이 아니고 직접 그 지역에 유서깊은 교회들을 찾아서 순례하는 프로그램으로 짰다. 아제르바이젠, 조지아, 아르메니아-코카사스 산맥 사이에 자리잡은 세나라 모두 구 소련연방 국가인데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다. 이 나라들은 희랍정교회가 뿌리 깊은 나라였고 아르메니아는 사도교회라는 독자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 국가가 된 나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신들이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기 전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서방 교회에서 동방으로 복음이 전파되어서 서방 가톨릭교회 이후에 동방의 희랍 정교회가 생긴 정도로 알았는데 복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사도들 중에는 처음부터 동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분들이 있어서 오히려 로마보다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인 독자적 전통을 가졌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들 역시 서방교회 못지않게 대단히 신실한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성지 순례가 되었다.

세 개 나라에서 특징이 있는 교회, 성당만 40여개 가까이 찾아다니는 순례였다. 솔직히 비슷한 교회들이라 재미는 그다지.... 그러나 그중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교회가 5교회 정도였다. 사진과 함께 잘 정리해서 다음주 수련회 주제강연 주제에 맞추어 진행할 예정이다. 유럽 여행에 필수인 교회 건축의 흐름과 변천, 예를들면 바실리카,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 등등의 역사와 특징, 그리고 동방 교회의 역사, 그들의 순교의 역사,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피로 지켜온 역사에 대해 신학과 문화사를 겸해서 살펴볼 예정이다. 앞으로 유럽 여행의 기본은 그들의 문화유산인 교회나 성당을 보는 것인데 기본을 알고 보면 상당한 식견이 생길 것이다.

향린교회 창립자이신 홍창의 장로님은 소아과에서 한국 제일의 권위자이시다. 서울대학교 병원장을 지내시고 아직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장로님께서 쓰신 소아과 교재를 교과서처럼 공부한다. 의학계에 원로시고 의사들이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어서 환자들을 돌볼 때에, 의사들이 환자만을 돌볼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공헌해야 한다며 “인의협-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를 만드는데도 공헌하셨다. 장로님은 자신이 쓰신 책에서 여러 가지 임상 경험을 기록하고 계신데 그중 하나는 백혈병을 앓는 어린이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백혈병은 사형선고로 여겼으나 미국에 가서 새로운 치료요법을 배워서 한국에 적용하셨다. 재발이 수시로 일어나는 병이라 수년간 지켜봐야한다. 그런데 한 어린이 집이 부유해서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다행이도 그는 ‘관해’가 와서 기뻐하였다. 관해라는 것은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병이 치유되는 것을 말한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니 완치라는 말은 쓰지 않고 관해(寬解)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재발되었고 고환에 백혈병 세포가 침식되었다. 당시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으나 방사선 요법과 화학요법을 실시하여 수년간 재 발 없이 완치되었다.

그동안 부모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러나 그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친구를 잘못사귀어서 며칠 씩 집에 들어오지 않고 속을 썪였다. 부모는 ‘차리리 그 때 죽어 버렸으면 좋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로님께서도 마음이 아파 몇 번 아이를 만나서 그때 어머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아느냐며 마음을 잡도록 달래보았는데 그 때 마다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은 계속 그런 생활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큰 실망을 하셨다고 한다. 육체의 질병만으로 모든 것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한 예는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으로 오는 병인데 심한 심장병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면역력이 약해서 전염병에 잘 걸린다. 정신발달도 지연되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운 증후군으로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던 어린이의 부모가 장로님께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정이를 키우며 오히려 저를 낮추고 인내하는 힘, 이겨내는 힘,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조금 이라도 베풀고 싶은 마음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은 그건 저 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저보다 더 열심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신통해서인지 주위 어른 들이 모두 대견해 하십니다. 장애인이지만 당당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정이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합니다. 한 달에 1-2번 정도는 부서 책임자와 면담시간을 갖으며 도움을 받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정이를 통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81-82 쪽)

선천성 질환은 일생동안 그 병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고 그 병 자체를 고칠 수는 없다. 이 어린이의 경우 심장병과 폐결핵 늑막염등의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지능 지체상태는 그대로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현대의학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보람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느냐하는 것이다. 다운 증후군은 대개 성질이 온순하여 옆에서 잘 도와주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생을 보낼 수 있다. 병 자체의 치료는 안되지만 그의 삶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한계는 한계이고,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삶을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한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앞에 예를 들은 극단적인 둘 사이에 어디엔가 우리들의 삶이 걸쳐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 열 명 중에 단 한명만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불치의 병,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할 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누가 17:19)고 선언하신다. 그들은 모두 육체적으로 고침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육체의 병은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오직 한사람뿐이었고 그는 구원을 받았다. 육체의 질병이 고침을 받는 것과 별도로 우리가 완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니 감사가 구원의 조건이라기보다는 늘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구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감사하며, 정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우리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참다운 구원을 선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홍창의 장로님은 육체의 치료와 정신의 치료는 같이 간다고 하시면서 향린교회 창립자이기도 하지만 서울대학병원교회와 아산병원교회 창립자이시기도 하다. 국립병원이고 특별히 교회와 인연이 없는 두 큰 병원에 반드시 교회가 있어야 한다며 서울대 병원교회를 설립하시고 초기에 오랫동안 향린교회에서 원목을 파송해서 병원선교를 유지해왔다. 또 66년 향린 역사에 왜 교회에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일관되게 교회를 지켜오셨고, 전력을 다해서 자신이 지켜온 의사의 직분만큼 아니 그 보다 소중하게 교회를 지키셨다.

바울은 몸에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에 대해서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병이 낫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런 답을 주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고전 12:9)하고 말씀하셨다. 학자들은 바울을 괴롭히는 질병이 심각한 안질이나 두통 혹은 간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는 그에게 희한한 능력이 주어져서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을 정도였다(행 19:12). 그런데 정작 바울은 평생을 자기를 괴롭히는 질병을 난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이 질병을 하나님께서 “나를 교만하지 않게 지키기 위해서 주시는 가시”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내 몸에 찌르는 가시”를 주셨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가?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2:10-11)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는 사상가로 파스칼이 있다. 파스칼은 39세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39년 2개월 이란 그의 일생은 투병의 세월이었다.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는 그의 유명한 저서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했는데 그야말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갈대 같이 허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심한 두통과 복통으로 고생했는데 현대의학자들은 그의 병을 결핵성 복막염이라고 진단한다. 다음은 그가 죽기 3년 전에 한 그의 기도문이다.

당신은 나에게 당신에게 봉사하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속되게 사용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바로잡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병을 주셨습니다. 나는 나의 건강을 악용했습니다. 만일 나의 체력이 지속되는 동안 나의 마음이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찬다면 나의 영혼을 위해서 나의 기력을 없애주소서. 육체의 허약에 의하든지 사람의 열성에 의하든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기쁘게 하도록 하옵소서. 육체의 병이 영혼의 약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이 비참한 흙덩이 위에 당신의 영을 쏟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나는 슬픔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것이 선이요. 당신을 거역하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를 당신에게 결합시켜 주시옵소서(홍창의. 『마음의 고향』 74쪽에서 인용).

이번에 순례한 나라들은 사회주의권의 국가이고 주변에 이슬람 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가운데도 기독교 신앙을 지켜왔다. 오랫동안 소연방 국가로 있어 무신론이 팽배할 것 같았으나 사회주의의 무신론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말을 사용했지만 뿌리 깊은 반러시아 정서를 남겼고, 몽골에 의해서, 오스만 트루크에 의해서, 이슬람에 의해서. 사회주의에 의해서 교회는 수없이 공격을 받아왔지만 끊임없이 교회를 공격하고 해하려는 세력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역사의 파고를 넘어 그들이 지켜온 교회당 하나하나에는 교회를 수호하고 아름답게 지켜가고자 한 순교자의 피가 서려 있었다. 천년 이상을 수많은 역사의 상처들, 아픔을 견디며 당당하게 서있는 교회들, 그 기둥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교회를 지켜온 순교자들의 이야기들이 가슴을 울려왔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신앙과 더불어 교회를 지키고자 한 사람들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찾는 교회의 지하에는 그 교회를 지킨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었다. 그 토대 위에 서있는 교회들과 그 교회를 찾는 신도들의 기도가 이어지는 한 앞으로도 어떤 침략자들, 교회 안팎의 어떤 방해세력도 결코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에 흠집 하나라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교회를 향한 그들의 방해는 오히려 교회를 지키고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오는 사람들의 미담을 더욱 빛나게 할 뿐이다. 결국 그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바울은 결정적인 자신의 약점을 하나님께서 자신이 교만해 질까봐 주시는 찌르는 가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찾아낸다면 그것 자체가 구원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아픔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되는 축복입니다. 그 아픔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서기 위해서는 그 믿음의 역사를 아름답게 지켜가고자 하는 수많은 땀과 희생의 역사가 쌓여서 이루어집니다. 교회 안팎의 어떤 방해세력도 결코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에 흠집 하나라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그들의 방해는 오히려 교회를 지키고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오는 사람들의 미담을 더욱 빛나게 할 뿐입니다. -> https://sky17star.blog.me/221569558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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