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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진밭교 평화기도회(19. 6. 20)
2019년 06월 20일 (목) 10:47:26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진밭교 평화기도회(19. 6. 20)
마태 6:1-6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어느 종교든 가장 고귀한 행위가 있다. 자선과 기도, 금식이다. 바리새도 자선과 기도, 금식으로 자기들의 믿음을 과시했다. 그런데 그들은 오직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선을 행했다. 일부러 사람왕래가 많은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을 불었다. 나팔을 부는 건 자선을 베풀기 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신호이다.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예수는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공연히 트집 잡는 것인가? 또 말씀하기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다. 이게 가능한가? 어떻게 한 몸에서 하는 일을 한 손이 모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어깃장을 놓는 것인가? 아니다. 예수는 마음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바리새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선을 하므로 이미 마음에서 받을 상을 받았다. 어떤 상인가?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는 의인의 상, 내 영혼이 만족해하는 자족의 상이다.

   


그러나 예수 말씀처럼 왼손도 모르게 하는 길이 있다. 내가 내 행위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잊어버리면 오른손이 한 일일지라도 왼손도 모른다. 무의식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조차도 자기 행위를 의식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숨어 계시는 아버지가 갚아주신다. 즉 필요하면 나팔을 불어라. 단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마음의 궁극점인 하늘아버지만 의식하라. 마음먹는다고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은 한편 자기를 닦는 수행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는 자선 또는 기도를 은유로 해서 우리의 마음문제를 깨우친다. 모든 종교는 진실성을 최고로 친다. 건강한 종교는 삿되거나 거짓된 말과 행위를 가장 경계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기독교를 진단하자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그 존재의 목적을 상실했다. 진실은 사라지고 그저 관성의 법칙으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 가치가 교회 안에까지 깊숙이 스며들어서 번영신학과 성공미학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바, 기독교 본래의 가치가 완전 전복돼 버렸다. 꿩 잡는 게 매가 돼서, 일단 자본주의적으로 잘 되고 봐야 말발이 서고 면도 선다. 실패자는 교회 안에서도 발붙이기 힘들다. 예수도 대실패자인 것을 아예 의식하지 못한다. 개인을 감싸고 있는 사회구조가 개인 못지않은 비중으로 있다는 기초지식을 모르는 바 아닐 텐데, 희한하게도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또 하나. 교회의 가치판단 목록에 이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은 아예 없다. 예를 들면, 역사의식을 갖는 것, 바른 역사의식으로 민주시민의 덕을 수행하는 것, 그래서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독재권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나, 민주공화국에 대한 소양, 공공재가 소외당하는 사람 없도록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평등의식,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반공을 극복한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지 등의 덕목은 교회담론과 완전 무관하다. 놀랍게도 기독교와 반공을 등식화하는 부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살이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분단으로 이어지고 혼돈과 전쟁와중에 식민지 청산이 전혀 안 된 아픈 과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면, 약산 김원봉 쯤은 넉넉히 수용하고도 남을 텐데, 민주화운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위인들이 대단한 애국자인양 거짓나팔을 분다.

그들의 담론은 오직 ‘예수 믿고 잘 되자’이다. 물론 이 잘 됨은 자본주의적으로 잘 됨이다. 그런 담론이 큰 전제로 있기 때문에 현실 사회의 계급모순이나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층의 부패부정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다. 심지어 그들과 동일시한다. 절대로 그들과 동일계급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계급적으로 자신들과 훨씬 가까운 (이주)노동자, 소수자, 난민 등에 대해서 이유 없이 혐오한다. 기독교의 모든 덕행은 반동성애에 있다는 듯이 광분한다. 반면에 국가폭력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놀랄 만치 무심하다.

분단 74년째인 한반도의 고통에 대한 애통없이, 반공의식에 쩔어서 여전히 미국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백안시하는 풍토도 그대로다. 친일매국노가 생존 비법으로 친미사대주의자가 되고,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확산을 위해 반공이데올로기를 부르대고 있다는 진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기득권의 나팔에 장단 맞춰 춤을 춘다.

이처럼 마음의식에서 대책없는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그런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고 예수 믿으니 구원받았고 구원받았으니 천국은 따 논 당상이고... 오직 이 범주에서 다람쥐 쳇바퀴 돈다. 엉터리 구원이다. 나도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했고, 사회와 교회현상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를 점령한 이 싸구려 구원도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이해불가다. 예수도, 복음서도 전혀 말하지 않은 가짜 담론이 교회를 점령해 버렸다. 오정현이나 장경동이나 전광훈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앞에 나서서 또라이 같은 말만 안 할 뿐이지, 한국 교회에는 이런 부류가 널려 있다. 우선은 마음의식에서 온전 하자. 그럴 때 숨어서 보시는, 진리이신 아버지께도 가까이 갈 수 있다. 사드철회투쟁도 진실성을 추구해야 하늘 뜻과 만난다. 그 날을 맞이할 때까지 분투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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