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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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아야 한다
  • 백창욱
  • 승인 2019.06.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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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 평화기도회(19. 6. 13)

진밭교 평화기도회(19. 6. 13)
마태 5:20-22 “재판을 받아야 한다”


어제는 북미회담 1년 되는 날이다. 그 날은 참으로 감격이 넘치는 날이었다. 양국정상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의 회담장 긴 회랑을 천천히 걸어서 무대 중앙에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오랜 세월 적대관계였던 두 나라 정상의 만남인지라 그 자체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냉전시대 당사자인 미소도, 한국전쟁에서 붙었던 미중도 진즉에 국교정상화를 한 마당에 여전히 적대관계였던 두 나라 정상이 회담하고 합의문까지 발표할 줄이야! 분단에 신음하던 우리는 기뻐하며 박수쳤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크게 설레었다. 올해 2월 28일, 제 2차 북미회담 때까지는. 그러나 다 알다시피 베트남 회담 결렬로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다시 시계제로가 됐다. 앞으로 북미관계가 잘 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과거로 퇴보할지, 회담을 한 게 잘한 일인지, 아니 한 만 못한 일이 될 것인지, 예측불허의 상태가 됐다.

▲ 백창욱님(사진:박성율님 페이스북)

다행히 어제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이희호 여사의 별세에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조문과 조화를 보내므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도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이희호 여사는 죽어서도 하늘에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실제로도 돌아가심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조문정치를 통해 활로가 열리는데 기여하였다. 이희호 여사의 별세에 애도하며 영원안식을 빈다. 하늘이 도우사 북미관계가 진정 양쪽의 완전한 합의와 타결로 발전하여 한반도평화가 정착하기를 빌고 또 빈다.

오늘 복음말씀은 강력하면서도 의문이다. 예수는 제자들의 생활윤리가 율법학자와 바리새보다 더 옳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포한다. 두 가지 면에 주목하자. 첫째는 어째서 비교의 대상으로 율법학자와 바리새를 삼았나? 하는 점이고 둘째는 그렇다면 하늘나라 의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일세기 이스라엘 사회는 여러 종파들이 살았다. 바리새파 뿐만 아니라 헤롯당, 열심당, 에세네파, 사두개파 등등. 그런데 꼭 집어서 율법학자와 바리새를 지목한 까닭은 무엇인가? 율법학자와 바리새파의 생활윤리는 철저하다. 율법의 자구 하나하나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맹종하였다. 완벽할 정도로 율법준수를 잘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들보다 더 옳게 살라는 말은 무엇인가? 그들보다 더욱 철저하게 율법에 매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예수는 율법학자와 바리새들을 사정없이 규탄했다. 그런데 예수가 그들보다 더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무엇인가? 그들은 형식주의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이행했다. 형식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 갈수록 위선적이 된다. 자신도 속이고 형제도 속인다. 오늘 복음말씀의 경우, 그들은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된다. 살인하지 않았으니 괜찮다. 그러나 사람관계가 살인만 하지 않으면 다 좋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살인하지 않더라도 사람관계가 온통 미움다툼시기질투저주라면 그 관계도 살인 못지않다. 사람관계 불행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마음의 죄는 실제 살인으로 발전한다.

자연히 두 번째 관심사인 하늘나라 의를 말할 차례다. 율법학자와 바리새가 외형, 형식에만 목을 매는데 반해, 예수의 생활윤리는 마음을 말한다. 형제자매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얼간이, 바보라고 모욕을 가하는 사람도, 심판을 면치 못한다. 심지어 지옥 불속에 던져진다. 지옥불속에 던져진다는 과장어법을 써서라도 형제자매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은 살인과 진배없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꼭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다. 성내고 모욕을 가하는 일도 살인 못지않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 서 보라.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들은 명예를 매우 소중히 하는 문화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 나라에 와서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한다. 명예를 손상당하는 건 죽음과 같다. 그렇게 그들은 매일매일 죽는다. 못된 사업주들은 실제 살인이 아니라도 살인 못지않은 죄를 짓는다. 이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할 때와 형제애로 따뜻한 말을 할 때를 비교해보라. 어떤 말이 형제를 살리고 죽이는지를 충분히 알 것이다.

의식연하면서 사드배치를 옹호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 사람들은 실제 사드배치 때문에 고통 겪는 당사자들을 생각하지 못한다. 사드를 불법으로 배치한 소성리와 김천시민이 사드 때문에 삶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을 애통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생존권, 행복권을 함부로 유린하는 국가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른다. 사드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고, 또 미군은 사드 가지고 이 땅을 떠나라고 외치는 주민들의 절절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안보마피아들이 안보논리에 따라 형식적으로 떠드는 말에 미혹돼서 사드배치가 필요하다고 따라한다. 그러면 안 된다.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하라. 또 내 형제자매가 그런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애통하라. 그게 사람의 도리다. 사드철회투쟁에 투신하는 우리는 사람도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쁘게 수행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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