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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사람들
감리교평신도주일 하늘의소리
2019년 06월 03일 (월) 11:01:43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진실한 사람들(행 16:16-34 요 17:20-26)

▪ 헝가리 유람선 참사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또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우리 국민이 탄 유람선이 침몰하여 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실종된 대형 참사 소식입니다. 멀리 헝가리에서 벌어진 일이라 답답하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수록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유명을 달리한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유가족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아울러 실종자들을 모두 찾아 구조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힘을 모아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냅시다.

   
▲ 사진 : 한현실님


▪ 감리교회와 웨슬리
오늘은 감리교회 창립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의 회심을 기억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성찰하는 평신도 주일이기도 합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올더스케이트의 작은 교회에서 예배 하는 중에 웨슬리 목사의 마음이 뜨거워는 체험을 했습니다. 당일 웨슬리 목사는 미국 선교의 실패와 거대한 파고 즉 두려움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무기력과 불신앙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저녁 기도회에 참여하였고 인도자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웨슬리 목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앞으로 나아갔고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간증하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동을 받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이것이 웨슬리 목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고 감리교회의 태동이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거리로 나아가게 되었고 광장의 설교자가 되었으며 복음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성공회 신부의 아들로 본인도 성공회 신부였던 웨슬리 목사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전개합니다. 감리교회 운동입니다. 성공회에서 배운 성서, 전통, 이성이란 기둥에 체험이란 한 기둥을 첨가하여 감리교 운동 골격을 세웁니다. 성서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기준을 제시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에 가장 신비하고 놀라운 책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성서 절대주의에 빠지진 않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릇이지 성서가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절대적인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는 그런 의미에서 근본주의 신앙과는 거리를 둡니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감리교회는 어느 날 갑자기 생성된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로부터 기독교 역사와 전통에 잇대어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결국 가톨릭 전통과 성공회 전통을 거부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의 열매만 먹은 것이 아니고 잘 못된 유산에 대한 참회도 받은 것입니다. 다음은 이성입니다. 합리적인 생각은 감리교회의 장점입니다. 대부분이 교회는 은혜롭게 하자는 말로 대충 넘어가려고 합니다. 결국 그것이 세밀하게 검토하고 성실하게 일에 임하고 합리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를 무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제 광화문 거리를 매운 3만여 명의 동성애 반대 집회, 탄핵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는 수구 기독교회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식의 신앙 강요는 비현실적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과학의 세례를 받았기에 과학적 토대로 성경을 설명하고 합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이제 기독교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그리고 체험입니다. 신앙은 신비한 영역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체험이 중요합니다. 웨슬리 목사의 성령 체험은 당시 지성과 신앙의 만남이 되었습니다. 이는 부흥사는 신학적 토대를 가져야 하고 신학자는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통념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기독교 신앙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설명되고 손쉽게 적용되고 합리적으로 이해되고 세밀하게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은 아주 구체적이 됩니다. 감리교회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을 존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성령의 내주를 통해 거룩한 생활을 추구합니다. 결국 개인의 성화, 가정의 성화, 사회적 성화를 넘어 생태적 성화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완성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현실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죽어서 내세에서도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힘든 시절, 죽어서 가는 천국이 그들을 손쉽게 두려움과 고통을 잊게 함으로 치유와 위로를 주었다면, 이젠 현실로 뛰어 들어가 단단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지어나가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는 고아원을 건립하거나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였고(복지사업) 보건소를 세워 질병을 치유하였고(의료사업) 야학을 열어 가르쳤고(교육사업) 노동조합을 지원하였고(노동운동) 당시 가장 큰 외화벌이였던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였고(정치운동), 대중 집회를 통해 기독교의 영성과 복음을 전하고 경건의 삶을 호소하였습니다. 영국에서의 감리교도는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들,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람들,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영국 사회를 바꾸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감리교회는 태동부터 교회 내적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것이 사회를 전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진정한 교회
1930년 미감리회와 남감리회가 조선감리회로 통합되었습니다. 조선감리회의 기본 3대 원칙은 진정한 기독교회 실현, 진정한 감리교회 실현, 진정한 조선교회 실현이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살기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진리와 사랑의 권능으로 구원하고, 사회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봉사하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감리교회는 개인의 구원과 사회구원, 개인의 경건한 삶을 넘어 사회적 성화에로 나아가야함을 의미하였습니다. 진정한 조선교회는 이천 년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기독교의 교리와 전통을 예배, 행정, 교리에 잘 이용하되 한국의 문화와 풍속, 관습과 잘 조화를 이루도록 발전시키자는 의미입니다. 조선교회라는 원칙은 토착화 신학으로 이어지면서 감리회가 토착화 신학의 산실이 되게 하였습니다.

▪ 홍 에스더
홍 에스더는 1892년 서울 새문안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 홍저후는 선교 초기 새문안교회와 연동교회에서 선교사들과 활동한 지도급 인물이었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도 적극 참여하셨던 분으로 33세의 나이에 사고로 별세하셨습니다. 후에 에스더는 고향인 남양으로 내려가 외조부 밑에서 성장하면서 신학문을 접하였습니다. 그 후 서울의 이화학당에 진학하여 졸업 후 이화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정동제일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홍 에스더는 1923년 <조선기독교 여자절제회> 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으로 선임되어 금주, 단연, 도박 거부, 공창폐기, 물들인 우리 옷 입기 등을 실천했는데, 이 절제운동은 일제가 우리 민족정신을 훼손하기 위해 퍼트렸던 퇴폐 향락 사치문화에 대해 저항하며 일어난 여성들이 중심이 된 정신적인 신앙운동이었고 더 나아가 한국을 살리기 위한 민족운동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1923년 미 감리회 여선교사 채핀과 월터의 후원을 얻어 미국테네시 주 스카렛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였고, <조선여자기독교 청년회 (YWCA)>회장으로 교육과 여성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신간회>의 자매기구 형태로 만든 여성 민족운동단체인 <근우회>의 발기인이 되셨습니다.

<근우회>는 " 조선 여자의 견고한 단결,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도모"라는 강령에 따라, 억압과 착취가 일반화된 식민지 봉건사회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계몽, 교육활동과 구체적인 생활 개선운동 등의 적극적 여성운동을 추신하였습니다. 1930년 12월 하나 된 '기독교조선감리회' 총회 때에는 미 감리회 평신도 총대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새로 시작하는 조선감리교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총회에서 감리교 총리원 이사와 교육국. 중앙협의회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감리교신학교 이사, 대한YWCA현합회 회장과 부회장, 연합의원 총무를 역임하였습니다.

홍 에스더 장로는 한국감리회 전국 여선교회 창립 때 초대회장으로 선임되는 영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제의 강요로 여선교회가 해산당하고 친일적인 조직으로 바뀔 때에도 그 직임을 계속 감당하며 치욕을 짊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 친일행각에 부역하였던 죄를 회개하였고 이 모두를 묵묵히 감당하여 해방 후 새로운 감리교 여선교회를 재건할 수 있었으며 한국 감리교 여선교회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975년 84세의 연로한 나이로 별세하신 후, 국가에서 공로가 인정되어 1978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홍 에스더 장로는 자신의 교회뿐 아니라 감리교와 한국 교회, 한국사회에서 다양하게 활동하였으며 전도활동, 교육활동, 여권운동, 여선교회 활동 등에서 여러 단체를 지도하고 이끄는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준 감리교 여선교회의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승훈 선생, 이상재 선생. 주시경 선생. 이 준 열사, 이상설 열사, 이태준 선생. 이태영 박사, 장기려 박사, 유관순 열사. 남궁억 선생, 이동녕 선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역사를 만든 평신도이었습니다.

▪ 요한공동체의 증언
오늘 성서일과는 요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7장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은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 관점은 예수를 기억해야내려고 노력한 관점입니다. 십자가 처형과 이 문서를 기록한 것 사이에는 긴 세월이 흘렀으며, 따라서 예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과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관점은 요한공동체를 통해 투과된 예수, 즉 필연적으로 자신들을 몰두하게 만든 마음의 상처들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수를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요한공동체를 통해 투과된 예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관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에서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공동체가 경험하고 있는 당시의 삶의 경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을 재정립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기독교 신앙은 회당 안에서의 운동으로 태어났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란 별명으로 불렸고 유대교 안에서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함께 공존하였습니다. 하지만 66년 로마, 유대전쟁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73년 마사다 전투로 도시와 성전, 성직자들을 잃게 됩니다. 그 이후 유대교는 세력이 약화되고 수정주의적 운동에 대해서 거부하게 됨으로 요한공동체는 예루살렘을 강제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 갈등은 더 심화되어 88년 정통파 유대교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을 완전히 추방하였습니다.

유대교로부터 추방된 요한공동체는 더 이상 유대교의 일부가 아니라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을 고민하였습니다. 그들은 탈유대교를 선언하였고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한 깊은 적대감을 표출하였습니다. 문제는 유대교 전통에서 자라난 많은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없었던 예수에 대한 경험을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분으로 정의하여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듣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공동체는 이 갈등으로 내적으로 분리되어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회당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배신자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류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곳을 향해 길을 떠났고 새로운 비전을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적대감을 받아들이고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외부적으로 눈을 돌리면서 로마제국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요한공동체의 기록은 실제 역사적 예수가 직면했던 당시 기록이기보다는 요한공동체가 직면해 있는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요한공동체는 예수 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였습니다. 새 생명, 새로운 의식, 하나님에 대한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요청되었습니다. 신비적 합일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입니다.

▪ 하나님과 합일
요한공동체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할 뿐만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의 합일을 증언합니다.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며 하나님과 예수는 한 분임을 증언합니다. 물론 이 신앙은 바울공동체의 고백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이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동등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어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심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신앙은 유대 신비주의자들인 요한공동체에 의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앎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은 요한공동체의 이상이며 목표였습니다. 이는 웨슬리의 이상이었고 감리교회의 목표였습니다.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이 신앙의 토대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당신을 실현하셨고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나아가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선포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합일 신앙으로 완성됩니다.

▪ 초대하기 / 봉준호
지난 5월 25일, 한국영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재밌고 유머러스하며 따뜻한 영화”라며 “우리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유로 수상작을 결정하지 않는다. 감독이 누구이고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중요하지 않다”며 “영화 그 자체로만 평가한다”고 최고의 영화임을 강조했습니다.

봉 감독은 이날 수상작으로 선정된 후 무대 위에 올라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놀라운 모험이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리곤 트로피를 받아 무릎을 꿇고 주연인 송강호 배우에게 바쳤습니다. 그는 이렇게 영화에 대한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술 한 잔 마셨습니다. 영화가 잘 안 돼도 좋습니다. 하지만 기생충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영화가 별로일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만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그의 겸손과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봉준호 감독은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큰 상을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의 작은 스텝은 이미 칸영화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의 진심은 심사위원회들의 가슴을 사로잡았고 관람객들을 마음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교우들과 함께 본 연극 <리더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편의 연극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 연극인들의 목숨을 건 숨 가쁜 저항들이 한 나리의 미래를 새롭게 열었습니다. 그저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로는 새로운 세계는 오지 않습니다. 유대교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로마에 항거했던 요한공동체의 예수신앙은 세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거대한 중세 교회와 맞서 목숨을 저당 잡혀서 이룬 루터의 종교개혁도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어두워가는 영국에 저항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끈 웨슬리의 감리교회 운동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진심이 있었습니다.

감리교도들은 진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규칙적으로 지켜가며 경건한 삶을 실현한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작은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주적 삶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담아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길로 부르십니다. 우리 그 길을 걷는 사람들로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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