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9.7.16 화 10:39
> 뉴스 > 시사/논평 > 칼럼 | 양재성의 예수살기
     
동체대비(同體大悲)
부활절 제4주 하늘의 소리
2019년 05월 13일 (월) 11:44:59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사도행전 9장 36~ 40절, 요한복음 10장 22~ 30절

▪ 부처님 오신 날
오늘은 2563번째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더욱 깊이 걸어갈 수 있기를 빕니다.

   


초기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 불본집행경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 속에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는 둘 달린 이상한 새가 살고 있었습니다. 몸뚱이는 하나지만 머리의 이름은 달랐습니다. 한쪽은 카루다고, 다른 쪽은 우바카루다였습니다. 어느 날 카루다는 우바카루다가 잠든 사이에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게 되었습니다. 이를 뒤늦게 안 우바카루다는 자기를 깨우지 않고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누가 먹었든지 뱃속에 들어가 배가 부르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리석은 우바카루다는 복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카루다가 조는 사이에 독이 든 꽃잎을 일부로 따먹고 말았습니다. '카루다야, 혼 좀 나봐라.' 그러나 혼이 난 것은 카루다만이 아니었습니다. 독이 온몸에 퍼져 신음하다가 카루다와 우바카루다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우화는 동체대비의 중요성을 반대의 상황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동체대비란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는 자비스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중아함경에 나오는 이 연기의 법칙을 바로 안다면 동체대비의 마음은 저절로 우러날 것입니다.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생각이나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더라도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결코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머리는 수없이 많지만 몸뚱이는 단 하나인 지구촌의 공동운명체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우리 모두 연기의 법칙을 마음에 새겨서 우바카루다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 生즉死, 死즉生
지난 10일, 중앙루터교회에서 이현주 목사의 즉문즉설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이현주 목사와는 참 오랜 인연입니다. 그러니까 82년 감신대학에 들어가 처음 만난 것이 그의 책 <에세이 예수>였습니다. 그 이후 이현주 목사의 책은 거의 다 읽었고 간헐적으로 만났습니다. 가끔 함양을 찾아주셨습니다. 준하 형이 12주 만에 유산 되었을 때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고 집에 돌아가셔선 지성무식(至誠無息/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이란 글귀를 보내주셨습니다. 준하 태어나 백일잔치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고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찾아가 길을 묻곤 했습니다.
요즘은 예수의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강하게 일어나는 말씀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죽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죽음을 넘어설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꺼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다시 살게 되었고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신 사건이 십자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요즘 한 주에 한 번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하루는 15분 정도 시간을 주면서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말고 가장 아름다운 물건을 찾아오라고 숙제를 주었답니다. 아이들이 가져온 물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놀랍습니다. 첫 번째 아이는 감나무 씨를 가져왔습니다. 왜 이 씨가 아름다우냐고 물으니 이 씨를 심으면 싹이 나서 자라나고 감나무가 되어 꽃이 피고 감이 열리게 될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 씨가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거였습니다. 감나무 씨에서 씨의 미래가 어떻게 열릴 것인지 감나무를, 감을 본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마른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왜 이 나뭇가지가 아름다우냐고 물으니 이 나뭇가지가 살아 있을 땐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산로를 만들어 우리가 숨을 쉬게 도와주었으니 이 죽은 나뭇가지가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입니다. 마른 나뭇가지의 과거를 본 것입니다. 어떤 아니는 돌멩이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왜 돌멩이가 아름다우냐고 물으니 돌멩이는 보는 방향마다 전부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며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입니다. 한 가지 물건도 어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밖에 없음을 안 것입니다. 또 다른 아니는 컵에 물을 가져왔기에 왜 이 물이 아름다우냐고 물으니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그 자신을 그릇에 의지하여 모양을 만드니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존재의 유연성을 자신이 어떤 가치체제를 따를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이들은 깜짝 놀라만한 물건을 가져왔고 놀랄만한 대답들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이들의 생각엔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 양극화
‘모두 가진 자가 더 원한다(Wealth: Having It All and Wanting More)’는 제목의 옥스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 중 최고 부자 1%가 소유하는 비중이 2009년 44%에서 2016년 50%를 넘었습니다. 결국 1% 부자가 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겁니다. 게다가 조사에선 현재 세계 최고 부자 80명의 소유 자산이 세계 인구 중 하류층 절반의 재산과 같았습니다. 최고 부자 80명의 1인당 평균 자산액은 237억 달러인 반면 세계 인구 중 하위계급 35억 명의 1인당 평균은 540달러에 불과합니다.
부의 양극화는 생태계 위기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인류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극도로 개인주의가 발전하고 이기적 유전자를 충동한 결과입니다. 인류는 부를 통제하고 물질을 지배하는 데 실패하였고 오히려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불러 올지 전조 증상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봉건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어서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더디긴 하지만 미국에서 벗어나겠지요. 남북이 화합하고 통일을 이룬다면 더 빨리 오겠지만 우린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 노동자의 명예
콜트 노조 방종운 지부장은 314일째 대법원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3일, 같은 업종 회사인 콜텍이 해고 된 지 13년 만에 노사합의를 하였지만 자신은 그런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하고 노동자에게도 자존감이라는 게 있다며 노동자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말하곤 천막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아마도 최고의 사법기관인 대법원 정문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일 겁니다. 방 지부장은 양승태 사법농단 세력이 법의 심판을 받고 구속 수감될 때까지 콜트 노동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복직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9일 저녁 촛불교회는 대법원 앞에서 농성하는 콜트 방종운 지부장을 찾았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불의한 세력을 진멸하시고 고통 받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께서 방종운 지부장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노동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박단 목사는 방종운 지부장이 선 이 곳은 광야라며 광야는 늘 새로운 일이 시작된 곳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출애굽이란 해방역사를 추진하라는 거룩한 사명을 받았고 히브리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신앙과 율법을 완성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광야에서 외쳤고 예수도 늘 광야에 계셨습니다. 광야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시발지이며 광야에서 행한 오병이어는 예수 공동체의 경제구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린 진심으로 노동자들의 명예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1970년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신나를 붓고 불을 지피며 외쳤던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노동 3권 보장하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말이 귀에 생생하게 들립니다. 방종운 지부장은 이렇게 찾아주신 예수살기와 촛불교회에 감사드린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명예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 믿음과 행함
오늘의 성서일과는 요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0장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예수가 그리스도인지를 떠보며 묻고 있습니다. 예수의 말을 들으면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 같기도 한데 그의 행동을 보면 아닌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래서 확실히 해 두기 위해서 아니 예수를 골탕 먹여 예수운동을 좌절시키려고 묻습니다. 당신이 오실 그리스도입니까? 예수의 대답은 간명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증거하고 있으니 그건 왜 묻느냐며 반문합니다. 그의 행동거지에서 그의 삶에서 그의 존재를 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이렇듯 보이는 행동거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예수를 통해 아니 그를 대변하는 사람을 통해 드러납니다. 믿음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그의 행동입니다. 예수의 행동거지는 이미 그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임을 증거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린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을 보고 그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은 옳은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사악하기 때문이며 당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역설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당신의 양을 알아보고 양들은 예수를 알아본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자와 양은 본질적으로 한 몸입니다. 양은 목자를 따르고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 우리의 믿음
오늘 성서일과는 사도행전 9장의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초대교회의 위대한 여성 지도자 다비다를 살린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한 일과 구제를 많이 하던 신실한 일꾼 다비다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동료들과 이웃들은 베드로가 가까운 마을 욥바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급히 오기를 청합니다. 베드로는 심부름꾼의 전갈을 받고 일어나 다비다의 마을로 갑니다. 베드로는 도착하여 자초지종을 듣고 사람들을 물린 다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다비다여, 일어나시오”하고 부르니 다비다가 살아나 앉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다가가서 다비다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사실 치유 사건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그 사건을 통해 믿게 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우린 여기에서 여러 가지 믿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다비다의 이웃의 믿음입니다. 그들은 소시민들이었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많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소문을 믿었습니다. 곧바로 베드로를 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 사도의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전갈을 가져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는 급히 길을 떠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냥 두고 길을 나서야 합니다. 그는 도착하여 자신을 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곤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비다를 살려냅니다.
세 번째는 다비다의 믿음입니다. 그는 죽기 전에 착한 일과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이웃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웃들은 다비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게 된 것입니다. 다비다는 죽었으나 베드로 사도의 일어나라는 부름을 듣고 죽음에서 일어납니다. 죽어도 살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 다음은 욥바 주민들의 믿음입니다. 베드로가 급히 길을 나서자 궁금했던 욥바 주민들은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주민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천상천하유아독존
부처님은 저 인도대륙 북쪽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정반왕, 어머니는 마야부인이었습니다. 산월이 가까워오자 마야 부인은 정반왕에게 친정에 가서 애기를 낳고 돌아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정오에 이르러서 아주 아름다운 숲을 만났는데, 아쇼카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마야 부인은 가마에서 내려서 꽃구경을 즐겼습니다. 꽃가지를 잡는데 마침 산기를 느껴 애기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 때 범천왕은 황금그물로 애기를 받았고 인드라천은 그늘을 만들어줬습니다. 그 때 용왕이 나타나서 더운물과 찬물로 애기를 씻기자 애기의 몸은 황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애기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러자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애기는 한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르키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 가르침은 놀랍습니다. “우주에 나 홀로 준귀하다”는 의미요, “우주가 곧 나요, 나 아닌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이 나요, 땅이 나요, 별이 나요, 바다도 나요, 강이 나요, 나무가 나요, 꽃이 나요, 벌이 나요, 벌레도 나요.... 나를 사랑하는 길은 나인 만물을 사랑하는 데 있고, 만물을 사랑하는 길에서 나를 사랑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온 우주는 한 몸을 설파하신 것입니다.

▪ 초대하기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고 내 말은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예수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를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길은 걷는 사람이 있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걷는 사람이 없으면 길은 사라집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길과 길을 걷는 사람은 한 몸입니다. 예수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길을 이어서 걷는 사람이 없다면 예수의 길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증거 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예수의 길을 걷기 위해서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길과 통합니다.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길로 초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자이며 우리는 모두 그분의 양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소리를 알아듣고 예수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 놓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구원할 이 거룩한 길에 나섭시다.

양재성의 다른기사 보기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예수기도의 원리와 방법
홍천 풍천리 양수발전소는 안돼 !
무농약 삼색감자 팝니다!
'자연의 순수함을 담다'
'돈의문박물관마을' 13개 프로그램
도전 또 도전
예수의 십자가
거룩함에 참여하는 아픔
교회란...
희망은 시를 읽는 독자 몫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
비상시, 브레이크 댄스를 추시오
시대를 온 몸으로 산 세 여자 이...
한국교회 지붕 햇빛발전소 설치를 ...
9월 3일(월) 오후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돈의문박물관마을' 13개 프로그...
서울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시민이 직접 제안하고 진행하는 13개...
'남북관계에도 봄이여 오라'
헬조선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