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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일에 살아나야 한다
부활주일 주일설교문(19. 4. 21)
2019년 04월 22일 (월) 11:54:39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9. 4. 21) 부활주일
누가 24:1-12 “제3일에 살아나야 한다”


부활절입니다. 어둠과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지난주에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쓴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을 봤습니다. 5명의 기록자가 53명의 유가족과 4명의 생존자 가족을 인터뷰한 기록입니다. 사례를 읽을 때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합니다.

1. 전인숙(임경빈 엄마) “참사 나기 전에는 회사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회사 갔다가 풀이 푹 죽어가지고 퇴근할 때가 있었어요.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보상금 얼마 받았냐?”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우리 회사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지금 1억원이 필요한데” 하면서 빌려달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런 말 들은 날이면 돌아와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가족 같으니까 그런 농담도 하고 그랬겠지” 하고 말았는데... 그런 것까지도 괜찮았는데... 1박 도보행진을 한 다음 날 남편이 회사를 안 가는 거예요. “왜 안 가?” 그랬더니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하더라고요. 회사에서 교통사고다 생각하고 묻으라고 했대요.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내가 봐도 지금 그 회사에서 일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아. 우리 마음도 가라앉혀야 되고, 세월호 진상규명 일도 많으니까 편한 대로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랬죠.

2. 박요섭(박시찬 아빠) 참사 전에는 교회가 삶의 중심이었어요. 모든 활동들이 교회가 시작점이었는데 이제 완전히 단절이 된 거죠.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이런 말을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비치는 게 있어요. 제가 마음이 상했던 건 교회 안에서 세월호 얘기를 안 한다는 거예요. 가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부흥회를 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라고 부흥회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세월호를 언급해요. 세월호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걸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컸던 거죠. 그들이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기들이 의도한 생각 속에 우리를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그게 싫은 거죠. 그렇다고 신앙을 저버린 건 아니에요. 교회만 안 나가는 것뿐이죠. 활동하는 교회에서 세월호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오히려 나는 길에서 예수님을 봤고 길바닥에서 진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신앙인이고 기독교인이라는 생각, 이제 나는 안 한다.

3. 임영애(오준영 엄마) 미수습자 은화 사진 들고 ‘세월호 인양하라’ 피켓 들고 있었거든요.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는 의료사고로 아이를 잃었는데, 시끄러운 거 싫어서 참고 산다고 하는 거예요. 그 당시에 아무 말로 못하고, 울지 않으려고 턱이 아플 정도로 참고 있었어요. 그 다음날 가족증명서를 떼다 벽에다 딱 붙였어요. 준영이 사망신고를 안 했거든요. 진실을 알기 전에는 안 보낸다, 아직 내 가슴에 묻을 수 없다. 그때는 그런 걸로 버텼어요. 집 이곳저곳에 노란리본 다 붙이고, “세월호 엄마야, 세월호 엄마야” 나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면서 풀고 살았어요.

4. 박유신(정예진 엄마)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제 다녀온 후에 너무 힘들어서 몇 달 동안 집 밖을 안 나가고 밤낮 술만 먹었어요. 이렇게 먹다보면 죽겠지, 하면서. 그때는 유가족들이 안 보이면 혹시 나쁜 생각 할까봐 서로 연락하고 찾으러 다닐 때였어요. 내가 안 나오니까 도언 엄마가, 그 때는 도언 엄마인지도 모를 때였는데, 매일매일 우리 집에 찾아왔어요. 누가 벨을 눌러서 인터폰을 보면 도언 엄마가 서 있었는데, 문도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면 도언 엄마는 한참 서 있다 가고, 다음날 또 왔어요. 그렇게 끈질기게 오더니 어느 날은 그러더라고요. “예진 엄마, 이렇게 가면 나중에 예진이 어떻게 보려고 그래... 힘 내야 돼.” 그때부터 그 언니가 나를 데리고 간담회에 다녔어요.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간담회에 가는 날에는 새벽에 나가서 다음 날 새벽에 들어왔어요. 남편이 좋아했어요.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면 집도 엉망이고 나는 늘 술에 절어서 울기만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활동을 하니까.

수십 명의 육성기록 중 네 가지 사례를 인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들의 증언은 부활말씀이 오늘날은 어떻게 우리 안에 역사하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국가폭력은 여전하고, 거기에 선동당하는 대중도 여전하고, 자본주의 신인 돈으로 세상사를 저울질하는 이웃의 시선도 변함없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월호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신앙의 정체를 알게 하는 가늠자가 됐습니다. 그 신음과 환난 속에서 부활을 깨우친 사람은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떻게 참 사람의 길에 들어섰는지를 증언합니다.

오늘 누가복음 부활말씀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얼핏 예수의 부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닙니다. 예수의 부활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예수의 부활을 사람들이 어떻게 맞이하는가? 가 중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대목은 2절이 전부입니다.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 이게 예수 부활을 알리는 핵심 소식입니다. 덧붙이자면,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시신은 없고, 시신을 감싼 삼베만 봤다는 증언 정도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직접 증언은 아니고 간접 증언입니다. 누가복음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서도 예수부활은 항상 신비적으로, 또 초간단으로 서술합니다. 나머지 부활본문을 차지하는 내용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 소식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느냐를 보도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누가저자가 예수 부활증언에서 돋보이게 하려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여자들입니다. 부활증언 전체가 ‘여자들이 어떻게 했다.’에 방점이 실려 있습니다. 여자들이 주어입니다. 이 여자들은 누구인가요? 누가저자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다닌 여자들”(23:49, 55)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여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 일어난 일을 다 지켜 본 사람들입니다. 이 여자들은 갈릴리에서 예수와 어떤 인연인가요?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8:2,3)

이 여자들은 오래전부터 예수와 동거동락한 동지관계입니다. 열둘만큼 가깝습니다. 여자들은 이른 새벽에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서 굳이 꼭두새벽에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동트고 날이 환하고 사람도 오고갈 때 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시신을 한시라도 빨리 건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안식일이 끝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이 여자들의 뜨거운 동지애가 부활의 첫새벽을 열었습니다. 여자들은 제국의 폭력에 죽임당한 스승을 외면하지 않은 대가로 역사의 새 장을 맞이하는 은총을 얻었습니다.

여자들은 무덤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습니다. 예수 시신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는데 정체모를 남자의 출현을 맞이합니다. 두 남자는 예수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을 전달합니다. 여자들은 두 남자의 메시지에 자극받아서 예수 말씀을 회상합니다. 갈릴리에 있을 때, 예수는 진지하게 당신의 운명을 말했습니다.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다가, 무덤가에 서서 그동안 일어났던 전 과정을 회상하는 순간, 이 말씀의 뜻을 깨우쳤습니다. 이 때, 예수의 부활이 온 인격에 체화되었습니다. 내가 어느 자리에 있느냐는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오직 예수의 말씀이 자신의 몸에서, 인격에서, 영혼에서 체화할 때 따라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파가 말하는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단인 <하나님의 교회>가 주장하듯이 유월절 성만찬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 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 인자가 죄인이 아니라 인자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지배권력이 죄인입니다. 이 점을 유념하십시오. 우리는 신앙체계에서 지배권력이 휘두르는 영향에 대해 잘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세기 최초 그리스도인부터 21세기 그리스도인까지 자신이 발 담그고 있는 세상의 현실권력과 무관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주님은 황제 주님에 대한 저항선언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지배권력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흘 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합니다.

왜 사흘인가요? 저에게 1973년 5월에 발행한 <제3일>이라는 간행물이 있습니다. 고 장공 김재준교수가 발행하신 기독교잡지입니다. 제목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이 분들이 제3일의 의미를 알기에 박정희 유신독재 때 간행물 제목으로 썼구나 하는 소감입니다. 유신독재가 얼마나 깜깜한 어둠입니까. 그러나 제3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사흘은 죽음이 최후 확인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인자는 권력의 폭력이 확정되는 날이 지나가기 전에 살아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의 말씀을 깨우친 여자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증언에 나섭니다. 놀랍게도 사도들은 예수 부활소식 전파에 아무 역할도 못합니다. 여자들은 사도들에게 이 모든 일을 열심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려서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왜 믿지 못하나요? 사도들 역시 갈릴리에서 예수 말씀을 들었지만, 무덤가의 체험이 없기에 실감을 못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는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다만 베드로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여자들의 말을 듣고 무덤가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몸을 굽혀서 안에를 들여다봅니다. 여자들은 무덤 안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한 반면에, 베드로는 무덤 안에를 들어가지 못합니다. 빈 무덤에 몸을 담갔느냐 그냥 떨어져서 보기만 했느냐는 예수부활을 인지하는데 그만큼 차이가 납니다. 진실에 다가가는 행동이 여자들이 훨씬 우월합니다. 누가는 예수부활을 최초로 접한 사람, 최초로 전한 사람이 여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자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고 증언합니다. 무엇을 말하나요? 예수 부활과 그 부활을 최초로 맞아들이고 전파한 여자들로 인해 옛 세상이 전복되었다고 조용히 선언합니다. 로마제국의 폭력에 비하면 약하디 약한 존재이지만, 여자들은 피하지 않고 자신들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예수께 대한 동지애를 수행했습니다. 그 동지애를 통하여 부활이라는 놀라운 소식까지 담지하는 은총을 얻었습니다.

지난 5년간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416운동’을 견인해 왔습니다. 재난유가족이 이렇게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정권의 온갖 훼방과 선동당한 대중이 가하는 모욕과 멸시, 욕망이 일상이 된 이웃들로부터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서도 자리를 지킨 힘은 무엇인가요? 아주 간단하게는 엄마의 힘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힘은 그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를 보내고 더 많은 아이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개인을 넘어 416 연대를 구성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부활이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숱한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의식이 허용하는 만큼만 예수를 믿으려는 안전의식이 있습니다. 부활은 나의 그런 안전의식을 깨부수는 하늘명령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그 만큼 다가옵니다.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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