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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들의 부활절
부활주일 하늘의 소리
2019년 04월 22일 (월) 11:24:18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막달라 마리아들의 부활절
고린도전서 15:1~11, 요한복음 20:1~18
 

◼ 세월호 기억식
지난 한 주간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에서 광화문에서 세월호 기억식이 열렸습니다. 그간 우리는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했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겠노라고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였고 행동하겠다며 달려온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어떤 진실도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를 밝혀내지도 처벌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전사회를 위한 제도나 법도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5년간 엄청난 일이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일어났습니다. 굴종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이 무너지고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하였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물량주의적 세계관을 냉철하게 비판하게 되었고 생명의 신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운동은 촛불혁명을 일으켜 불의와 부패, 거짓과 위선의 정권을 파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한 쪽은 유가족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비인간적인 세력이 상존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 가재울녹색교회(사진 : 한현실님)

저는 월요일 세월호 트라우마에 대한 세미나에 참여하였고 화요일 세월호 참사일엔 광화문 기억관을 찾아 둘러보고 집회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세월호 참사 추모 개신교 기도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우린 진심으로 세월호의 부활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민족에게 거룩한 상처가 되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트라우마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 아픔은 지속될 것입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할 이유입니다.

◼ 고난 받으신 예수
지난 한 주간은 기독교의 절기 중 가장 아프고 힘든 절기였습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지난주 종려주일을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 민중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습니다. 예수를 왕으로 세우려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무리들은 봉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시고 새로운 나라의 비전을 점검하시고 스스로 붙들려 포박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심판을 받으시고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처참하게 처형됩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죽음이 너무나 참담하여 두려운 나머지 흩어지고 예수 운동은 막을 내리는 듯 보였습니다. 예수에게서 빛을 보았던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에겐 가장 힘들고 어두운 주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꿈도 민중들의 믿음도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지성인들도 좌절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흩어져 고향으로 내려갔고 아무 희망 없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희망이 너무나 잔인하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더 이상 미련도 갖지 않을 심상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제국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하신 하나님에게서 믿음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도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 끝 모를 어두움이 엄습했습니다. 죽음을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픔을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누구보다 예수의 고통을 그리고 아들을 십자가에 매단 하나님의 고통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무능은 하나님의 고통에서 비롯되었고 그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발원되었습니다.

◼ 바울의 부활이해
살아생전에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합니다. 바울이 없다면 기독교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할 정도로 그 영향이 지대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백으로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하십니다. 그게 바울이 예수와 대면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보면 바울은 예수를 만나 사명을 받고 제자가 됩니다. 바울에게 부활은 변형이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부활 대신 몸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일으켜집니다. 영적인 몸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묘사할 때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를 썼습니다. 예수는 일으킴을 받은 것이지 일어난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예수의 부활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행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부활 당한 것입니다. 이 의미는 놀랍습니다. 예수가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모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의 편지 안에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눈이 열렸던 사람들이 열거되었습니다. 처음엔 베드로 나아가 열두 사도 그리고 5백 명의 군중들 야고보 그리고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열광적인 기독교 신자를 잡으러 가는 중에 예수를 만나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광야로 나아가 수련을 받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 요한의 부활절
초기 복음서 기자인 마가는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후대에 첨가된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는 일으켜졌고 그 처음 목격자가 막달라 마리아임을 그녀는 한 때 귀신들렸었는데 예수에게서 고침을 받은 자임을 소개하고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그 곳에서 만나자고 전하라하였습니다. 마태도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 부활을 알리고 갈릴리로 가라며 거기서 만나자고 전하라하셨습니다. 예수의 죽음 이후 끝난 줄 알았던 예수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던 갈릴리에서 다시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게서 아니 예수 운동에서 희망을 보았던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예수운동의 부활이며,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부활이었습니다. 마태도 부활을 육체로 소생한 몸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해야합니다. 누가는 부활과 더불어 승천 이야기를 생성합니다. 네 복음서가 대체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며 갈릴리로 가라고 지시하는 면에서 비슷합니다. 이어서 가장 늦게 부활 이야기를 서술하는 요한은 네 개의 독립된 부활 전승들을 전합니다. 그 첫 번째가 막달라 마리아가 경험한 부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의 무덤 방문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부활 이야기는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저녁을 먹을 때 부활하신 예수가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표적을 기억나게 하여 옛 언약을 새 언약과 분리시키고 빛을 어둠과 생명을 죽음과 옛 창조를 새 창조와 분리시켰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새로운 종교로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도마의 의심 이야기입니다. 이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였고 본다는 것의 의미를 묻게 하였습니다. 조건 없는 믿음 그냥 믿음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예수를 믿는 것도 어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니까. 그분이 예수님이니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삶은 육체적 표징들에 의존하지 않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일어날 예수의 몸은 문이 잠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났다는 것은 비육체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입니다.

◼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요한복음에서는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인물입니다. 전혀 알려진바 없는 이름입니다. 마가와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 죄 많은 여자로, 귀신들렸다가 예수에게서 고침 받은 여자로 소개하였고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칼로 닦은 여인으로 예수의 죽음을 준비한 자로 예수에게 아름다운 일을 행한 여인으로 소개됩니다. 또한 모든 길에서 예수를 따른 여인들 중 한 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런 막달라 마리아를 등장시켜 부활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첫 번째 증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서 ‘막달라’는 나사렛 예수하면 나사렛이 지명인데 지역이름이 아니며 호칭입니다. 히브리어 ‘미그달’은 ‘막달라’와 같은 어순인데 ‘망대’란 뜻입니다. ‘막달라’란 ‘높은’, ‘넓은’, ‘위대한’ 이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무명의 여인을 의미 있는 존재로 명명하여 세웠습니다. 특히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라부니”로 부른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부니’는 제자가 존경하는 스승을 부를 때 하는 호칭이며 랍비의 아내가 자신이 깊이 존경하는 남편을 부를 때 쓰는 호칭입니다. 이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는 부부로 보아서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와 밀접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예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 위해서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은 것은 예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당도하자 걱정했던 돌문은 열려있었지만 예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를 누가 훔쳐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에 대한 마지막 우정과 사랑으로 무덤을 찾았는데 그 무덤은 비어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의 판단과 생각과 예상은 빗나갔고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했고 좌절하여 슬피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슬피 울며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는 마리아를 보고 있는데 마리아는 예수를 보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분입니다. 그분 앞에서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깨어지는 경험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결단코 진리가 주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부활이라는 저 빛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을 때서야 마리아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주님을 알아봅니다. 그 때서야 주님은 마리아에게 자신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당부합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베드로의 위치는 확고부동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부활을 가장 먼저 경험한 자를 베드로가 아닌 보잘 것 없는 여인, 막달라 마리아로 증언합니다. 이 무슨 의미입니까?

요한복음의 저자는 우리가 찾는 부활이 어쩌면 예수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우리들 자신의 부활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한복음이 유대 신비주의자의 기록으로 본다면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습니다.

◼ 마리아의 부활
그렇습니다. 분명히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제자들을 만나고 떠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의 변화가 놀랍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증언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는 예수가 걸어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며 그 처참한 죽음도 감수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목숨을 내 놓는 일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심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입니다. 예수의 시체를 찾아가 그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려던 여인은 제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 부활은 제국과의 전면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을 만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제자들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행복은 윤동주의 행복이기도 하였습니다. 제국의 심장부에서 쓸쓸히 죽어갔지만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예수처럼 십자가가 주어진다면 꽃다운 피를 철철 흘리겠다고 말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심어 놓은 영원한 하늘의 진리가 그들의 몸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국에서 숨어 있던 예수의 추종자들이 몰려나왔고 그들은 예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한 부활입니다.

◼ 세월호의 부활
지난 15일, 트라우마에 대한 신학과 목회세미나에서 세월호 유가족 곁에서 5년을 함께한 박인환 목사(화정교회)는 "세월호 유가족은 대부분이 마음의 병과 육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이 50도 되지 않았는데 돋보기를 써야 글 읽을 수 있는 사람,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걸린 사람,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실수하는 사람 등 증상도 각양각색입니다. 박인환 목사가 가족들이 교회와 이웃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교회는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것이 비신앙적이라고 단죄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천국에 갔는데 왜 아직도 우느냐"는 교인들의 말 때문에 가족들이 상처를 받았고 힘들어했다고도 전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교회에서 외면당하고 상처 입었지만, 신앙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5년간 매주 수요일 아침 성경 읽기 모임을 열었고, 목요일과 일요일 안산 합동 분향소 기독교 부스에서 예배를 진행했습니다.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가족들이 교회와 목사들에게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고난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습니다. 이제 기복적이고 이원론적인 한국교회 설교는 유족들에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박 목사는 "더는 '이 세상은 헛되니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위로받자'는 식의 얘기는 안 된다며 성령과 구원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아픔당하는 자의 곁에 서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흉내라도 내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조금 성급하지만 세월호의 부활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설프게 부활절이니 하는 소리라면 문제가 있지만 세월호의 아픔과 함께 해 온 사람들에 의해 부활이 얘기되고 있어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은 묻어두면 안 됩니다. 드러내서 밝히고 부활시켜야 합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는 그 길에 있습니다.

시인 김현승은 그의 시 <부활절에>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의 핏자국에선 / 꽃이 피어 - 사랑 꽃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 당신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물들게 하셨습니다
해마다 삼월과 사월 사이의 /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서 다시 사는 기적을 보여 줍니다 / 파릇한 새 목숨의 순(筍)으로

◼ 우주의 부활
시인 김현승은 이미 부활이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언합니다. 이미 파릇한 새 목숨의 순으로 피어나는 3월과 4월이면 부활은 기정사실이 됩니다. 예수의 부활도 우주의 부활의 한 정점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모든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마중물이었습니다. 특히나 처참하게 살아가는 민중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 무지렁이처럼 천대받는 사람들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 역사의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를 역사의 변혁의 주체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죽음을 치열하게 산 것들이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무지렁이처럼 살아왔지만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들이 부활을 맞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의 부활을 노래하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의 참사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래서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진실투쟁을 해 나아가는 중에 참사의 배후에 불의한 세력들이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알고 싶었던 진실규명은 책임자 처벌로 이어졌고 더 이상 이런 부당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안전사회를 위한 제도 마련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반드시 이루고야 말겁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삶은 일상을 잃은 혹독한 아픔의 삶이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삶을 억척스럽게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유가족들의 삶을 지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 어리석은 중생들을 새 세상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이 시대의 중심부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호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 초대하기
어제는 장애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적당한 대우를 받고 인권이 보장 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시다. 진주 한 서민 아파트에서 조현병 환자의 난동으로 아까운 다섯 명의 목숨을 잃었고 13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주민들의 신고도 가족들의 입원 요구도 거절되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애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무지렁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막달라 마리아들을 역사의 주인으로 세우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갈릴리, 변방에서 시작됩니다. 주목 받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고 별 볼일 없다고 판단하는 민초들에게서 시작됩니다. 아주 작은 사람들. 그래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이들을 통해 부활의 아침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부활의 증거가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이 땅에 억울한 죽음을 붙들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나선 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초대 기독교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막달라 마리아, 위대한 마리아들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참된 자유의 세상. 거짓이 없는 진실한 세상. 저 빛나는 부활세상으로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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