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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정원숲
‘하나님의 정원’ 나무 한 그루이길 소망
2019년 04월 13일 (토) 14:27:19 유미호 ecomiho@hanmail.net

하나님이 손수 지으시고 ‘참 좋다’ 하셨던 곳. 에덴정원. 모두가 서로서로 필요를 채워주던 하나님의 정원이다. 선물로 주어진 단 하나뿐인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누렸음에도, ‘생육하고 번성’할 복을 받은 다른 모든 것들을 ‘지키고 돌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정원과 그 안에 있는 생명들에 감탄은커녕 이익만을 좇았기 때문이다. 맑고 푸르렀던 하늘은 뿌옇게 변했고 지구온도가 상승해 수많은 생명이 죽고 또 죽어가고 있다. 풍성하게 내어주신 선물인데, 이제 더 이상 안심하고 누릴 수가 없다. 땅은 나날이 황폐해져 머잖아 먹을거리를 내지 못할 지경이다. 숲도 해마다 한반도만한 열대림이 사라지고 있다.

   

바다로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가 쏠리고 있다.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 나는 새 등 모든 피조물이 새끼를 낳아도 번성하는 복을 누릴 수가 없고, 하루 100종 이상이 하나님의 정원에서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다. 몸은 병들고 마음은 물론 삶이 점점 더 피폐해져 가고 있다. 하나님의 정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고자 숲 정상에 올라 살고 있는 곳을 내려다보면 온통 아파트와 빌딩뿐 뿌옇다.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정원을 만들고 가꿀 계획을 세워본다. 하나님의 정원을 되살리는 일이니, 거룩한 성전 안팎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원숲이라면 좋을 것 같다. 교회 정원숲이 마을 곳곳 크고 작은 숲으로 이어지게 되면 거기서 잃어버린 낙원 곧 하나님의 정원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 거기서 마음의 안정도 얻고 먹을거리도 얻고 창조영성도 깊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거기서 함께 어울려 산다면, 아니 머무르기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가꾸는 교회 ‘정원숲’은 결국 신음하는 지구를 구원할 것이고, ‘하나님의 정원’을 회복시킬 것이다. 정원숲은 모두를 향한 사랑 실천행위이자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감싸 안는 행위다.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교회 마당과 주차장, 벽면과 옥상,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와 세상을 오고가는 길에 ‘정원숲’을 만들어 잇는다면, 끊어졌던 우리 모두의 관계는 회복되고 쫓겨났던 생명들도 돌아오리라. 나비가 춤추고 새들이 다시 노래할 것이고, 우리의 예배도 사람만이 아닌 모든 만물과 함께 드리는 풍성한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을 것이다. 새들의 노래와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당장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창가에 화분 하나 올려놓아도 좋다. 도시에 살수록 ‘정원’은 꼭 필요하다. 앞마당은 꿈도 꾸기 어려운 삭막한 도시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정원’은 그저 부러움일 수 있다. 하지만 ‘정원 일(gardening)’을 할 수 있는 건 꼭 땅이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실내에도 화분에 담긴 작은 정원을 꾸밀 수 있고, 자신의 방 한 켠 텃밭을 만들어 키울 수도 있다. 베란다나 작은 화분 정도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집이나 교회 주변의 공터나 쓰레기가 불법투기되고 있는 곳을 찾아 손수 정돈하고 조성할 수도 있다. 길가나 담벼락, 숲 가장자리, 냇가 등, 그 어느 곳이든 각각의 장소에 어울리는 식물을 찾아 심고 가꾸면 될 것이다. 그곳이 있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게 될 것이다. 교육연구소-살림의 곽호철 소장은 “인간이 창조의 본향인 자연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있는지도 모른다”면서도, “정원을 거닐다 보면 우리의 영성이 깊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교인들과 함께 만들고 또 누릴 공동체정원을 그려보길 희망한다. 심을 수는 있어도 가꾸는 것이 자신 없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자.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에어플랜트나 다육식물들을 키울 수도 있고, 물과 산소의 순환이 투명용기 안에서 자체적으로 순환하는 테라리움(땅을 뜻하는 terra와 방을 의미하는 arium의 합성어)과 같은 미니정원을 가꿀 수도 있다.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정원’에 대해 공부하며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며 즐기다 보면 자연에 다시금 연결되어 자연스레 날마다 하나님과 정원을 거니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찾아보자! 우리동네 나무와 풀
- 생태감수성을 지닌 ‘정원숲’시민 양성
- 정원숲학교(정원숲 인문학) 및 디자인워크숍
- 정원숲 계절에 말 걸기 산책 및 걷기기도
- 어린이와 함께하는 ‘정원숲’의 날
- 모두의 ‘정원숲’을 위한 모금과 나눔

그냥 야생의 자연이 좋다면, 우선 도시 안에 남아있거나 누군가 가꾸고 있는 도시숲을 찾아 즐겨도 된다. 마을 안에 아직 남아있는 ‘하나님의 정원’의 자리가 보이면, 자연을 더 불러들일 ‘정원 일, gardening’을 계획해볼 수도 있겠다. 땅을 허락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게릴라가드닝(5월 1일, ‘국제 해바라기 게릴라가드닝 데이’)을 따라해 봐도 좋지 싶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단순히 개인적 활동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지자체나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기도 한다. 암스테르담은 주민이 원할 경우 포장석을 제거해주고, 밴쿠버는 게릴라가드닝으로 녹색도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규모 가드닝의 경우는 밤에 몰래 이루어지지만, 대낮에 한두 명이 하는 경우라면 ‘삽’ 하나와 ‘씨’만 있으면 된다. 도구를 쓰는 게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씨앗이 좀 더 확실히 뿌리내리도록 퇴비와 토종식물의 씨앗, 옥수수녹말 등을 섞어 씨앗폭탄을 만들어 던지기도 한다.

보도블럭 사이, 돌계단 틈바구니에서조차 뿌리를 내리고, 여리고 작은 꽃을 피워 열매맺는 생명이 있어 ‘하나님의 정원’에 대한 꿈을 꾼다. 지금도 우리들의 발길에 채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면서도, 도심 속 더 작은 곤충들에게 먹이가 되고 쉼터가 되어주는 풀꽃들처럼, 나도 오늘 ‘하나님의 정원’의 나무 한 그루이길 소망한다.

글쓴이 유미호님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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