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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징(세메이온)
삶에서 표징 읽어내기
2019년 04월 01일 (월) 11:31:59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이사야 65:17-21, 요한복음 4:43-54 (시편 30:1-5;8;11-12)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4:48)

   
▲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듯해 보이는 연탄재에서도 하늘의 소리를 듣는 사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늘의 표징을 읽어내는 자, 정녕 복된 사람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행적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됩니다.
가나에서 첫 표징을 일으키시고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성전 상인들을 둘러엎으시는 한 바탕 소동을 일으키신 다음, 야밤에 야영지에서 니고데모라는 최고의회 의원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다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래아 지역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복음 직전 사마리아를 지나실 때는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 또 한 편의 드라마를 쓰시기도 했지요.
예수님은 이내 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이런저런 드라마를 연출하십니다.

그 사이사이 우리가 흔히 '기적'이라 부르는 일들이 제시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사랑의 권능을 드러내는 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표징(세메이온)이라 말합니다.
공관복음이 권능(뒤나미스)이라 표현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이 움직임들 부분에 ‘표징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가나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표징이 일어났던 곳이지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던...
대문호 바이런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생각나는 표징의 장소입니다.
학창시절 한 수업의 시험문제로 가나의 포도주 이적 이야기에 대하여 논하라 했는데
바이런은 한참을 고민하다 종 칠 무렵 딱 한 줄의 글을 써서 냈다지요.
물이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고!
시인은 가나 이야기에서 남다른 표징을 읽어내었던 것이지요.
어느 시인은 가을 낙엽을 보고 하느님께서 쓰신 편지들을 보노라 읊기도 했는데
사실 표징은 모든 곳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왕실 관리가 등장합니다.
그는 다 죽게 된 자기 아들을 살려주십사 청하려고 가파르나움에서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퉁명스럽게 그를 대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가 이적만 쫓아다니는 ‘이적추구형 신앙’의 소지자라 꾸짖으시는 듯한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표징은 보지 않고 껍데기 기적, 요행수 같은 마술에 생의 중요한 것들을 의지하는 몽매한 신앙을 나무라시는 듯한 말씀인 게지요.
하지만 관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네요.
공손히, 아이가 죽기 전에 함께 내려가 달라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슬쩍 던지듯 한 마디 하십니다. 그냥 가 봐라 죽지 않는다. 살아날 거다. 하셨습니다.

관리는 그 말씀에도 겸손히 청종하잖아요.
믿고 그냥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애타는 마음으로 가나까지 달려온 사실에 비하면 싱겁기가 짝이 없는 행동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에서 하늘의 표징을 읽어낸 거지요.
그리고 이 관리의 태도 자체에도 하나의 표징이 있는 거지요.
오늘 복음은 아이가 살아난 사실을 두 번째 표징이라 결론적으로 매듭을 짓지만
사실 예수님의 온갖 말씀과 행동에 표징이 묻어있습니다.
왕실 관리는 그것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싱겁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일을 진중하게 해내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지금 부활생명으로 온 천하를 누비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삶의 자리가 예루살렘이든 사마리아이든 가나이든 어디에든 계십니다.
그 모든 곳에서 우리에게 표징을 던지고 계시지요.
하느님 사랑의 권위에 대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표징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우리네 몫일 터입니다.
복음의 관리나 그 옛날의 시인들처럼
작은 손짓, 무뚝뚝해 보이는 대답들에서 하늘의 소리를 집어내고
그리스도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 믿음의 길을 기쁘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늘의 표징을 읽어내는 자,
정녕 복된 사람입니다.

- <하늘나라 운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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