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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십자가
살아서 죽는 것
2019년 04월 01일 (월) 10:23:56 김홍한 khhyhy@hanmail.net

천년 십자가

유가사상과 노장사상에 불만이 있다. 儒家는 生만을 이야기 하지 死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老莊은 생명의 고귀함만 이야기 하지 죽음의 거룩함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감이다.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다. 살아있는 풀은 부드럽고 죽은 풀은 뻣뻣하다. 살아있는 나무는 부드럽고 죽은 나무는 뻣뻣하다. 살아있는 사람은 부드럽고 죽은 사람은 뻣뻣하다.

그런데 살아있는 것이 무슨 역할을 하려면 죽어야 한다. 다른 것을 살리려고 먹이가 될 때도 죽어야 한다. 나는 목수다. 산 나무는 다루지 않는다. 죽어서 오랫동안 말라서 딱딱해져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수 십 년 성장하여 훌륭한 재목이 된 나무는 죽어서 천년을 간다.

사람이란 살아서 사는 것 보다 죽어서 사는 것이 진짜 삶일 수 있다. 살아서 하는 말보다 죽어서 하는 말이 진짜 말일 수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렇지 않다. 죽어서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많은 제자를 거느리는 이들이 성현이다. 예수는 어떠한가? 살아서 30년이지만 죽어서 2천년이다. 살아서 30년도 예수가 산 것이 아니다. 인간 예수는 죽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살아 30년이다. 그래서 죽어서 영원하다.

살아서 죽는 것, 해탈이 그것이고 거듭남이 그것이다. 학문한다는 것, 수행한다는 것, 신앙한다는 것도 그것이다. 학문한다는 것은 자기를 키우는 것이고 수행한다는 것은 바르게 자라는 것이고 신앙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바울선생은 “나는 매일 죽노라”했다. “내 안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다.”고 했다.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영생이다.

생물학적인 죽음은 때가 되면 저절로 될 일, 내 소관이 아니다. 죽여야 할 나는 욕망의 나다. 욕망의 나로 사는 것은 순간을 스쳐가는 생명이다. 나무는 죽어서 천년을 산다. 사람은 살아서 죽어 영원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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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이 나무 십자가가 1000년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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