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예수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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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 예수의 고난
  • 박철
  • 승인 2019.03.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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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에 다시보는 예수의 고난

나는 인간적인 연약함을 보이는 예수에게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예수의 나약함 속에서 나의 나약함을 발견하고, 나의 연약함 속에서 예수의 연약함을 만나게 된다.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의 모습을 지닌 예수,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죽어가면서 “엘리, 엘리 라마 아사박다니?”, “내 하느님, 내 하느님, 어째서 나를 버리십니까?" 항의하던 예수, 사실은 연약해서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한 예수, 이와 같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약한 예수의 모습에서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을 만나라고 마가복음 저자는 촉구한다.

▲ 붙잡힌 사람들(The Prisoners), 농민전쟁 연작의 일곱 번째 작품 - 케테 콜비츠

구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먼 곳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연약해서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한 예수에게서 우리를 살리는 구원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신학교를 다니면서 목사가 될 자신이 없었다. 몇 차례 그만두려고도 하였다. 그 때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빠져 심히 고민하며 피땀을 흘리면서 하느님 앞에 엎드려 고난의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나는 힘을 얻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나에게 목회자의 길을 가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신 분은 초능력을 행사하는 예수가 아니었다.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호령하는 예수가 아니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한 성정을 지닌 예수, 심히 고민하며 피땀 흘려 기도하는 예수,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한 예수, 그분이 나로 하여금 목회자의 길을 가도록 하였다. 날이 밝으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이 겟세마네 기도는 진정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지 우리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생각하게 한다. 믿음의 기도란 무엇인가? 하느님 믿어서 고난을 없애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물질축복을 받아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인가? 진정한 믿음이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에 쓰러지지 않고 고난을 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이다.

예수는 두 갈래의 길에서 갈등하였음이 분명하다. 고난을 피해갈 것인가, 아니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것인가? 그는 스스로 십자가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죽어간 예수를 다시 살려서 온 인류의 구세주로 삼으셨다.

십자가의 진리(Logos)는 우리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능력이요(고전1:18),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 바울은 고백한다(고전2:2).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며 동시에 복음은 곧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시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회상하며 각자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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