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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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살고 싶다
  • 박성율
  • 승인 2019.03.18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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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 내 삶은 어떤 냄새를.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입춘이 지났지만 장작을 마련해야 하는 추위가 이어졌다. 소나무와 낙엽송을 팼다. 향기가 진동한다. 이미 죽은지 오래된 나무인데도 아직 싱그런 향기가 난다. 도끼질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내 삶은 어떤 냄새가 날까?

봄에 보는 나무는 볼 때마다 머리를 숙이게 한다. 어린나무부터 죽은나무까지 한결같이 스승이다. 나무가 겨울을 나려면 수분 공급이 급선무인데, 나무의 겨울철 수분흡수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토양수분의 점성이 증가하여 이동속도가 느려져서 물에 대한 뿌리의 투과성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나무가 겨울을 이겨내려면 양분을 저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무 줄기속은 부동액처럼 고농도의 영양소로 가득 채워지고 나무의 세포는 추위속에서도 터지지 않는다. 나무를 보면 볼 수록 감탄하게 된다. 잎이 진 채 겨울을 나는 단풍나무, 은행나무, 미루나무, 플라타너스, 버드나무, 목련, 감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의 내려놓음과 포기를 본다면 겸손해 진다. 잎이 푸른 채로 겨울을 나는 사철나무, 동백나무, 향나무,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대나무는 생명의 신비를 찬양하게 한다. 두꺼운 잎으로 겨울을 나는 상록수 중에서 사철나무, 동백나무는 또 다른 희망을 보여준다. 바늘 모양의 잎으로 겨울을 나는 향나무,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는 언제나 늠름하지만 서럽게 살고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도 꽃이 피는 동백나무, 매화는 사는것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란걸 보여준다.

살아가면서,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자신 없을땐 단풍나무처럼 잎을 내리고 때론 푸른 절개로 삶과 맞서는 소나무처럼 살아도 볼일이다. 다만 절망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승리의 순간이 오면 다행이겠다. 장작을 패다가 만난 향기, 하늘소 유충의 집이되고, 산불개미의 월동처소가 된 죽은 나무는 나를 다그친다. “너는 죽어서도 향기롭고, 네 몸을 다른 생명에게 내주겠느냐?” 저만치 다가오던 봄이 북방산개구리 뒷다리를 잡고 얼음속으로 숨는다. 벌써 향기에 취한 나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농민약국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격월 기고하는 글들입니다. 심(心)표라는 코너에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글들을 올려달라고 해서 자연과 함께하는 이야기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약초,꽃,나무,곤총,동물이야기가 섞인 것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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