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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없는 세상, 우리의 내일
핵그련 탈핵연합예배 설교문(전문)
2019년 03월 12일 (화) 16:12:11 박찬영 joypcy@naver.com

어제,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이하 핵그련)가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를 기억하며 탈핵연합예배를 드렸다. 이 예배는 '핵 없는 세상, 우리의 내일'이라는 주제로 약 5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했다. 예배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탈핵을 촉구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이번 지면을 통하여 설교자의 동의를 구해 설교문 전문을 공유하여 말씀나눔을 되새긴다.

2019 핵그련 탈핵연합예배 설교문 
제목 : 마술사들의 착각
본문 : 사도행전 8장 9-24절
설교자 : 남기평님(한국기독청년협의회)
 
탈핵주일로 지키는 이번 주, 공교롭게도 성회수요일을 보내고, 사순절 첫 주를 맞이합니다. 사순절은 예수의 수난을 마음에 아로새기는 40일입니다. 예수의 행적을 쫓으면서, 예수의 삶과 신앙의 궤도를 곱씹으며, 제자도(道)에 깊숙이 나의 존재와 연결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따라 사는 길,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매이는 것이며, 따르는 자를 그리스도의 법, 곧 십자가 아래 세우”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김순현 옮김, (서울: 복 있는 사람, 2016), 109] 는 40일입니다. 이는 존재의 귀천 없이, 생명살림에 앞장섰던 예수의 큰 뜻으로, 이번 주 탈핵주일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인류는 엄청난 참극을 목격합니다. 이 참극은 TV로 생중계되고, 마치 영화처럼 장면 장면을 앞다투어 실시간으로 보도합니다. 심지어 시청자들은 현장감이 넘치는 생생한 사건을 아무렇지 않게 보았습니다. 차라리 영화였으면 더 좋았을, 이 장면은 바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입니다. 이 사고는 마을 전체가 아닌, 사고 구역 반경 30km를 폐쇄시킨 도시 전체를 넘어 일본 전역에 닥친 재앙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묵과할 수 없는, 온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재앙입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났습니다. 이 사고가 재앙에 가깝다는 것보다 더,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아직도 제대로 된 피해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고, 이 사고로 인한 핵오염물질이 얼마만큼, 피해를 주고 방사능 물질이 어느 정도인지 확산되는지 조차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얼추 가늠할 뿐입니다. 8년 전 인류는 철저하게 안전신화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사고가 있기 전, 인류에게 두 번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1979년 3월 28일 미국 스리마일섬에서 참극을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20만명 넘게 피폭을 당했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30년 가까이 줄곧 무시했습니다.

구역에 갔다. 벌써 여러 번 가보았다. 내가 무력하다는 것을 그곳에서 깨달았다.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무력함으로 인해 무너져간다. 모든 것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무너져간다. 그 세상에는 악조차도 달라질 것이다. 과거는 이제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위로하지 못한다. 그 안에 답이 없다. 예전에는 항상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생각에 빠진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김은혜 옮김, (서울: 새잎, 2011), 57]

핵발전소는 인류의 미래를 저당잡으며, 심지어 반감기가 일만 년 이상 되는, 이것조차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최악의 오염물질을 생산하면서, 현재 인류는 갚을 길 없는, 미래의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시 탈핵을 아무도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의 재앙이 겪은 후, 30년 가까이 지나서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교훈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앞다투어 탈핵을 선언하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됩니다. 핵발전소의 사고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사고는 곧 재앙이며, 인류멸절의 길임을 3번의 사고로 겨우 깨달은 셈입니다. 이 모든 시발점은 인간의 탐욕입니다. 이 탐욕으로 인해, 불완전함을 감추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렸으며, 심지어 환상과 신화를 심어주었습니다. 핵에너지가 인류의 축복인 마냥, 그리고 화석연료가 고갈된다는 위기상황을 부추겨, 핵에너지가 유일한 대안 혹은 대체에너지인 마냥 속여왔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핵에너지 신화에 매몰되어있습니다. 25기가 운영 중이며, 건설 중이 5기 이 중 3기는 공정률이 90퍼센트 이상 되는 것들입니다. 건설예정이 4기나 더 됩니다. 5기가 완성되면, 총 30기(건설예정까지 포함하면, 34기)가 됩니다. 지역도 영광, 울진, 영덕, 경주, 그리고 부산에 있습니다. 핵발전소 반경 30km에는 인구 밀집지역이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률이 최고입니다. 이 사고는 재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사회의 대혼란으로 야기될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아직도 사용연한이 2007년까지인 노후발전소 사용을 승인해서 현재까지 운행 중에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수명이 오래된 순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노후발전소가 바로 심심치 않게 지진이 발생하는 경주 월성 1호기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사고는 아무리 대비한다고 해도, 항상 예외상황은 발생하며, 이를 대처할 능력이 부족함을, 안전신화가 단숨에 무너져 내린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을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이 사고가 결코 일본에서만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술사 시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을 시간 순으로 보면, 예루살렘에서 큰 박해에 일어납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스데반의 순교입니다. 그래서 사도들 이외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도 중 한 사람, 바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여러 표징을 행하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술사 시몬이 등장합니다. 성서에서는 시몬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9.그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스스로 큰 인물인 체하는 사람이었다.

9절에서 마술은 “μαγεύω”(마규오), NIV는 “sorcery”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악령에 의한)요술로 대변됩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지요. 소위 마술을 “magic”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놀이로서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면, 오늘 본문 9절에서 사용한 단어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이는 9절 후반부에 잘 보여줍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기 위해, 요술을 사용했으니, 마술사 시몬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파악이 됩니다. 개역 한글에서 “자칭 큰 자라 하니”로 NIV에서는 “boast” 동사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과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술을 잘 부렸었던 탓인지, 그는 지위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 주변 이들을 속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도 했습니다. 11절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11.사람들이 그를 따른 것은, 오랫동안 그가 마술로 그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매번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놀라운 무언가를 계획해야 함은 물론, 들키지 않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요술이라고 밝혀지거나, 속임수라고 들통이 나면 사람들은 분노하게 되고, 그를 비난하거나 하나 둘 씩 그의 주변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이 마술사 시몬에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일 것입니다. 핵에너지로 이익을 보는 이들은 핵발전소가 신재생에너지, 녹색에너지라고 온갖 포장을 하지만, 이것이 다 거짓이라고 또한 속임수라고 밝혀지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러 수치로 값싸고 효율 좋은 에너지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서 대변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요술이라고 판명되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핵발전소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피해서 빈번한 사건 사고와 현재 핵발전소가 정말 기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로 인해 이익을 취하고, 국민의 안보를 볼모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은 오늘 본문의 시몬처럼 자신들만의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의 영원한 골칫거리를 물려주고, 모든 것을 전가하는 몰지각한 행태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 또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구드른 파우제방의 소설에 써 내려간 핵폭발 후,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하는 볼멘소리가 더 이상 소설이 아닌 현실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난 더 이상 그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 엄마 아빠 그리고 엄마 아빠 세대는 모두 꺼져 버리라고 해.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막을 수도 있었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상했다고.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어. 수렁에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어. 우리한테 이렇게 조금밖에 남겨 주지 않을 거면서 도대체 왜 우리를 낳은 거야?” [구드른 파우제방,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함미라 옮김, (서울: 보물창고, 2015), 151]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 등장합니다. 시몬이 살펴보기에, 빌립은 신기하게 요술을 부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빌립이 이적을 행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따르는 것을 보고,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을 쫓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사역을 하게 되고, 사마리아 성에 성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17.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성령은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사마리아인들의 차별과 배제의 결을 아실 것입니다. 이들은 소외된 삶을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들에게 깜짝 놀랄 요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존재자체를 인정해주고,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기쁜 소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직접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얹은 것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이는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서 잘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14.그대 속에 있는 은사, 곧 그대가 장로들의 안수를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그대에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성령이 역사하는 순간은 이들의 은사를 확인시켜주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의 존재자체를 세상에 확인시켜주고 확언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역할입니다. 현재에도 핵발전소 주변에 고통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외면해왔습니다. 이들은 여러 방사능 노출과 송전탑의 가공할 만한 전자파로 인해서 삶의 고통을 겪고 있고,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조직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은폐되어왔습니다. 이들의 존재자체를 인정해주고, 이들의 목소리를 발견해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인을 직접 찾아 안수해줬던 것처럼 여기 모인 우리들은 이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또한 이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우리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디모데전서의 바울의 조언처럼, 우리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진귀한 모습을 본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8-19절입니다.

18.시몬은 사도들이 손을 얹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내고서,
19.말하기를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하니,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신박한 제안을 합니다. 돈을 내고 성령을 산다고 제안합니다. 참으로 그다운 발상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에 신묘한 기술과 속임수가 있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 오늘날의 자본만능주의를 생각나게 합니다. 일종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배울 심산입니다. 본인은 더 잘할 수 있다, 라는 인간중심주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몬이 말하는 권능과 베드로가 말하는 권능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권능은 헬라어로 “δύναμις”(뒤나미스)로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말할 때 사용합니다. 반면, 마술사 시몬은 “ἐξουσία”(엑수시아)로 기능적인 능력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하고 숙련하면 가능한 것들입니다. NIV에서 직접적으로 “ability”라는 명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기능에 더욱 가까울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마술사 시몬과 베드로의 관점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상반된 관점을 발견합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지점, 세상을 바라보는 지점도 이와 같습니다. 자연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리고 함께 상생하고, 공존해야 할, 존재자체를 인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단지 하나의 기능적 요소로만 그리고 제품으로 사용할 소모품으로 바라보는 차이입니다. 이는 자본만능주의와 결합하면서, 자연을 함부로 다루어야 할 무생물로 그리고 이윤 창출의 바탕으로만 여깁니다. 이는 무분별하게 개발이익과 더불어 핵발전소의 효용성과도 연결됩니다. 인류는 자본만능주의를 기저로 “진보”하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진보에 대해 토마스 베리는 경고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산업 시대는, 우리가 어떻게 ‘진보’라는 환상 아래 공기와 물과 땅을 망쳤으며 모든 기본 생명 체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는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기술에 매혹된 시기, 변화된 의식 상태, 심리적 고착 상태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 황홀경이 사라지고 있다. [토마스 베리, 『지구의 꿈』, 맹영선 옮김, (서울: 대화출판사, 2013), 135]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술사 시몬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20-23절입니다.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그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그러므로 그대는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행여나 그대는 그대 마음 속의 나쁜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가 보니, 그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소."

자본의 이익만을 쫓는 너희들은 돈으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했고, 이를 돈으로 망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음의 시작부터 그릇된 것입니다. 자신이 최고로 생각했던 논리나 이데올로기가, 불의에 종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핵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이고, 가장 효용성 있는 에너지라는 사실을 과연, 시민사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의제선정이 되었는지를 바라 봐야 됩니다. 핵발전소로 인해서 누군가는 이익을 보지만 많은 이들이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이로 인해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핵에너지, 핵발전소 이로 인해 발생 되는 폐기물들이 인류에게 해가 되고, 앞으로 몇 만 년을 괴롭힐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도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2060년은 너무나 멉니다. 우리에게 1년은 몇 만년의 미래시간을 당겨서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핵에너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한 에너지입니다. 우리 모두 탈핵해야 합니다.

유희경 시인의 <작은 일들>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중략)
어떤 작정이 없다면 사람은
금방 슬퍼지고 만다
고작 덥네 더워 여름이네 여름
하면서 그렇게 부끄러운 일만
잔뜩 떠올리면서

오늘날 인류가 지구와 자연에게 부끄러운 일들만 행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통감해야 합니다. 이는 어느 때보다 기도와 그에 걸맞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역사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책무이고, 선물로 준 은사에 대한 하나님을 향한 보은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말한 것이 조금도 내게 미치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순간의 실수로 인류멸절이 가능한 핵을 보유하고 있고, 그로 인해 인류의 희망이 사라져가는 이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생명세상이 올 수 있게, 핵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이들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그리고 온 지구의 피조물들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겠습니다. 이는 자명합니다. 바로 탈핵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의 길을 따라 우리도 힘써야겠습니다. 게으름을 금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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