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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혁명과 한반도의 평화
삼일혁명 100주년 기념주일 하늘의 소리
2019년 03월 04일 (월) 11:08:35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 삼일혁명과 한반도의 평화 +
출애굽기 3장 7~12절, 누가복음 4장 18~21절

▪ 3월과 봄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봄이 저절로 오는 것 같아도 봄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봄은 추운 겨울을 치열하게 산 것들이 간절히 고대하기에 오는 겁니다. 우리의 독립도 알고 보면 목숨을 바쳐 자유의 씨앗을 심었던 선조들이 있었기에 맞은 것처럼 더디지만 한반도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봄도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눈물 흘리며 평화의 씨앗을 심는 자들이 있었기에 봄이 오는 것입니다.

   
▲ 사진_한현실님

3월은 3.1혁명과 함께 시작됩니다. 삼일혁명하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유관순, 태극기, 민주주의,

올 해는 삼일혁명 100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해입니다. 만세의 함성은 3월부터 5월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1%나 되는 202만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습니다. 7,500여 명의 조선인이 살해됐고 16,000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체포·구금된 수는 무려 46,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는 세계 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혁명이었습니다. 삼일혁명은 곧바로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걱정한 것처럼 단순 분노로 인한 반기가 아니었습니다. 삼일혁명은 일본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주권자임을 선언하고 주권국을 회복하여 민주공화제를 세우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학혁명을 통해 얻은 주권을 다시 자각하고 이를 세우고자 일어난 민중의 혁명이었습니다.
삼일혁명 이후 세워진 상해 임시정부 헌법 전문에 삼일정신을 계승하여 민주공화제를 명시한 것은 세계사에서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봉건적 왕정을 종식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으며 이는 식민 지배를 당하는 다른 지역 민중들에게 큰 희망으로 작동하였습니다. 중국 북경에서 일어난 5.4민중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인도 독립운동의 영향을 주었으며 필리핀, 베트남, 이집트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 3월 1일의 하늘 / 박두진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3월 하늘에
뜨거운 피 무늬가 어려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대지에
뜨거운 살과 피가 젖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조국,
우리들의 겨레는 우리들의 겨레,
우리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이어야 함을 알았다.

아,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우리들의 가슴 깊이 터져 솟아나는,
우리들의 억눌림, 우리들의 비겁을
피로써 뚫고 일어서는,
절규하는 깃발의 뜨거운 몸짓을 알았다.

유관순 누나는
저 오를레앙 쟌다르크의 살아서의 영예,
죽어서의 신비도 곁들이지 않은,
수수하고 다정한, 우리들의 누나,
흰 옷 입은 소녀의 불멸의 순수,
아, 그 생명혼의 고갱이의 아름다운 불길의,

영웅도 신(神)도 공주(公主)도 아니었던,
그대로의 우리 마음, 그대로의 우리 핏줄,
일체의 불의와 일체의 악을 치는,
민족애의 순수 절정, 조국애의 꽃넋이다.

아, 유관순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언제나 3월이면, 언제나 만세 때면,
잦아 있는 우리 피에 용솟음을 일으키는
유관순 우리 누나, 보고 싶은 우리 누나.
그 뜨거운 불의 마음 내 마음에 받고 싶고,
내 뜨거운 맘 그 맘속에 주고 싶은
유관순 누나로 하여 우리는 처음
저 아득한 3월의 고운 하늘
푸름 속에 펄럭이는 피깃발의 외침을 알았다.

조국에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원망스럽다던 누나, 유관순 누나
3월 1일, 그날은 너도 나도 모두가 유관순 누나였습니다.
2천만 민중이 모두 다 누나였습니다.
3월 1일, 그날, 우리는 그 억눌림을 뚫고 있어나 피깃발이 되었습니다.
꽃넋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자유가 되었습니다.

▪ 독립선언과 독립청원
당시 천도교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을 하자는 그룹이 있었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일본 제국에게 독립을 청원하자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선언은 백성, 국가, 국제단체의 연대로 일제가 아니라 전 인류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고종의 도장이 찍히지 않는 한일병합은 무효이며 주권은 천부의 권리라며 일제의 만행을 만천하에 폭로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를 인정하고 일제에게 독립을 구걸하고자 했습니다. 세계적 흐름으로 보아 일제가 그리 해 줄 것으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순수하게 조선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줄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독립청원은 기독교가 초기에 3.1혁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입니다. 천도교는 독자적으로 3.1혁명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용성스님이 자문에 나섰고 손병희 선생은 스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천도교가 혼자서 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만세 운동, 독립운동은 개신교와 함께 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손병희는 이승훈 등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나 함께 할 것을 제안하였고 당시 5천원을 개신교에 주었다고 합니다. 빌려주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5천원이면 지금은 수십 억~수백 억 원의 가치라고 합니다. 이로써 개신교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천도교도는 300만 명이었고 기독교는 27만 명이었습니다. 천도교는 동학혁명의 경험을 가진 종교입니다. 민족 대표 절반을 개신교에 양보한 것은 천도교의 배려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3.1혁명이 일어나자 개신교 지도자들은 세계 조직망을 이용하여 독립선언문을 세계에 알렸고 이일엔 선교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기독교도들은 앞장서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교회당이 있던 곳에선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수감자, 사망자, 사상자들 중에 기독교도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은 기독교도들의 헌신성이 들어난 것입니다. 왜 기독교도들은 독립에 목말랐던 것일까요.

▪ 출애굽과 독립
일제가 금기했던 성경은 출애굽기였습니다. 노예들이 제국에 저항하여 전쟁을 하여 승리한 기록이 출애굽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독립의 꿈을 꾸었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힘으로 제국을 물리치고 탈출하는 장면은 로망이었습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독립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해방의 하나님이며 독립의 하나님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기회만 기다리고 있던 기독교도들에게 삼일혁명은 기폭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주권자들이 일제의 만행에 눌려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일제의 만행 또한 부당한 것이며 이에 목숨을 잃거나 고초를 당하는 민중을 돌보는 일 또한 신도들의 의무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만세 운동에 나선 것은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들의 고통과 한숨을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의 학대받는 것을 보았고 탄식 소리를 들었습니다. 땅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에서 하나님의 해방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해방과 구원입니다. 창조주인 하나님은 피조물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지켜만 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해방시킬 지도자를 찾습니다. 모세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고난의 한 복판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원받은 히브리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그 때 그 행방의 때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등 떠밀려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한반도의 분단과 갈등, 전쟁과 무기경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해와 상생을 위한 대화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한반도의 해방과 평화를 위해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가 절실함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당시 히브리인들의 해방이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지금 한반도는 평화와 통일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해방지기로 나선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명하였듯이 인류의 해방을 위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류는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임을 믿고 자유로운 삶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온갖 방해를 뚫고 모든 생명에 제 숨을 평화롭게 쉬는 세상을 세워 가야합니다.

▪ 삼일혁명 100주년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조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문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을 말했습니다.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습니다.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습니다. 양민학살과 간첩조작,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도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되었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입니다.

‘한반도 평화구상’의 실현에 대해 말했습니다.
지난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나 8천만 겨레의 마음을 모아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세계 앞에 천명했습니다. 그 이후 한반도의 하늘과 땅, 바다에서 총성이 사라졌습니다. 남북 철도와 도로, 민족의 혈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해5도의 어장이 넓어져 어민들의 만선의 꿈이 커졌습니다.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자연으로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공원을 만들든, 국제평화기구를 유치하든, 생태평화 관광을 하든, 순례길을 걷든, 자연을 보존하면서도 남북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공동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자유롭고 안전한 북한 여행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이 단순한 상봉을 넘어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 친지들을 만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확고해질 것입니다.

‘신한반도체제’는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라고 말했습니다.
‘신한반도체제’는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공동체입니다. 우리의 한결같은 의지와 긴밀한 한미공조, 북미대화의 타결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신한반도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입니다.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어나가겠습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습니다. 남북은 지난해 군사적 적대행위의 종식을 선언하고 ‘군사공동위원회’ 운영에 합의했습니다.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 간에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남북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북일관계 정상화로 연결되고,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평화안보 질서로 확장될 것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청사진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언
오늘 누가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4장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 선언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각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나섭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며 성령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가 주인이 되는 나라이며, 갇힌 자들이 자유를 얻고, 노예들이 해방을 맞고,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삶을 누리고, 모든 사람이 제 숨을 평화롭게 쉬는 세상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희년 선언입니다. 원래 저 있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희년은 지금 한반도에서 절실히 요청됩니다.

▪ 북미정상회담 결렬
종전선언과 금강산 개방 일부 경제제재가 풀릴 것으로 예측되었던 북미정상회담이 아무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렬되어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대화는 이어진다고 말하곤 있지만 미국이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이루고 자주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지 못하고 미국에게 구걸해야 하는 지 안타깝습니다. 마치 미국에 한반도의 평화를 청원하는 기분입니다. 독립을 청원하면 안 되었던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를 구걸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이제 좀 더 세밀히 자주적으로 남북문제를 풀어나갈 길을 모색해야합니다. 남북 정부가 풀 수 있는 길은 무엇이며 남북 국민들이 풀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각 자 찾아보고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어 다행입니다. 미국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집단입니다. 인류 평화라는 거대한 이념과 이상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마치 선심 쓰듯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미국의 힘이 아니고 우리 민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미래를 풀어야 합니다. 더 깊은 신뢰를 갖고 그 작업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민간 교류를 대폭 확대하고 고향 방문을 추진하고 두 정부가 합의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메시지를 주었고 문재인 정부가 받으면 되는 것인데 우린 미국을 무시할 수 없으니 거기에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전향적으로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미국을 설득하고 넘어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삼일정신과 한반도 평화
삼일정신은 자주적인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고 민중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혁명이었으며 세계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일어났고 하늘의 마음인 양심에 따라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일제는 물론 외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주권과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주적으로 통일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적 통일은 72년 7.4공동선언에서 처음 합의한 이후 88통일 선언에도 6.15선언에도 10.4선언에도 담겨 있습니다. 독립청원론자들의 시각에서 과감히 벗어나 독립을 선언한 것처럼 자주적 통일 선언을 생각해볼 때입니다. 남북한 교회가 먼저 그 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남북교회는 충분히 선언을 하였습니다. 이제 그 선언을 실천해야 합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삼일정신이 남북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히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지는 모르지만 남북이 깊은 신뢰를 가지고 민이 중심이 되어 통일을 선언하고 선언한대로 실천하며 나아가자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삼일혁명은 민이 깨어나 전국적으로 일어난 거대한 혁명이었습니다. 살고자 한 혁명이 아니고 죽고자한 혁명이었습니다. 사재를 털어 독립자금을 냈고 감옥에 가면서 죽임을 당하면서 독립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나 한 사람 죽어 기꺼이 밀알이 되어 민족의 독립을 찾고자 했던 거룩한 혁명이었습니다. 이제 그 미완의 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있습니다. 평화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 거룩한 희생을 각오하고 통일의 길을 걷는 자들이 있어서 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남북한의 교회가 삼일혁명 때 독립을 위해 매진하였던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매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을 함께 걷자고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우리 함께 그 길로 나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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