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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평지에 서다
주현절 후 제6주 하늘의 소리
2019년 02월 26일 (화) 15:52:27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행복, 평지에 서다
예레미야 17장 5~10절, 누가복음 6장 17~26절

▪ 나의 심부름
지난 한 주간 동안 생각해보셨습니까? 여러분에게 맡겨진 심부름이 무엇인지? 누가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 순종, 제자들의 삶
우리는 지금 주현절 주님과 함께 걸으며 주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생각하며 각자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심부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독특하며 때로는 편파적입니다. 예수님은 잘난 사람도 유명인사도 아닌 천박한 직업에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심의 조건은 간단합니다. 어느 자리에 서 있든 순명하는 자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신 일은 순명이었습니다. 익숙한 삶의 현장, 안전한 삶을 구성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낯설고 불편한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때로는 익숙한 것들과 이별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길은 익숙한 것들을 등지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시몬 베드로는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명령에 봉착하여 고민스럽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고 힘겹게 그물질을 하였지만 빈탕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고 몸은 쓰러질 지경으로 지쳐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에 순명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위대한 점이며 그를 예수님의 수제자로 만든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기적은 그렇게 일어납니다. 일상의 삶을 넘어설 때 비상의 세계, 기적의 세계가 열립니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일이 순종을 통해 현실이 됩니다. 그냥 그물을 던져 보겠다던 베드로의 그물에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이 기적의 체험은 베드로의 육체의 눈과 영적인 눈을 열어 제켰습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한 빛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요 메시아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신앙 체험입니다. 그 체험은 베드로로 하여금 아비와 가족,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서도록 이끌어갑니다. 이 또한 기적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도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도 순종한 사람들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하나같이 모두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 예레미야의 설교
오늘 히브리 성서의 성서일과는 예레미야 17장입니다.
본문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설교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인간을 의지하고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자들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것을 보지 못할 것이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소득도 없고 메마른 곳에 거할 것이며 구원의 복된 열매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여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간들의 말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소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이들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선으로 삼고 그의 능력을 우리가 기대하는 힘으로 삼는 자는 마치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수액을 충분히 빨아올려 풍성하게 뻗히고 어떤 요동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험한 가뭄에도 잘 견딥니다. 더위에도 두려워 아니하며 뜨거워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기준이 돈에 있지 않고 세속의 즐거움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공부를 잘해야 행복하고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행복하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뭐 거창한 게 아니며 기독교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의 뜻으로 운행됩니다. 그렇다면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주의 원리 자연의 섭리 사람다운 길 양심의 도리가 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섭리에서 벗어나는 게 하나님을 등지는 것이며 이는 곧 죽음입니다. 세속의 가치, 돈의 마력, 이기적 욕망을 따라 살려면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 順天者興 逆天者亡
동양에서도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이는 흥하고 하늘의 뜻을 어기는 자는 망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복을 받되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이들은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요 동양 성현들의 가르침입니다.

▪ 산에 서다
성서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곳은 평지가 아니고 산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 이후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명하십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출애굽 이후 백성을 가르칠 율법을 받은 곳도 시내산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단 선지자들과 대면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이렇듯 산은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산은 거룩한 곳이며 신비한 곳입니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부르는 자만이 산에 들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특별한 몇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독점하였습니다. 이것이 성전체제를 만들었고 성직 독점을 가능하게 했고 번영신앙을 양산하여 하나님 신앙을 우상화했고 왜곡시켰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 개종자들이 주축이 된 기독교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이 신앙의 중심이었고 신앙적 계급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유대인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기에 선교 대상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만든 모세를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여겼습니다. 마태복음서는 유대인을 위한 변증서입니다. 율법과 전통에 천착해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알리고자 기록하였기에 그들이 신령하게 생각한 산상에서 설교하는 모습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모세를 연상케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근히 모세보다 더 큰 분으로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 평지에 서다
오늘 성서일과는 누가가 전하는 복음서 6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평지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평지에 서셨다는 누가가의 강조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가 대상으로 여긴 청중은 개종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개 취급한 이방인들을 유대인들과 평등하게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로 여기고 그들을 예수 운동의 중심에 둔 것입니다. 이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특별한 사람들이나 지도자 몇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대중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하여 운영해 갈 것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5.18 광주민중항쟁
제가 처음 5.18광주민중항쟁을 접하게 된 것은 82년 감신대학에 들어가 처음 맞은 5.18 기념집회에서였습니다. 외국인 기자가 목숨을 걸고 찍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곤봉으로 맞아 죽는 장면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그 때부터 정치운동과 사회변혁 운동에 관심을 갖고 학생운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행동은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민주화를 이루고 정치변혁을 가져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대구 새민족교회 백창욱 목사는 80학번입니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던 1980년에 총신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백 목사는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다녀왔고 복학하고 난 85년에서야 처음으로 5.18 광주항쟁 소식을 들었고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땅 남도의 한 중심인 광주에서 벌어진 엄청난 일을 5년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것이 소름이 끼쳤고 더 충격적인 것은 신학대학에서 이 아픈 역사를 가르쳐 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자유한국당에서 벌어진 5.18 광주항쟁을 북한군의 개입에 의한 전복사건으로 보는 막말파문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은 죄질이 아주 나쁩니다. 정치적 이용가치가 있다면 유가족들에게 두 번 세 번 상처를 주어도 상관없다는 논리는 가장 나쁜 폭력입니다.

이들은 광주에서 빨갱이들이 준동하여 내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고 이들이 지금 나라를 장악하고 있으니 이 민족의 미래가 큰 일 났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엉터리 가짜 뉴스를 아직도 믿고 있다는 것이 그것도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원이 이런 무식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자당 국회의원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면피성 솜방망이 제지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이렇게 망하게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이 땅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비극이었습니다. 권력찬탈욕심에 빠진 전두환, 노태우와 그 일당들이 군대를 동원해서 제 나라 국민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입니다. 박정희의 18년 독재가 막을 내리자 독재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봄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권력에 눈이 먼 정치군인들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찬탈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 땅 민주주의는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정치군인들의 욕망은 민주시민들의 기본권을 빼앗았고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광주는 독재에 눈감지 않았습니다. 87년 6월 항쟁, 최근 촛불혁명은 5.18 광주의 정신이 살아난 역사입니다. 지난 40여년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광주민중항쟁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허나 자유한국당은 이 신성한 역사를 무시하고 매도했습니다. 사법 심판을 받은 가짜뉴스로 순결한 희생자들의 공을 능멸하였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말한 이종명,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주장한 김순례, 전두환을 영웅으로 부르는 지만원을 끌어들여 막말 잔치판을 벌린 김진태. 당장 이들을 국회에서 퇴출시켜야 합니다. 여야는 물론 자유한국당도 관련 의원을 해임하고 퇴출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살려면 꼼수징계를 철회하고 관련의원을 무조건 영구 제명해야하고 5.18 유족회와 광주시민.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 평지 복음
하나님의 부르심과 살아계심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겐 지각변동을 예고합니다. 모세 보다 더 큰 이로 예수를 소개하고 있는 마태공동체는 하나님의 신성한 역사와 말씀은 여전히 산을 통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급속한 변혁을 노래하고 있으며 구원의 주체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누가 공동체는 예수를 민중의 메시아로 세웁니다. 누가 공동체는 사람들의 자각과 연대, 하나님 신앙과 영성적 비전을 토대로 부패한 정치집단과 위선적인 종교권력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저항합니다. 기독교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정치적이었습니다. 예수는 매우 정치적인 분이었습니다. 민중의 고혈을 빨아 권력놀이에 취한 헤롯을 여우새끼라고 말하고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네 나라에 속하지 않았다며 까불지 말라고 꾸짖고 율법학자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독사의 새끼라고 욕을 하신 것도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붙들렸고 재판을 받았으며 정치범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셨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를 찾아 나옵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요, 예수님으로부터 병을 고침받기 위해서입니다. 모두들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길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와 치유의 역사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영적이며 마음의 질병인 귀신들린 자들을 해방시켰고 육체의 질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인간다운 삶으로 해방시키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었고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생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 불렸습니다.

▪ 행복과 불행
누가복음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과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다른 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린 본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행복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주의 질서, 사람의 도리인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길을 가십시오. 이것이 행복임을 천명하고 계십니다. 부요와 풍요 등 돈과 명예와 권력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오히려 불행임을 선포하시고 가난과 아픔, 슬픔, 비방이 행복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박해를 받거나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겪는 것은 보상을 받는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복음은 산에서도 평지에서도 선포되었습니다. 가진 자들은 불편했고 가난한 이들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윤제림 시인의 <행복한 사람>을 함께 읽으며 말씀을 마칩니다. 이번 한 주간은 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사람은 / 세월과 사이가 좋은 사람
가는 시간은 아쉽게 떠나보내고 / 오는 시간은 가슴 설레며 / 기다리는 사람
행복한 사람은 / 사는 곳과 사이가 좋은 사람
자신의 고향은 아니지만 / 아들딸의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은 / 사람들과 사이가 좋은 사람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 어디 있느냐며, 누구에게나 / 한결같은 사람
모두 '사이 간(間)'자가 붙은 /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
이 세 단어와 사이가 좋은 사람
세상에 갑자기 생긴 것이 /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 / 홀로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사람 / 사람은 혼자선 살 수 없다고 / 힘주어 말하는 사람
손잡을 수 없는 사람은 / 하나도 없음을 깨달은 사람 /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 모든 이와 사이가 좋은 사람이다
사이가 좋기 위해 / 마음의 격랑을 넘은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 시대의 울타리를 넘는다
이념도 인종도 종교도 넘고 / 지역도 민족도 넘는다 / 계급도 자본도 넘는다
행복한 사람은 / 마침내 평지에 선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고대하십니다. 하나님과 손발 맞추어 길을 걸어가십시오. 봄기운처럼 맑고 따뜻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길을 삼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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