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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계보학
‘좋음’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자
2019년 02월 20일 (수) 20:41:51 유미호 ecomiho@hanmail.net

고기의 계보학(The Genealogy of Meat)

1.
그녀가 다섯 살에 접어들었다. 이제 부모와 똑같이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소시지를 유독 좋아한다. 따로 먹인 적이 없는데도 신기하게 김밥을 먹을 때는 가운데 햄만 쏙 빼먹는다. 간혹 빵집에 가면 쏘시지 빵을 사달라고 한 뒤 겉에 빵은 벗겨내고 속에 있는 소시지만 먹으려 한다. 얼마 전에는 소시지를 무엇으로 만드는지 아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한참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무”라고 한다. 황윤 감독의 “사랑할까 먹을까”의 한 부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침 벽에 동물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소시지와 고기는 이 ‘돼지’로 만드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고기를 먹으려면 여기에 있는 돼지를 죽여야 한다고... 그녀는 앞으로 고기를 조금만 먹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일 후 시골 식당에서 닭백숙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앞 마당 어디로부터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닭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그녀를 안고 닭장을 찾아 나섰다. 울타리와 지붕이 있는 좁지 않은 닭장에 큰 토종닭 몇 마리가 살고 있었다. 우리가 방금 먹고 나온 닭고기가 방금 전까지 저 안에 살고 있었던 닭이었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도살되고 손질되어 밥상에 올라오는 과정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최소한 고기를 나무에서 따오는 게 아니라는 점 하나는 분명히 알지 않았을까.

2.
그녀가 세 살 때 교회 담장 곁에서 또래 친구와 개미를 열심히 밟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개미도 밟히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녀는 더 이상 개미를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만화 ‘벅스라이프’를 그녀와 함께 보게 되었다. 만화는 한 무리의 개미떼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개미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저기 봐, 엄마 개미, 아빠 개미, 아가 개미가 다 같이 살고 있네. 그런데 저 중에서 어떤 개미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정말 슬플 거야”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요즘 그녀는 생일축하놀이를 할 때마다 ‘사랑하는 개미’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 개미의 삶을 존중하고 축복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3.
나는 그녀와 카페에 자주 간다. 그녀는 세 살 때부터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종이컵, 빨대, 냅킨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라 하던 일을 못하게 하면 화를 냈다. 그런데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 여자 아이는 언어습득이 매우 빠르다. 이제는 말해줄 때가 된 거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빨대를 버리면 바다에 있는 거북이와 물개가 죽는다고 말했다. 종이컵과 냅킨을 막 버리면 더 많은 나무를 죽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4.
이번에도 죄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는 자녀에게 ‘죄’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을 한다. 어릴 때 배운 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는데 그 죄가 유전되어 우리에게 왔다고 말해주기가 어렵다. 파괴되고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 이야기를 해주기는 더 어렵다. 한편으로는 회개 기도를 하고 용서를 받으면 된다는 식의 가벼운 가르침도 자녀의 신앙에 하등 도움이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성경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 의가 관계적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죄도 관계적 개념이다. 따라서 자녀에게 의나 죄에 대해 가르쳐주려면 관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것 저것 하지 말라는 식의 가르침, 하나님은 이런 걸 좋아하신다는 식의 가르침으로는 부족하다.

자녀가 죄의 문제를 명확하게 알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을 통해서 이것들이 나뿐 아니라 세계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말해주고, 자신의 행동이 그 관계 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주는 게 우선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먹는 치킨이 35일 밖에 살지 못한 병아리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 고기로 태어나서 살다 죽은 그들의 운명을 이해시켜 주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아기 동물을 죽이는 것의 불편함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나무가 아닌 공장에서 사육되고 있는데 제대로 된 흙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엄마, 아빠와 떨어진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존재는 매우 크다. 그런데 엄마 아빠를 빼앗긴 채 살아야 하는 동물들의 삶이라니... 적어도 우리는 고기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들의 슬픈 감정을 말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아이가 조금 더 자랐을 때 자신에게 고기를 제공해 준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엄마 아빠랑은 얼마나 지냈을지, 죽을 때 아프지 않게 죽였는지 등에 관심을 갖고 물어볼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더 자라면 자신이 먹는 고기, 과일, 채소, 곡식 등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과정에서 땅, 하늘, 물, 사람, 다른 동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유기체적 관점, 과정-관계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 이웃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을 이웃으로 볼 줄 알고,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먼 나라의 농민들과 그곳의 이름 모를 나무를 위해서도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관계 안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성 안에 살아가도록 지으신 것을 발견하고, 생명의 영인 성령이 세계를 지탱하고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나아가 생명을 풍요롭게 하고 살리는 일이 곧 구원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파괴와 죽음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질서와 법칙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다. 하나님의 질서와 법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났고,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좋음’을 매우 분명하게 표현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면, 적어도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하나님의 ‘좋음’이 창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나는 내 자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통해 최초의 ‘좋음’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좋음’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러면 그녀가 최소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지 않겠는가?

- 김신영 / 목사,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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