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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회의 뿌리를 찾아서(8)
다석 유영모(1)
2019년 02월 18일 (월) 12:57:18 조헌정 choshalom@gmail.com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다석 류영모선생은 1890년에 태어나 1981년 돌아가실 때까지 92년간 우리 민족의 근대와 현대를 걸쳐 사신 분으로 흔히 함석헌선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석강의>라는 책 표지에 소개되어 있는 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석은 천문, 지리, 서양철학, 동양철학, 불경, 성경 등에 능통한 대석학이요 현자요 한글철학자이다. 16세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32세에 조만식선생의 뒤를 이어 평양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그곳에 정통 기독교 신앙을 전하였다. 40대에는 월남 이상재의 뒤를 따라 YMCA의 선생이 되어 30년이 넘도록 연경반 강의를 하였다.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평생동안 성서를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였다. 예수를 절대시하고 성서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여러 성인을 모두 좋아하였으며, 노자를 알리는데 큰 공을 이루었다. 순수한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여 우리말이 들온말(외래어)에 밀려 없어지거나 푸대접받는 걸 몹시 언짢아하였다.

160cm미터가 못 되는 체구에 서민적 모습이었으나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눌변도 달변도 아닌데 한 말씀 한 말씀이 예지가 번뜩이는 시문(詩文)이며 진언(眞言)이었다. 얇은 잣나무 판에 홑이불을 깔고 목침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잤으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였다. 하루에 한 끼씩 저녁에 식사를 하였는데, 세 끼를 합쳐서 저녁을 먹는다는 뜻으로 호를 다석이라고 했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맨손체조와 냉수마찰을 평생 동안 했다. 일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천으로 만든 손가방에 명상의 일기 공책을 들고 다녔다. 시계도 차지 않았지만, 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사람이 제 먹거리는 제가 장만해야 한다면서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를 지었는데, 제가 14년을 머물렀던 향린교회 구기동 빌라 사택이 바로 이 농장 터와 붙어 있었습니다. 걸어 다니기를 즐겨 북한산에 자주 올랐고 강의하러 갈 때도 꽤 먼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새벽마다 지구를 사타구니 밑에 깔고 우주를 한 바퀴씩 돌면서 우주 산책을 한다면서 세계의 명산, 깊은 바다의 이름과 높이 깊이를 모조리 기억하였으며, 지구와 별들과의 거리도 외웠다.

나이를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날수를 하루하루 세었는데, 32,200일을 살았다. 가까이 따르던 사람으로는 김교신, 함석헌, 현동완, 이현필, 김흥호, 유달영 등이 있다. 감탄할 만한 명문장가였는데도 평생 다석일지만 남겼다.

김교신선생은 류영모선생을 가리켜 “내가 만나 본 이 가운데 가장 경외하는 사람, 하느님을 믿되 이처럼 ‘믿어 사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류달영선생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다석을 진인(眞人) 또는 성자(聖者)라고 추앙한다. 그의 인격이 참되고 거룩하였기 때문이다. 그분이 펼치신 다석 사상은 우리 민족의 값진 정신적인 유산이요 인류의 유산이다.” 그래 2011년 8월에 5차 세계 철학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이때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사상가로 두 명이 소개되었는데, 한분은 류영모선생이고 다른 한분은 함석헌선생입니다. 함선생께서는 당신 스스로 류영모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으니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철학자나 사상가가 있다면, 류영모선생이 가장 두드러진 분이십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 함석헌선생으로부터 류영모선생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만, 그때는 생각이 짧아 굳이 찾아뵐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한번이라도 찾아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진한 아쉬움이 항상 남아 있습니다. 말씀이 심오하고 사상의 깊이가 있어 선생의 어록이 담긴 책을 가까이 하긴 하였지만, 깊은 공부는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번에 하늘뜻을 준비하면서 책을 읽긴 하지만, 단기간에 그를 이해한다는 것이 시험을 앞두고 밤샘 벼락공부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임을 고백합니다. 물론 이는 단지 류영모선생님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았던 훌륭하신 분들의 생애를 30분간의 하늘뜻펴기로 간추려 전한다고 하는 것이 실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입니다. 부족하기에 주저하면서도 이런 일을 시도하는 것은 남한 교회의 하늘뜻펴기 방식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길을 잃은 남한 기독교]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개신교회의 역사는 채 140년이 되지 않습니다. 서양의 2,000년 역사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는 서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양의 여러 민족의 전통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우리 문화와 전통 속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뿌리가 깊지 아니한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개신교는 뿌리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전통과 권위를 부정하는 문명의 흐름은 물론 SNS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이 전통적 종교의 만남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형교회들의 물량화 교회지도자들의 영적 육적 타락으로 인해 종교인 특히 개신교 목사들에 대한 신뢰는 최저입니다. 지금 개신교는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계속 미국교회를 따라 성장번영신학을 추구할수는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전통문화 뿌리 내리기입니다. 불교는 외래종교이지만, 천년이 넘는 동안 우리 문화와 역사 안에 깊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가톨릭은 제사문제 등 개신교보다는 앞장서 있습니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미국의 보수 선교사들의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짧은 이해와 오해로 인해 우리 문화를 얕볼뿐더러 죄악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라도 뿌리 내리기 운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개신교회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하늘뜻펴기를 통해 우리 문화에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하늘뜻펴기는 서구 목회자들을 따라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삼단논리에 매여 있고, 예화 또한 서양의 것이 많습니다. 예수는 분명 검은 눈, 납작 둥글 코에 검은 곱슬머리, 짙은 갈색의 중동인이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파란 눈, 우뚝 솟은 코에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백인으로 인식되어져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와 성서에 대한 우리 전통에 근거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 류영모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좌식일언인(一坐食一言仁)]

류영모선생이 예수를 믿었던 16세가 되던 때는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에 의해 일제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해입니다. 많은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 마냥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안창호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우국지사들의 강연이 YMCA에서 있었는데, 청소년 다석이 이곳을 드나들다 총무 김정식선생의 권유에 의해 연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교인이 되었고 이후 수년간을 오전에는 연동교회 오후에는 승동교회 저녁에는 새문안교회를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신학교를 졸업하던 해 정주의 오산학교에 과학교사로 초빙을 받아 가서 매 수업을 기도로 시작할 만큼 기독교정신에 열심이었는데, 그때 오산학교는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었고, 창립자 이승훈선생 또한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석의 영향으로 이승훈선생이 예수를 믿어 후에 장로가 되었을 뿐더러 오산학교를 기독교정신으로 운영해 나간 것입니다.

이 오산학교를 통해 함석헌 주기철목사와 같은 민족과 교회를 위한 수많은 지도자들이 나왔는데, 그 근본을 보면 다석의 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석은 2년 후 이승훈선생이 옥에 갇히고 대신 평양신학교의 선교사 로버트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학생들을 기독교신도로 만드는 일에 교육의 초점을 두자, 이때 오산학교를 떠나게 되고 그러면서 동시에 정통 교회신앙을 버립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전하는 교리 신앙, 서구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비주체적이고 탈역사적인 신앙 곧 죽은 신앙을 버린 것입니다. 거기에는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과 톨스토이의 사상과 두 살 아래 동생인 영묵의 갑작스런 죽음들을 통해 얻어진 신앙의 결과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언급을 하겠지만, 특히 교회가 전하는 대속(代贖)사상 곧 우리의 구원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고 하는 것을 입으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이 온다고 하는 문자적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자속(自贖)사상, 우리 자신이 예수를 따라 십자가를 지는 희생적 결단 곧 자속을 통한 대속의 구원의 길을 얘기한 것입니다.

예수가 가졌던 신앙을 본받아야지 예수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이런 주장은 요즘 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가르침이지만,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전파하는 교회의 정통교리를 부정하는 일이 되기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십자가 신앙을 자속적인 동양의 수행으로 끌어내어 일좌식일언인(一坐食一言仁)을 실천하십니다.

일좌란 무릎을 꿇고 앉아 말씀을 골라 묵상하는 일이며 식일은 하루 한 끼를 먹는 일로서 일상에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말하며 일언은 남녀간의 성적 관계를 끊는 일로서 선생이 50세에 부인과 해혼하여 남매처럼 지낸 것은 유명한 일이며 인은 언제든 걷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성서를 연구하고 우찌무라 간조나 톨스토이와 간디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불교, 유교 그리고 노장의 경전들을 두루 읽어 독특한 사상과 신앙을 세워나갔습니다. 특히 한글에 깊은 연구를 하시어 한자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로부터 받은 나는 ‘몸나’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나는 ‘얼나’로 그리고 나의 근원이 되는 하느님은 ‘참나’로 표현하고, 거듭난 나는 '솟나'로, 독생자는 ‘한나신 아들’로, 백성은 ‘씨알’로, 근본은 ‘바탈’로, 하느님은 ‘빔’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가 새롭게 해석하고 깨우치고 만든 단어가 워낙이 많아 다석 사전이 있을 정도이며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 보통사람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시중에 나온 책들은 모두 제자들이 해설을 한 것들입니다. 다석은 한시 1천3백수, 우리말 시조 1천7백수를 지었습니다. 광주가 우리말로 ‘빛고을’이라고 하는 말은 많이 아는데, 이 말 또한 다석이 처음 한 말입니다.

 [한글과 삼재론]

다석이 한글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인 삼재론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을 중시하는 삼재론과 성서에 드러난 하느님 예수그리스도 성령이라고 하는 삼위일체가 사상적으로 일치한다고 보았고 이 삼재론 사상이 한글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화비교학자들에 의하면 중국과 한국은 그 기본적인 문화의 핵심 키워드가 다르다고 합니다.

중국은 음양론이 중심이고 한국은 삼재론이 중심이라는 것이죠. 음양론은 밟고 어둡고 태양이 있고 없는 농경문화권 속에서는 사상의 중심이 되지만,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시베리아 문명은 농경문화권이 아니라 수변문화권이며 여기에는 음양론보다는 삼재론이 더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함석헌 유영모 장일순 최홍종의 생애와 사상 강좌> 이정배 광주YMCA 오방 아카데미 편, 87쪽) 후에 한국과 중국의 문명권이 서로 교류하면서 중국은 ‘음양론 중심의 삼재론’을 펴고 우리는 ‘삼재론 중심의 음양론’을 폅니다.

이 삼재론 중심의 음양론 정신이 가장 잘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할 때 바로 이 삼재론과 음양론의 구조를 조화롭게 조절하여 만든 것입니다. 한글의 기초가 되는 ‘아(아래아) 으 이’는 하늘 땅 인간이 우주의 근본이라는 삼재론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이 삼재론에 모음과 자음의 음양을 조합한 것이 한글입니다.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의 핵심사상도 정기신(精氣神)이라는 삼재론입니다. 몇 년 전 유네스코에서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세계의 소수민족에게 가장 적합한 언어는 한글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몇 년전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을 것입니다.

사실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언어는 한글이 최적입니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인 글일뿐더러 거기에는 깊은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류영모선생은 바로 이러한 한글에 담겨 있는 철학과 사상에 깊은 연구를 하시어 가장 많은 한글 시조를 남기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남기신 우리 말 시조 하나를 읽어보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언니들은 싱싱히 댄겨가시압 아멘 힘차신 속알로 힝하니 돌아가시압 아멘 아버지 할렐루야 암 우리 읗님 가온뫼시리 여기서 언니는 (예수를 비롯한 성인)들을 말하고 읗님은 하느님을 말하고 가온이란 말은 영원절대를 말합니다. (풀이) 예수를 비롯한 성인들이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휭하니 다녀갔듯이, 우리도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어서 빨리 하느님께로 돌아가서 그분만을 영원토록 모시자.(<다석 유영모> 박영호 147쪽)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

류영모선생의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다석은 자신의 생을 년으로 계산하지 않고 날로 계산하여 일기에 그 날수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래 32,200일을 사셨습니다. 다석을 따라 저도 오늘 아침에 한번 계산을 해보았는데,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이 세상에 산 날이 23,781일째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간 기간을 햇수가 아닌 날로 계산하는 방식은 참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그건 하루하루를 보다 값지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새해 첫날에 화를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덕담만을 합니다. 그건 그 해를 보다 보람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결심의 표시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나이를 날로 계산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매일매일이 새날이 되는 셈이고 태어난 시를 축하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매일매일이 생일이 되는 것이지요. 나이를 굳이 햇수로 계산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습관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나이를 물으면 40살쯤 먹은 사람이 150살이라고 답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와는 다른 저들 나름대로의 계산법이 있는 것이지요. 이를 갖고 미개인이다 문화인이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미개인 문화인을 구분한다면 수십만 명을 한꺼번에 살상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수천 발씩 갖고 있는 놈이 미개인이고 야만인이지, 나이를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다고 해서 미개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우리 나이를 달의 주기에 맞춰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고, 계절로도 계산할 수 있을 것이고, 하루를 둘로 나누어 조석의 때로도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번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백남준 아트홀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의 날짜를 태어난 날로부터 거꾸로 계산해서 그날 있었던 어머니와의 대화를 ‘태내 자서전’이라는 명목으로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첫 작품은 자신이 태어난 날로부터 거꾸로 계산하여 120일째가 되는 날, 1930년 그날의 뉴욕타임스 신문을 구해서 그 위에다 큰 글씨로 -120 days 라고 매직으로 휘갈려 쓴 다음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Mom, what is tax?' '엄마 세금이 뭐야?' '응, 그건 정부가 국민에게 매긴 바가지란다.' 태내 자서전이라는 발상 자체도 파격적이지만, 대화의 내용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석은 28세에 이 세상에서 산 날을 세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쓴 글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나의 삶으로 산다는 궁극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가로대 오늘살이에 있다 하노라. 하루를 무심히 지내면 백년, 천 년을 살아도 시간을 다 잃어버린다... 하루하루를 지성껏 살면 무상(無常)한 인생도 비상(非常)한 생명이 된다. 언제나 오늘오늘,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 이런 얘기도 후에 하셨지요. ‘오! 늘--!’

[태양을 꺼라!]

류영모선생님의 호 다석(多夕)은 한문으로 보면 저녁 석자 세 개가 모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루에 저녁 한끼만을 먹는다는 의미를 넘어 보다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서양의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석의 독특한 동양적 기독교 이해의 출발점이 담겨 있습니다. 철학자 이기상은 그래서 이 호를 ‘태양을 꺼라’로 해석합니다. ‘많은 저녁’이 되려면 태양을 꺼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라고 하는 것은 빛의 근원이자 밝음의 출발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세상이 있었다.’ 곧 빛은 세상의 출발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분별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다석은 이 빛의 근원이 되는 태양을 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저녁을 상징하는 어둠과 달을 끄집어 낸 것입니다. 태양이 서양적 이성의 상징이라면 달은 동양적 감성의 상징입니다. 서양인들은 태양을 좋아합니다. 해변에 나아가 옷을 벗고 태양을 즐깁니다. 반면 동양인들은 옷 벗음을 수치로 여기며 산에 올라 달을 즐깁니다. 태양 빛 아래서 시원한 맥주잔을 기우리며 떠드는 것이 서양의 멋이라면 달빛 아래서 시 한수를 읊으며 차 한잔을 나누는 것이 동양의 멋입니다.

따라서 어둠과 달을 뜻하는 다석의 호는 서양의 논리의 틀을 벗어나 동양적 감성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영원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석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대낮에는 살림을 위해서 다니고, 일하고, 배우고, 놀고, 밤에는 그것을 위해 쉬고, 잠자고, 꿈꾸는 것으로 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밝은 것 뒤에는 크게 잊혀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은연중에 통신으로, 밤중에 희미한 빛으로 태양광선을 거치지 않고 나타나는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혼과의 통신이다.

우리는 이것을 망각하고 그저 잠이나 자고 있다. 한낮에만 사는 것을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없는 소리다. 빛을 가리어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낮의 밝음은 우주의 신비와 영혼의 속삭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낮에 허영에 취해서 날뛰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밤에까지 연장하여 불야성을 만들려는 것은 점점 어두운 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창세기에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다고 했고, 묵시록에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 햇빛이 쓸데없다 했으니 처음도 저녁이요 나중도 저녁이다. 낮이란 만년을 깜박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이다. 이 영원한 저녁이 그립도소이다. 파동이 아닌 빛 속에서 쉼이 없는 쉼에 살리로다.”(<저녁찬송> 성서조선 1940년 8월호) 고로 다석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은 밤에 잠만 자지 말고 세상을 향한 낮의 욕망을 다 내려놓고 영원하신 하느님 어버이께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순우리말로 ‘하도 지낸 저녁’이라 옮겨 쓰기도 했던 영원한 저녁은 그에게 있어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다석은 ‘있음’ 대신에 ‘없음’에서 참을 찾았습니다. 모든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 세상 속에 거하면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지향하는 바는 세상 밖으로 세상과 다른 영원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세상이 보이는 것을 추구한다면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없음’(nothingness)이란 사상은 매우 중요한 사상입니다. 여기에서 다석이 자주 얘기하는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는 사상이 나옵니다. 이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 참고서적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다석 유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박영호 두레 2000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 박영호 두레 2000 <다석 유영모> 박영호 두레 2009 <다석 유영모> 박재순 현암사 2008 <씨ᄋᆞᆯ 함석헌, 다석 유영모, 무위당 장일순, 오방 최흥종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다> 김경재 이정배 이현주 김한중 공저. 광주 YMCA 오방기념사업회 편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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