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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을 것이다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설교문
2019년 02월 11일 (월) 11:22:46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9. 2. 10)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누가 5:1-11 “사람을 낚을 것이다”

드디어 북미정상회담 일시와 장소가 나왔습니다. 북미는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회담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평양에서 열린 실무협상에 대해 설명하기를, "이번 협상은 2차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관계정상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 추가 진전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회담장소가 베트남인 이유에 대해서는 베트남과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번영의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바, 한국전쟁과 핵문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북을 향해 새로운 조미관계를 구축하자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회담장소가 하노이냐 다냥이냐로 계속 설왕설래했는데, 북한의 주장대로 하노이로 결정이 났습니다. 회담장소뿐만 아니라 그간 진행해 온 북미협상과정을 보자면, 미국과 수평관계에서 협상하며 자국의 주장을 관철하는 북한의 외교력에 대해 새삼 감탄합니다. 북한이 어떤 나라이며 그 나라의 인민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고 나면 미국과 당당하게 부딪히는 지금의 북한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지난주에 북한 관련 책을 읽었습니다. 김이경씨가 쓴, 『좌충우돌 아줌마의 북맹탈출 평양이야기』라는 책이다. “평양을 제집 드나들듯했던 대북사업 전문가의 레알북큐멘터리”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김이경씨는 대북인도적 지원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의 사무총장으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북녘을 오가기 시작했는데, 그 경험을 책으로 냈습니다. 김이경씨는 남북교류를 위한 새로운 안내서를 만들 필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남쪽 사람 대다수는 심각한 북맹이다. 북녘은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다. 같은 자본주의 나라도 안내책자를 보고 가는데, 하물며 체제가 다른 사회주의 북녘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 체제가 허용하는 가치와 상식만을 절대 진리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세계에는 다양한 체제와 상식이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이 다른 측면에서는 전혀 달라 보이기도 한다. 북녘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를 비우고 인간 존재방식에 대해 새롭게 고찰하는 과정이며 통일시대를 여는 새로운 방법론을 터득하는 과정이다”라고 했습니다. 구구절절이 동감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북한 인민이 수십 년 미국의 핵무기 위협, 경제제재 압박에서 견뎌내고 특히 고난의 행군을 겪은 과정을 보면서, 지금의 북한이 거저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체제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상에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이 경이롭습니다. 특히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어떤 마음으로 극복했는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990년대 이후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했습니다. 게다가 3년간 연이은 가뭄과 홍수로 온 나라가 물에 잠겼습니다. 사회주의권이 건재했을 때는 구상무역(물물교환)을 주로 했는데, 소련이 무너진 후에 러시아는 북에게도 달러 결제를 요구했습니다. 달러가 없는 북한은 기름 한 방울도 사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기름 한 방울 없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는 잘 알 것입니다. 서방은 북녘이 곧 무너진다고 예상했습니다. 미국은 북의 체제붕괴를 노리고 최악의 제재와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 때 베트남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당시 북한은 베트남에 전투 비행사를 보내 미군 전투기를 수없이 떨구어 주었습니다. 부상당한 베트남 병사들을 평양 병원에 옮겨 극진히 치료해 주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은 그 베트남에 쌀 지원을 요청했지만 베트남 당국자들에게 외면당했습니다. 베트남정부는 몇 줌 안 되는 쌀을 주면서 ‘미국이 북한에 식량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해해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북의 외교관은 분노의 음성으로 그 쌀을 하노이에 있는 거지들에게나 주라고 하면서 그냥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때 일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게도 몹시 자존심상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베트남은 북한에게 제대로 빚을 갚을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미국은 개혁개방을 하면 도와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그 때 북 인민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개혁개방을 하라는 것은 자주와 사회주의를 포기하라는 것이며,(우리나라 IMF 사례처럼) 국제자본에게 경제를 통째로 넘겨 결국 빵도 변변히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노예의 삶을 택할 것인가, 자주의 길을 갈 것인가? 북한은 이 두 가지 길에서 자주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알다시피 자주의 길을 택한 현실은 엄혹했습니다. 굶어죽은 사람만 우리나라 통계청 분석결과 33만 명입니다.(아사설은 200-300만명) 집집마다 소나무껍질, 칡뿌리, 산나물로 겨우겨우 연명했습니다. 그러나 인민들은 지도부를 원망하기는커녕 더욱더 지도부를 중심으로 총 단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며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지금은 경제적 고도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이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미국과 회담하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고난의 행군을 비롯해서 수십 년 미국의 압박과 제재를 견디고 생존한 힘입니다. 그 힘으로 미국과의 회담도 잘 마무리해서 전쟁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까지 끌고 가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말씀을 접하면서 먼저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오늘 복음말씀의 적합한 제목은 무엇인가? 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해 새번역이 첨가한 제목을 보면,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입니다. 그래서 마태와 마가의 제자 부르시는 장면을 병행본문으로 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말씀에는 마태나 마가 병행본문에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엄청난 수의 물고기를 잡은 일입니다. 즉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고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질문은 베드로가 체험한 예수님 현존에 대해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을 낚는 게 어떻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안 좋다는 건지 하는 추가 설명이나 가치판단이 없습니다. 예수는 그냥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베드로뿐만 아니라 일행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갑니다. “사람을 낚을 것이다”에 뭐가 있길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것일까요?

그런데 오늘 복음말씀과 유사한 장면이 따로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부활예수가 어부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요한 21장 5-7절을 보면, 오늘 누가복음 5:4-6절과 비슷합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일했는데 고기를 한 마디로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지시한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잡혔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전승을 요한복음은 자신의 복음서 맨 뒤에 배치했고, 누가는 앞부분에 배치했습니다. 그런 편집방식은 성전정화 사건처럼 복음서 저자의 저술목적에 따른 것이다. (성전정화사건을 세 복음서는 예수님 생애 후반에 배치했고 요한복음은 공생애 시작점에 배치했다.) 이렇게 같은 사건이라도 복음서 저자마다 강조점이 다릅니다.

어제 밤에 설교준비를 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설교의 교훈이 우리 현실과 맞지 않아서입니다. 저녁뉴스와 페이스북에서 김용균 장례식 소식을 접하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김용균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란! 설교주제가 베드로가 체험한 예수님 현존입니다. 본문을 곧이곧대로 풀이하자면, 베드로가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호수를 떠나지 않은 결과 주님을 만났고, 예수의 지시에 순종한 결과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낚아서 인생에 큰 신비를 경험했다고. 그러므로 우리도 베드로처럼 내 자리를 굳건히 지켜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해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김용균과 이 땅의 비정규외주노동자들에게 적용하자니 혼란이 옵니다. 김용균 노동자도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밤새 홀로 용을 쓰며 자기 자리를 지킨 결과, 새 아침을 맞이하기는커녕,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기는커녕 시신이 됐습니다. 발전소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쌩쌩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에서 일하는 김용균과 외주노동자들에게는 어머니의 외침처럼, 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습니다. 정규직이 못 되더라도, 설령 백수로 지내더라도,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자본가를 상대로 끝장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투쟁한 덕에 자본의 표적이 돼서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취업도 못하고 노동운동가가 되든, 투사가 되든, 감옥을 가든, 인생이 생각지도 않은 길로 가든 간에 그래도 죽는 일보다는 백 번 나으므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밤새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게 하는 건 아무 보람도 없고 오직 자본가의 독점탐욕구조만 유지시켜 주는 셈입니다.

더 끔찍한 것은 법과 제도조차 자본의 탐욕과 노동자의 비극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부발전소에서 수년 간 12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무재해 보상금으로 480억 원을 받았습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온 돈입니까? 이 돈은 누가 챙겼습니까? 산재사고 98%가 비정규외주노동자에게만 발생합니다. 그 많은 돈은 누가 착복하고 힘없는 노동자만 죽어나가는 것인가요. 그런데도 정부는 정책방향을 끊임없이 공공기관을 사영화하는 데만 올인합니다. 악마의 구조입니다.

제 고민은 이렇습니다. 이처럼 기득권자들의 탐욕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경제구조아래에서 개인에게만 강조하는 도덕률은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서본문이 전하는 교훈이 오늘날 이 땅의 민중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자본가와 기득권자들의 불의와 탐욕을 더욱 고착화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여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요?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보람을 찾을 수 있나요? 이 탐욕구조 현실을 타파할 길은 없나요?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를 보겠습니다. 처음에 말한 대로 예수님은 이 말씀 외에 아무 말씀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네 영혼이 평안함같이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할 것이라든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든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든지, 듣는 사람에게 무언가 동기부여를 하면 좋을텐데 그냥 선언만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가타부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요? 제자들도 칠흑 같은 세상에서 대안은 이 길뿐이라는 공동의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선언에 대해 문제의식이 같기에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닐까요.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제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데, 어느 날 그냥 덜컹 운 좋게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오늘 우리처럼 자신들이 당면한 시대현실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참 사람으로 사는 길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참 세상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와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지시대로 그물을 던진 후 그물이 찢어질 지경으로 고기를 잡은 후에 예수 앞에 엎드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왜 돌연 베드로는 자기 고백을 하나요? 어부인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나게 하는 이 분은 누구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자의식이 든 것입니다. 그런 분이 무엇을 말씀한 이상, 그 말씀은 그냥 따라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낚는 일은 인생성공보장이 아닙니다. 예수 따라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마땅히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개인을 넘어 한 공동체가 함께 갈 길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김용균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오랜 세월 지나야 이룰 수 있는 노동현실을 앞당겨 실현하는 기폭제가 된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지 않고, 사람을 낚는 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렇게 된 계기가 아들의 노동현실을 제대로 알고 나서입니다. “내 아들이 이런데서 일했다니!”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통렬히 깨닫고 나서입니다. 자신의 인식과 판단을 넘어서,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십시오. 사람을 낚으십시오. 함께 사는 세상을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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