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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한 아기, 그가 메시아라는 의미
2018년 12월 26일 (수) 22:53:01 김경호 kim17kh@naver.com

2018, 강남향린교회 성탄절 메시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누가 2:10-14)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은 원래 로마황제의 탄생을 칭송하는 축문이었다. 예수 탄생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스스로 아우구스투스 황제로 등극하면서 “황제의 은덕아래 전 세계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의 시대”를 선포했다. 그리고 황제의 생일을 전 세계의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삼았다. 황제의 탄생을 일컬어 구원의 기쁜소식(복음, 유앙겔리온-문자의 뜻은 천사가 전하는 기쁜소식)이라고 했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이 세상에서 신의 대리자로 일하도록 선택되었고, 인간의 생명과 국가의 존폐를 좌우하는 존재였다. 로마의 강력한 힘은 국지적인 분쟁을 사라지게 했다. 지배당하는 나라의 신민들은 로마와 평화와 화합과 우정으로 상호친선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화합과 우정이라는 아름다운 말의 이면에는 로마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어린이나 임산부를 가릴 것 없이 행사하는 잔인한 폭력과, 충실한 세금 납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는 세금의 연체가 많은 도시를 습격해서 한 도시 인구 전체를 도륙하기도 했다. 즉, 그것은 학살과 착취 위에 세워진 평화였고, 강요된 평화, 그들이 주입한 말 외에는 입을 열수 없는 평화였다.

로마의 정치가이며 역사가였던 타키투스의 글 가운데에 다음과 같은 게 있다. 칼레도니아의 한 수령이 동료 브리튼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세계의 약탈자들, 그들은 적이 부유하면 탐욕스러워지고 적이 가난하면 지배욕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빼앗고 죽이고 수탈해 놓고 그것을 ‘제국’이라고 부르고 황무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Agricola 30, 크리스마스의 해방 66에서 재인용)

그런데 성서는 황제의 탄생에 붙여진 이 평화의 선언을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난 예수, 한 가난한 아기에게 적용한다. 이는 권력을 가진 황제의 출생만이 영광이고 평화인 것은 아니라는 선언이다.

우리가 부모가 되어 아기를 낳는다고 생각해보자. 한 겨울 밤인데, 찬바람이 들어오는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다면, 태어나는 아기에게 너무나 미안한 출산일 것이다. 게다가, 예수가 태어난 때 유대 지역은 로마의 강압적인 호구조사에 대해 반대하는 백성들의 저항과 투쟁으로 전쟁상태였다. 이 투쟁은 로마의 대규모 군대 개입을 불러일으켜 대규모 학살을 가져왔다. 그러니 아기 예수는 난리 통에, 길거리에서 낳은 아기인 것이다. 여리고 어린, 그리고 소중한 자신의 아기가 처음 맞이하는 세상이 이런 것이라면, 부모는, 어머니 마리아는 얼마나 미안하고 안타까울까.

오늘 우리는 바로 마리아와 요셉의 애달픈 마음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 앞에 서 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선언 속에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세상에 첫 발걸음을 내놓은 아기가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세상, 가장 평화로울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꿈과 희망과 믿음이 담겨 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이 말이 로마황제의 출생을 축하하던 선언이라기억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가장 난처하고 처량했던 한 아기의 출생을 축하하는 말로 여긴다. 힘 있는 자들이 위에서 한 선포는 그 권력자의 힘이 꺾어지면 사라진다. 하지만 진실의 고백은 2,000년을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힘없는 이들이 아래로부터 희망과 진심을 담아 세상에 내놓았던 고백은 사라지지 않는다.

참 평화는 민중의 피와 땀 위에 군림하는 ‘로마의 평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이 누리는 희망 가운데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기 그들이 처한 어려움, 그들 자신들이 처한 모순들을 극복해줄 구원자를 기다렸다. 이 구원행위의 대리자는 “온 백성의 왕”, “메시아”이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대나 시베리아나 한반도나 시골이나 서울이나- 아기들은 계속 세상에 온다. 헤롯이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살해한 것은 새로운 메시아의 탄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이 세상에 오는 아기들을 자기들의 정치적 상황, 어른들의 욕망을 위한 한 부품처럼 생각한다. 부모가 그려 놓은 배경 그림에 한 점처럼 아기가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부모의 부와 특권이 아기에게 물려지기도 하지만 부모의 가난, 부모의 업보가 자식에게 이어지기도 한다. 부모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념이나 생각, 문화를 주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한 아기가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신앙은 그 아기에게 자신이 자라나고 활동해나갈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부모의 세계가 세워 논 한계들을 새 생명에게 주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아기가 태어날 때는 저마다 자기의 세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아기는 저마다 자기의 우주를 창조하는 주체이다.

그 아기가 금 수저를 물고 나와 할아버지 벌 되는 운전기사에 막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차라리 흑수저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만 못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흑수저로 태어나서 아무 것도 펼칠 수 없게 하고, 태어나자마자 삶의 막장으로 몰고 가게 하는 것도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기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한계 지워진 범주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아기들을 어른들이 가진 틀 안에 가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기는 전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에 세계에서 자신이 만들어갈 세상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을 물려주더라도 그 아기가 스스로 자기의 세상으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부모가 가진 세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이어가는 것이 미덕인 세대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창조적인 가능성을 향해 열린 세계로 다가가는 현대사회는 전 세계가 하나의 공간 안에 있다. 시간적인 제한도 없다.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을 것이다. 부모가 가진 이데올로기, 부모시대의 사고, 부모의 종교, 부모의 습관을 자식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아기를 어른들의 세계에 가두는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주체이며, 창조의 아들, 구원의 딸, 새로운 바람의 아기들이다. 새로운 생명들이 주인이 되어 새롭게 이루어가는 세상만이 낡은 세대를 개혁하고 앞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

한 아기가 부모의 세상을 초월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부모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서는 한 생명의 뿌리에 대해서 말한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 예수는 “나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었다”(요한 8,58-59)고 말해서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은 구약 성경의 뿌리를 두고 있다.

   
▲ 글쓴이 김경호님은 현재 강남향린교회 담임목회자 이다.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낫다..........
나는 그 분의 곁에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 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잠언 8,22-31).

하나님은 까마득한 태초 이전부터 나를 예비하셨고 당신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오늘 이 시간 ‘나’라는 형상을 하고 한반도에 나타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이미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고, 이미 우주에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우주라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의 한 조각처럼, 각자 고유한 색깔과 역할을 지닌 한 조각이면서 큰 그림 중 하나로 세상에 온다.

모든 인간은, 그리고 생명은 복사품이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수없는 생명들이 왔다 갔지만 그 중에 아무도 동일한 존재는 없다. 창조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지 하나 뿐인 독특한 존재로, 성서의 고백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직접 옹기장이가 손으로 빚듯이 빚어 만들어 이 세상에 보내신 존재라는 것이다.

세 살짜리 어린이건 고희가 넘으신 할아버지이건 그들은 이미 까마득한 시간을 함께 지내다가 우리 시대에 함께 태어난, 동시대에 던져진 동지적 존재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들의 나이에다가 태초로부터 나이를 보태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한 인간, 한 아이를 보는 인간의 깊이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인권의 깊이와 그의 인간적 가치의 깊이는 태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주의 경륜의 깊이와 같다.

그러기에 비록 자기 자식이라 하더라도, 이 어린아이는 나에게 유래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대에 조금씩의 시차를 달리하기는 하겠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같이 책임지는 동역자이다. 나와 내 아이는 몸으로 아버지 아들,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를 하고 있으나, 사실은 태초부터 예비되었고 오늘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도록 예비하신 존재이다. 동시에 하나님에게 뿌리를 둔 존재이다.

그렇게 이 세상 한아기 한 아기들이 태어나고, 그들은 모두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주인이며 메시아들이다. 그러기에 지나간 기성세대는 존절한 경외감을 가지고 아기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기묘라 모사라 전능의 왕, 만유의 주들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자신의 세계를 힘껏 펼쳐갈 때 우리들의 새로운 미래는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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