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8.12.12 수 11:38
> 뉴스 > 시사/논평 > 칼럼 | 박철(愚燈)의 ‘생명 평화 정의 이웃사랑’
     
러시아 여행을 다녀와서
모든 인연들은 하느님 내게 보내주신 사람들
2018년 11월 20일 (화) 09:27:31 박철 pakchol@empas.com

지난 10월 18일부터 11월 12일까지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종주여행은 내게 꿈같은 여행이었다. 매 순간 차창 밖으로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은 여행 내내 울 내외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다.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 양쪽 편에 펼쳐진 눈 덮인 산야와 바이칼 호수 전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글쓴이 박철님은 현) 좁은길교회 담임목사, 사진은 러시아 여행중 박철님이 김주숙님과 함께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많은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이다. 죽기 전에 꼭 타보아야 할 열차라고 한다.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다. 그런데 막상 열차를 타보면 기대 밖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열차 안이 매우 협소하고 불편하다.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 열차가 섰다고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다. 자유가 없다. 감옥이다.

한마디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로망과 감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비좁고 불편함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면 자유가 된다. 대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불편함을 즐기게 된다. 아내 김주숙 선생은 열차 안에서의 생활이 제일 편했다고 고백한다.

여행이란 익숙함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내게 여행은 나를 벗어나고 생각을 벗어나고 자발적으로 안락함을 떠나 경계를 넘는 즐거움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먹고, 불편과 수고를 감당하지 않으려면 집이 최고이다. 스스로 불편을 택하고, 사서 하는 고생이며 그 고생 자체가 보상이다.

여행 내내 낯선 도시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또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를 물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지금 이 낯선 나라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군인가를 확인했다. 답은 분명했다. 나라는 존재는 나를 이땅에 보내신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주 모스크바 클레믈린궁전 붉은 광장 앞에 서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바실리성당을 보았다. 러시아 도시마다 촌락마다 아름다운 정교회 성당의 이콘과 벽화를 보면서 감탄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성을 다하여 신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으면 그런 공을 들였을까? 러시아 곳곳에 산재해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오색찬란한 이콘과 벽화를 보면서 바로 이 장면 하나만 본 것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종교의 유산을 감상하며 감탄하고 감격하면서도 내 안의 분열,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작은 차이나 갈등도 해소하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심한 자책이 들었다. 나의 스승 예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시고, 또 수많은 구도자들은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봉헌했건만, 정작 나는 무엇을 했는가?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한번은 클레믈린궁전 옆 어느 작은 성당에서 있었던 미사에 잠깐 참관하고 나오는 중이었는데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걸레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둔기에 심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지난주일 전철을 타고 노보데비치수도원으로 갔다. 표를 안 끊고 경내만 둘러볼까하다가 표를 끊고 성당에 들어갔다. 마침 미사 중이었다. 실내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반주 없이 Orthodox Chant를 부르는데 그 하모니가 마치 천상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깊은 울림과 감동이 전해져왔다. 아내 김주숙 선생은 얼마나 감격했는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여행 마지막 날, 집에 가고도 싶고 지쳐있는 우리 내외에게 주신 하느님의 위로의 선물이었다.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 박효섭 목사님 생각을 많이 했다. 박효섭 목사님은 감리교 목사님이면서도 정교회 영성에 깊이 심취해 계신 분이다. 은퇴하시기 전까지 정교회 영성을 목표로 하는 수도원을 거제도에서 일구어 제자들을 육성하기도 하셨다.

불행하게 올 3월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 요양병원에서 투병중이시다. 박효섭 목사님은 건강하셨을 때 내게 당신의 마지막 소원이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보는 것이고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둘러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신 박효섭 목사님은 지금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시고 그 말씀을 들은 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종주여행을 하고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둘러보고 왔다. 참 마음이 아팠다.

러시아는 한마디로 정교회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여행은 정교회 여행이라 할 수 있고, 순례여행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러시아 정교회 성당만 탐방하는 순례여행을 하고 싶다.

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의 생은 여행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의 삶도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는 30세 나이에 출가하셔서 공생애라는 여행길에 드셨다. 예수께서 매일 하신 일 가운데 하나가 길을 걷는 것이었다. 길을 가다가 특정한 장소에 머무시다가 다시 길을 가셨다. 예수의 설교 가운데 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우리 좁은길교회도 그런 배경위에 세워졌다. 예수 자신이 가셨던 그 길에서 인류구원과 하느님나라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치셨다.

예수도 그의 제자도 다 구도자로서 하느님께로 향해 길을 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미 개인이면서 보편자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하느님과 같이 있게 되었다. 하느님의 길을 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그들 자신에게만 멈춰 있어,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묻고 있었다.

예수는 이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제자들은 지금 길을 묻고, 진리를 찾고, 생명을 갈구하고 있다. 예수가 알고 믿는 바에 의하면, 제자들 역시 그들이 길로 들어서고, 진리 속에 있고, 생명을 가지고 산다면 지금 예수 그 자신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었다. 길은 언제나 부단히 물어질 것이다. 길을 묻는 자는 길을 잘 물어야 한다. 길이 잘못 안내되면 그의 평생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정작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낯선 나라에 와서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도 아니고, 낯선 거리를 걷는 것도 아니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이국적인 낭만에 도취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내 김주숙 선생이 고단한 여행길에도 계속해서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소풍가는 소녀처럼 여행을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볼 때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내와 더욱 깊이 밀착되었고 신뢰하게 되었다.

지금 계절은 늦가을 만추(晩秋)이다. 단풍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계절. 미세먼지도 없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길을 걷다보면 그 아름다운 풍경에 저절로 경탄과 감사가 나온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이야말로 오는 우리가 지녀야할 삶의 태도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40대에 막 진입할 무렵 ‘길’이라는 시를 지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내 마음에 속내를 다 들어 내놓고
신에게 가장 솔직해 지는 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
한번도 가지 않은 낯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신이 보낸 사람이 틀림없다.

나는 이번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 낯선 도시,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그 모든 인연들은 모든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사람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바라기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나의 남은 생애가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박철의 다른기사 보기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우리 생태공동체마을에서 살아볼까
광풍의 도시
돌아오라 녀석아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다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햇빛이 전하는 그린 크리스마스
슈퍼 베이비(Super Baby)와
거룩한 순례, 동행의 기쁨
어둠이 땅을 덮었다
어둠의 사람들은 그에게로 갔다
정의와 진실구현 역사 바로 알기가...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고 또 모르는 것 투성이다. 나철과...
내 직업 내가 만든다
인류, '호모 데우스'를 꿈꾸다
한국교회 지붕 햇빛발전소 설치를 ...
9월 3일(월) 오후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포천 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산...
온생명살림 기행팀과 함께 평화나무 농장을 방문한 내용을 정리하...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