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곧 사랑입니다.
히브리서 9장 11~14절, 마가복음 12장 28~34절
◾ 유월절과 새로운 방식
히브리인들에게는 유월절이 가장 큰 명절이었습니다. 유월절은 히브리인들이 바로의 노예로 살아갈 때 있었던 해방사건의 핵심입니다. 430년을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해방을 고대하며 고통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늘 그러셨던 것처럼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로 강림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광경을 보고자 올라갔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라는 계시를 받고 이집트로 돌아옵니다. 히브리인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백성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모세는 그 여세를 몰아 바로에게 가서 광야로 3일 길을 걸어 하나님께 제사지낼 수 있게 해달로 요구합니다. 그 내막은 해방이었습니다. 바로는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이집트 전역에 내립니다. 강물이 핏빛이 되게 하는 등 개구리 소동, 파리 소동, 이 소동, 집짐승의 죽음, 피부병 소동, 우박, 메뚜기 재앙, 어두움 소동 등, 놀라운 재앙이 내려 엄청난 고통을 당하지만 바로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졌고 열 번째 재앙이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의 첫배가 죽임당하는 재앙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겐 재앙을 피할 특별한 방안이 제시되었습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재앙이 그 집을 넘어 죽임을 면한다는 것입니다. 설화 같은 이야기가 히브리인들에게 전달되었고 히브리인들은 죽음의 재앙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유월은 넘는다는 의미이며 죽음의 재앙이 넘어 생명을 얻었다는 구원사건으로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심판에서 구원받고 죽음에서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제국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유인이 되고, 제국과 맞장을 떠서 승리한 날입니다. 이집트 방식의 삶을 거절하고 제국의 질서를 거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질서, 약한 존재가 중심인 새로운 질서의 시작입니다. 노예가 주인이 되는 질서의 전복, 삶의 전환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신앙입니다. 단순히 죽임에서 살아남은 사건이 아니라 죽임의 질서, 죽임의 문화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문명, 생명의 질서로 전환된 혁명적 사건입니다.

◾ 추수감사절
유목민의 삶은 소유와 축적이 불가능한 삶이었습니다.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운영하고 공동으로 생활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정착하면서 농경문화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절대적으로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날씨를 주관하시고 곡식을 여물게 해야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농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가을걷이를 마치면 곡식 단을 쌓고 추수의 기쁨으로 감사제를 올렸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소유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땅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심지어는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고 고리대금이 성행하였습니다. 소유로 인해 평등한 삶은 깨어지고 계급이 형성되며 차별이 생겨났습니다. 결국 제국의 질서가 부활하고 노예적 삶이 다시 재현되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모든 소유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명확히 합니다. 감사절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는 절기입니다.
오늘은 2018년 추수감사절입니다. 한 해 동안 정말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작년 이 맘 때만 해도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발사를 하는 등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갈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미국은 초강경 대응으로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선재 타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만해도 한반도는 일촉즉발 전시 상태였습니다. 한반도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그야말로 어두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올 해 들어 북한은 대화로 선회하였고 김정은 위원장은 연두 기자회견을 통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제안함으로 남북대화가 뜨겁게 달궈졌습니다. 특히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한 남북 고위급 왕래와 문화사절단 교류, 이어진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숨 막히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편의 대하드라마였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고 감격스런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대결과 폭력의 문화에서 화해와 평화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군비경쟁에서 무장해제로, 서로에 대한 겁박과 비난에서 상호존중과 안정, 상생으로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 남북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
지난 9.19 평양선언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의 일환으로 남북 군 당국이 땅과 바다, 하늘에서 상대를 겨냥했던 적대행위를 1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모두 멈췄습니다. 판문점 내에서도 비무장이 시작된 이후 군사 합의가 차근차근 이행되고 있습니다. 판문점을 공동 개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할 예정이어서 금단의 땅이 세계 평화의 시작이 되는 원점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간 70년 분단 체제에서 남과 북 군당국은 상대를 표적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군사훈련을 실시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한미군사훈련 중단 및 유예 등 한반도 화해 무드를 타고 적대행위를 멈추고 실질적 군축을 단행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국방부는 동·서해 완충구역에 함포·해안포의 포구·포신 덮개를 제작해 설치했고, 연평도와 백령도 등에 있는 해안포의 포문을 닫았다고 밝혔습니다. 남북은 군사분계선 동·서부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안에서는 고정익항공기의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전시작전권 환수도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미군의 통제를 받아야하던 국군이 미군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처음이라니 유의미한 일입니다.
남북관계가 평화의 무드를 타고 진전되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바라기는 화해와 평화,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며 동아시아가 살 길이며 인류가 평화롭게 살 길이기도 합니다. 온 세계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고 응원해야합니다.
◾ 아름다운 동행
가끔은 같이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저에겐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마지막까지 여러분의 옆을 지켜줄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제 아내가 그런 사람이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일과 제1성서는 룻기 1장의 말씀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의 아름다운 동행 이야기입니다. 타향살이하던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게 됩니다. 큰 슬픔에 빠진 나오미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며느리들에게 자유를 줍니다. 큰 며느리는 제 길로 돌아가지만 룻은 가기를 거절하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동행할 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룻은 나오미의 나라를 자신의 조국으로 나오미의 고향을 자신의 고향으로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기로 결단합니다. 시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신이 죽을 것임을 천명함으로 시어머니 나오미와 끝까지 동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시어머니의 방식으로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 중심엔 하나님 신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며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이란 전체를 걸고 나서는 길입니다. 신앙은 취미생활이나 여가가 아닙니다. 내가 심심할 때 적당히 함께 동행을 얻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내 전 생을 걸고 갈 길이며 설레임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지만 룻 때문에 큰 위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길을 따릅니다.
물질 중심적 삶이 아니라 영성적 삶으로, 참 사람의 길로, 성공 지향적 삶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 지향적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잘나고 똑똑한 자들이 이끄는 세계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의 실현을 위해 사는 삶의 방식입니다. 자신의 행복과 출세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의 성공과 출세를 지원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언제나 그의 촉수는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의 신음소리에 가 있습니다.
◾ 세월호 유가족들과 동행
지난 11월 1일 저녁 7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벌써 해결되어야 할 진상 규명이 4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어느 하나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세월호에서 진실규명은 가장 우선적인 일이며 전부이기도 합니다.
당일 일기 상으로 안개가 많아 출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왜 세월호만 무리하게 출항을 했는지? 누가 출항을 명령했는지? 하루 전에 규정을 어기고 배가 세월호로 바뀌었는지? 사고 당시 쿵 하는 소리는 무엇이었는지? 급변침은 왜 일어난 것인지? 닻은 왜 없었는지? 선장은 도망가면서도 왜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가만있으라는 방송은 누가 했는지? 헬기, 구명정, 어선들이 주변에 있었음에도 왜 구하지 못하게 했는지? 모두 살릴 수 있었는데 왜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방송은 왜 전원구조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었는지? 그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탑승할 때도 사고 당시에도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왜 그 배에 있었는지? 마지막 퇴선을 하며 선장이 통화한 국정원 직원은 누구였으며 무슨 대화를 했는지?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인지? 자식이 죽어 울부짖는 유가족을 범죄자로 몬 언론과 수구세력의 배후는 누구인지? 한국당은 세월호 1기 특조위를 왜 전방위적으로 방해했는지? 음해한 자들의 배후세력은 누구인지?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소한 자들은 누구인지? 의문이 가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촛불 기도회에 유가족 대표로 나와 증언대에 선 예은이 엄마는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이 될 거라고 믿었던 교회가 자신들을 가장 힘들게 했다며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다니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304명 중에 80여명이 기독교 신도인 것으로 밝혀졌고 안산에 있는 36개 교회에 흩어져 다녔습니다. 하지만 진상규명운동에 동참한 교회는 2개 교회가 전부였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보수 교회들처럼 교통사고인데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경제도 어려운데 그만하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세월호 사건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목사도 있어 유가족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의지했던 교회의 배반과 신앙의 회의는 유가족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거리에서 단식 장에서 자신들의 곁을 지켜주는 또 다른 기독교인들이 있어 다행이었고 그분들 때문에 다시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야 말로 하나님이었고 예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2기 특조위에선 의문이 된 모든 것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자를 밝혀내어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게 해서는 안 되며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영혼의 키가 쑥 자란 유가족들의 마음과 신앙에 감사했습니다.
◾ 강제 징용 판결
"징용피해자들은 강제노역을 했으며 과정은 혹독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지난 2015년, 일본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머리를 깊이 숙여 사과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첫 공식 사과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900여 명의 '미국인' 피해자들을 향한 사과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또 다른 피해국에도 사과했습니다. "인권을 침해하고 노동을 강요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일본 기업의 보상액으로는 전후 최대 규모로 그들은 피해자 3700여 명에게 사죄금을 지급하면서 "통절한 반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중국인' 피해자들을 향한 사과일 뿐이었습니다. 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를 태운 전투기, 제로센을 비롯해서 각종 군함과 어뢰 등 폭발물을 대거 납품했던 기업, 그곳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징용피해자는 약 10만여 명입니다.
"황국신민의 영예로운 산업전사"라는 호칭이 붙었지만 그들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의 노동자였습니다. '반도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신축하라' 즉, 조선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2m 넘는 철조망을 설치했다는 일본 전범기업들의 자료는 그들이 강제로 끌려간 것임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지만. 그 기업들은 우리에게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13년하고도 8개월을 끌어온 강제징용 재판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명료했습니다. 결론이 늦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큰일 나겠다. 합리적으로 잘 대처하라" 피해자들보다 한·일 관계를 먼저 걱정했다는 탄핵된 전직 대통령과, 정부와 거래하기 위해 재판을 고의적으로 미뤘다는 의혹을 받는 우리의 대법원. "오늘 나 혼자 나와서 마음이 슬프고 눈물이 많이 납니다." 이춘식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아흔을 훌쩍 넘겨 홀로 남은 피해자의 슬픔은 누구도 아닌 자신의 조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 전쟁포로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중국과 미국에는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우리에겐 사과하지 않은 일본의 전범기업들. 그들을 당당하게 만들어준 것은 누구도 아닌 피해자들의 조국이었고 당시의 위정자들 역시 아직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
◾ 가장 아름다운 일
오늘 서신서 성서일과는 히브리서 9장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당신을 추구하도록 지으셨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중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하였습니다. 즉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질서에 의해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에서 멀어진 인간의 삶은 탐욕과 거짓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등지고 타락의 길을 걸었고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드님은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이렇게 엄청난 사랑과 거룩한 희생을 치루고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다른 종교와 확연히 다른 길입니다.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길은 고독하고 힘들고 아픈 길이었습니다. 전부를 바치고도 조소와 비난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심판은 미루어지고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어주어서 내가 살아났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예수가 대신 죽어주었다는 것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저 대신 죽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목숨을 내어 줄 만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린 누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줄 만큼 사랑하며 살아하고 있습니까?
◾ 사랑의 길에서 만난 감사
그렇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감사 그것은 믿음이고 감사 그것은 사랑이라고 노래합니다. 감사하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내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가을에 우린 내가 누구인지? 내 주인이 누구인지? 묻고 또 물어야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성서일과는 마가복음 12장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히브리인들의 법전입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온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율법의 중심 메시지를 두 개의 말씀으로 일갈합니다. 그 두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내 몸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 율법의 전부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세상을 섭리하는 본질적 질서입니다. 세상은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정언 명령처럼 사랑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자식이 어미를 사랑하는 것도 남녀가 눈이 맞아 사랑하는 것도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데 너무나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낸 사랑의 질서입니다. 사랑으로 세상은 유지되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 양심적 병역 거부
종교적 양심으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단 종파라고 무심히 넘어가기엔 너무 강렬한 사람들입니다. 집총을 거부하는 것 때문에 군대 감옥에서 복무기간을 채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죽이고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을 이단이라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집총을 거부하는 것을 보는 기독교도들은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단합을 헤치는 자들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기독교도들이라면 집총을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군복무를 거부해야 합니다. 전쟁으로 평화를 지켜지지 않습니다. 우린 지난 100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1,2차 세계 대전, 6.25전쟁, 팔레스타인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만 전쟁,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내전 등 전쟁으로 죽임당한 사람만 1억명이 이르고 있습니다. 한 시대의 문명이 다 붕괴될 정도로 거대한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전쟁이 낳은 결과입니다. 전쟁은 세계가 공인한 가공할만한 폭력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평화의 하나님은 전쟁을 반대하십니다.
◾ 초대하기
지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너무 큽니다.
특히 남북 관계의 전환과 한반도의 평화의 바람을 불게 해 주신 은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가재울녹색교회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소박하지만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왔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창성이네가 우리 식구가 된 것은 더 없이 기쁜 일이었습니다. 우리교회를 더 즐겁고 아름답게 해 주신 혜성이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혜인이 자매의 혼인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이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어르신들 건강에 큰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지역 아동센터도 성심을 다해 섬겼고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 정성이 아이들의 영혼의 키를 키우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서대문 녹색마을도 여러 일들을 잘 소화하였습니다. 함께 하신 교우들 덕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린 마을을 섬기고 더 멋진 마을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리교회개혁을 위한 활동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햇빛발전소 협동조합을 만든 것은 큰 성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감리교회 선교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살기도 10주년으로 정말 바쁘고 벅찬 일들이 많았지만 잘 진행해왔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장이 많지만 또한 여러 현장이 해결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고속철도 여승무원 복직 합의, 쌍용차 노동자 복직 합의는 소중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형제 교회인 강남향린교회 성천 침탈 문제가 잘 해결된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감사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