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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월이다
전태일은 지금도 덩이 굴리고 있어
2018년 11월 02일 (금) 10:38:20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시인 오세영을 11월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혁명을 일으키는 마음으로 촛불을 든 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사회도 크게 바뀌어 혁명이 완성되기를 기대했으나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남북문제 등 한반도 평화는 큰 진전이 있고 적폐청산도 일부 진척이 있으나 재벌이나 사법부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등 노동기본권이나 민중의 삶에 있어서는 여전히 절벽 앞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적폐의 뿌리를 어떻게 뽑아내야 할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깊이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을 통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그의 인간성을 풍성하게 하는 과정은 곧 좁은 자아의 환상을 버리고, 그 껍데기를 깨고, 자신과 이웃과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나오는 과정을 뜻한다. 참된 소망, 참된 사랑, 참으로 순수한 그리움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전태일에게는 참으로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나라였다. 약한 자도, 강한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든 구별이 없는 평등한 인간들의 ‘서로 간의 사랑이라는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 ‘덩어리가 없기 때문에 부스러기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 그것을 그는 바랐다.” 우리가 2년 전 촛불을 처음 들고 나설 때부터 우리의 속마음은 이랬던 것 같습니다.

1948년에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은 이런 문제를 구체화하여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정하고 상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사회보장 방법으로써 보충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여기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3조 3.4항)”

11월이면 또다시 우리 가까이 다가오는 전태일의 외침이 들립니다. “(앞부분 생략)그대들의 전태일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글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1970년 8월 9일 일기)

전태일이 분신항거하기 세 달 전 청옥 고등공민학교 때 친구인 원섭에게 쓴 편지글 형태의 유서 내용입니다. ‘굴리다 못 굴린 덩이’를 ‘그대들에게 맡기고’ 죽은 후에도 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덩이를 계속 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의 일부인 나’ 전태일은 지금도 덩이를 굴리고 있습니다. ‘덩이’란 무엇입니까? 그의 삶 전체로 추구했고 죽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평등 . 자유 . 정의의 ‘인간해방’입니다. 또한 전태일에게 있어서 인간해방이란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서 ‘구애받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자본(돈)과 (국가)권력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욕심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나 집단적 욕망을 폭력으로 합목적화하는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은 인간적 삶이 아니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시 11월입니다. 우리는 전태일을 다시 한 번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전태일이 바라고 전태일이 원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이 죽어서도 굴리려고 한 그 ‘덩이’가 지금 우리가 굴리는 ‘덩이’가 돼야 할 것입니다.

오세영의 시 <11월>은 이렇게 끝납니다.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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