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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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 박철
  • 승인 2018.10.1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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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고요했을 때 바람 어디 있었는가?

40대를 막 시작할 무렵, 나의 첫 시집 <어느 자유인의 고백>이 세상에 나왔다. 그때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시를 공부한다는 핑계로 민족작가회의 사무실을 뻔질나게 들락날락거렸다. 그런데 시라는 것이 공부 한다고 되는 것이겠는가. 달콤했던 시가 별안간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를 접었다. 그때 생각이 나이 50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를 써보자 그런 생각을 했다. 50이 지났고 60이 지났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시란 산문과 달리 치열함과 폭발이 있어야 한다. 치열함은 있는데 폭발이 잘 안 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며 타임을 노리고 있을 뿐이다.

조용미 시인의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를 곱씹어 읽으며 시의 초반부에 이미 대규모 폭발을 일으킨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폭발해버린 시는 사정한 남성의 성기처럼 급격하게 혹은 절정에 오른 여성의 그것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마음속으로 사위어들기 마련인데, 이 시는 폭발 뒤 폭발의 정경들을 묘사한다. 사정한 뒤에 애무를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시인은 끝끝내 바람의 진원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바람이 폭발하는 광경들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상상하고 짐작하게 만들 뿐이다. 나무들조차 바람의 편을 들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려는 그 순간을... 아찔한 후폭풍에 휩쓸려 그 나무 아래에서 숨이 멎을 것 같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조용미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키 큰 소나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무들조차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때 폭풍은 나무의 편이다
나무들은 폭풍의 힘을 빌려 내게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속이 울렁인다 저 나무들의 혼이 들어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머리칼에 바람이 갈가리 찢긴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와
약한 나무들의 혼을 찾아 멀리 달려가고 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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