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이르는 길
욥기 23장 1~ 9절, 마가복음 10장 17~31절
◾ 출애굽
구약성서의 기반은 창조 이야기와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는 유대인들만의 전통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조물주가 세상을 지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다른 민족의 창조 이야기와는 많이 달았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신들이 인간을 자신의 종으로 지었다고 본 반면에 창세기의 창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어냅니다. 이는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지었다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노예로 팔려간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자존감을 지켜가며 해방을 꿈꾸었다는 것은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매력입니다.

또 하나의 기반은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500여년을 노예로 살아왔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제국을 상대로 싸워 해방을 얻었다는 출애굽 이야기는 언제 읽고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 이야기는 하나님이 비인간화시키는 모든 압제와 폭력에서 인간을 해방하시는 분으로 자유를 선포하신 분으로 고백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제국의 세력을 분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독제도 독점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하시며 그 권리를 빼앗는 행위를 하나님에 대한 반역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세력과 싸우십니다.
요즘 교회에서 출애굽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더 이상 기존교회엔 희망이 없으니 새로운 교회로 과감히 출애굽하라는 말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물신에 사로잡혀 제국의 종교가 되었으니 빨리 교회로부터 출애굽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화요일 mbc pd 수첩에서 명성교회 사태를 다루었습니다. 이를 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 장로는 기독교 역사 이래 이렇게 돈을 좋아한 적이 없었고 이렇게 타락한 적은 없었다며 개탄하셨고 이런 기독교는 빨리 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교도 명이 있으면 암도 있습니다. 부패하고 썩은 것은 인정하되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불안과 위험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 아산예수살기
지난 12일, 아산예수살기 모임이 온양에서 있었습니다. 10여명이 모인 작은 자리였지만 한분 한분이 참 소중한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안상환 장로가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고 믿음직하고 충직한 장로로 교회를 섬겼다 들었습니다. 그는 노동자로 민주노총에 가입하여 노동투쟁도 치열하게 하신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충남 노사민정 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잠시 뵈었는데도 단단하고 차분한 모습이 그의 신심과 삶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4년 전부터 교회를 졸업했다고 하였습니다. 아니 교회로부터 출애굽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교회에선 더 이상 예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목사의 설교에서도 성도들의 삶에서도 예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교회에서 구원을 말하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서 그가 예수를 정말로 사랑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가 예수살기 모임에 찾아온 것도 이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10여명 중에 놀랍게도 4명이나 가나안 신도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교인이 늘어나 현재 2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안 장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사님 한 분이 자기도 기존 교회에서 출애굽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전에 목회는 말도 안 되는 말로 교인들을 속여 왔는데 기존 교회를 벗어나보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교인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그는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월급을 받지 않으니 자유롭다고 했습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자유롭게 설교하고 자유롭게 모임을 갖고 있다며 참 좋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교회의 형태들이 예수의 진정성을 찾아 나서는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부재
목사도 장로도 평신도도 기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를 하나님의 부재로 꼽았습니다. 기존 교회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예수가 떠났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요?
오늘 구약의 성서일과는 욥기 23장의 말씀입니다. 욥은 부당한 고통으로 인해 친구로부터 억지 고발을 당합니다. 당시 고통은 하나님의 진노로 보았기 때문에 욥이 당하는 고통도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말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자신의 결백을 말하리라고 길을 나서지만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욥의 하나님 부재 체험입니다. 목숨을 바쳐 믿어온 하나님의 부재는 욥으로 하여금 크게 낙담하게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어디를 가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인정해주고 증언해줄 하나님의 부재는 욥의 존재 기반을 붕괴시켰고 희망을 봉쇄시켰습니다. 욥에게 찾아온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의 부재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나니,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온다”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역설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현존을 고백합니다.
◾ 하나님의 현존
역사적으로 하나님 부재 사건은 참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입니다. 이는 전 세계인이 경험한 하나님 부재 사건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어 온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이 독가스실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육체는 물론 의식의 죽임, 영혼의 죽임을 당하며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기독인들도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악랄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죽임 당하는 데도 구경만 하시는 무능력한 하나님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인류를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한 동안 인류는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지식인들도 영성가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라고 물으며 이제 하나님의 죽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랍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는 독가스실에서 아이들과 죽어가고 있다고.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임당하고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부재 경험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찾아서 선포한 것입니다. 인간이 차마 인간이기를 거부한 거대한 고통의 사건 앞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현존을 찾아야만 했고 마침내 찾았던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무능력한 죽임당하는 하나님을 찾아냈습니다. 하나님의 현존만이 그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 재물과 하나님 나라
오늘 복음서의 성서일과는 마가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0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는데 청년이 달려와서 예수에게 무릎을 꿇고 물었습니다.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사람은 영생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영생은 생명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상통합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로마 제국과 상치되는 개념으로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제가 어릴 때부터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고 고백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야했습니다.
그래도 기특했는지 예수께서는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면 네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부자인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 청년이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시고 세상의 지배체제 하에 붙들려 있음을 보시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하지만 강력하게 도전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는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다른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인 맘몬의 세계관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의미도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예수의 방식대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예수는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이 말씀은 당신의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당신이 세우려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지배체제와는 전혀 다른 섬김과 나눔으로 세워지는 나라라는 선포입니다. 부자는 욕망의 노예가 된 세상 지배체제에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당시 지배체제와 세상의 가치관의 성공의 결과물인 재물로는 하나님 나라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세속적 가치체제로는 갈 수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죽어서 천당에 들어가고 살아서는 더 많은 부를 얻으려는 것을 꼬집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는 이미 세상의 지배체제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치 체제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진심으로 섬기는 일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확신할 때 가능합니다. 나눔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여길 때 당연히 세상의 유익을 위해 나누게 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 원숭이 사냥
정글에서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원숭이의 손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주둥이가 좁은 병에 바나나를 넣어 끈으로 묶어 놓으면 원숭이가 와선 좁은 병 주둥이에 손을 넣고 바나나를 쥐곤 꺼내려고 하지만 병 주둥아리가 너무 좁아 손을 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바나나를 손에서 놓으면 손을 꺼낼 수 있지만 바나나에 대한 욕심 때문에 손을 놓지 않기에 사냥꾼이 와서 잡는 데도 난리를 떨지만 손을 놓지 않다가 잡힌다고 합니다. 그렇게 원숭이를 사냥합니다.
자신이 붙잡히는 데도 손을 놓지 않는 원숭이와 같은 삶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소유를 지향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내 집, 내 자식, 내 가족이 전부인 양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예수는 소유 지향적 삶을 거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내 형제요 내 어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곤 존재 지향적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존재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을 존중하고 이웃을 존중하고 섬기며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삶에로 초대하십니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한 삶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생명에 이르는 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하나님의 현존을 믿고 세상의 지배체제인 물량주의를 거부하고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 나누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여삐 여기시고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끝끝내 버리지 않으시고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 삶의 전복
하나님 나라는 그냥 손 놓고 가만히 않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친 사람들, 기꺼이 자신의 목숨도 내어 놓은 사람들에서 시작됩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지가 첫째가 된다는 말씀은 혁명을 통한 전복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마침내 세상의 우뚝 서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 해방된 세상에서 역사의 주체로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제주해군기지 관함식
지난 11일 국제 관함식이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서 있었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 온 예수살기와 평화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은 관함식을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당장 해군기지를 철수하고 민간항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문대통령이 참여하여 “해군기지를 평화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해 귀를 의심했습니다. 문대통령은 관함식을 마치고 지역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주민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오랜 투쟁으로 평화의 섬을 지켜온 활동가들은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을 이간질 시켰습니다. 문대통령의 편향적 대처와 안일한 인식에 우리들은 분노했습니다.
국제 관함식은 평양선언에도 상치하는 행위입니다.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헌데 관함식엔 미핵항공모함도 입항하며 해상 화력을 집중시킴으로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을 고조시켰습니다. 이는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제주’와도 충돌합니다. 무엇보다 국제관함식은 제주해군기지 때문에 11년째 고통을 겪고 있는 강정주민들의 피눈물을 전면 무시하는 폭거이기도 합니다. 예수살기는 단호히 반대하며 문대통령의 전향적인 대처를 요구합니다.
◾ 승인과 식민지
트럼프의 부적절한 말로 시비가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10일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다‘는 기자 질문에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걸 안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답했습니다. ‘승인’은 주권을 지닌 국가 간에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과거 식민지나 속국에 대해서나 쓰던 말입니다. 이는 마치 미국이 대한민국을 식미지로 취급하는 발언이어서 호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유일하게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한미동맹은 미국의 일방적 지시에 좌우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며 ”승인(approval)이라는 표현 수위는 주권국가이자 동맹국인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대표는 “5.24 조치는 유엔(UN) 제재와 무관한 우리 정부의 독자 제재이고, 따라서 제재의 지속 여부는 우리가 결정할 영역의 일”이라며 ”우리 정부는 당연히 독립적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미국과 의논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짚었습니다. 이 대표는 ”남·북·미 삼자는 이제는 말 그대로 공동운명체”라며 ”미국 정부는 동맹의 일원이자 평화의 동반자를 무시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거두고, 평화와 협력의 세계로 성큼성큼 앞장서길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 도반
도반은 도려(徒侶), 도우(道友), 도구(道舊), 동행(同行) 등과도 같은 말로 쓰이며, 더욱 친근한 말로는 벗, 친구, 선우, 동무, 회원, 동기 등으로도 넓게 쓰입니다. 그러나 도반은 단순히 기쁨과 슬픔, 고통과 좌절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고 함께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답고 있습니다. 미국은 승인 발언을 사과하고 한미관계가 도반의 관계로 재구성되길 기대합니다.
'도반'
이성선
벽에 걸어 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모두가 아름다운 도반
하늘은 자신을 기댄 것들을
결코 밀어내지 않는다
천지자연은 자신을 딛고 걷는 자들을
일부러 거절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 고요히 보아라
붉게 타며 춤추는 노을을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
같이 길을 가는 사물들
모두가 아름다운 도반인 것을
때로는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사람이 있다
저에겐 여러분들이 소중한 도반이며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넘어서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자본에 포위된 세상의 지배체제를 넘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생명의 길을 걸어갑시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