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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의 획일화, 가면 쓴 행복의 숫자들
2018년 10월 05일 (금) 20:24:19 김광연 flowersinlake@hanmail.net

한나 아렌트(H. Arendt)는 “인간이란 서로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는데, 이를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이라고 했다. 인간은 서로 다양한 가치관과 서로의 다름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서로 ‘다름’에서 비롯된 ‘차이’는 선의의 경쟁과 열정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개개인마다 나타나는 ‘다름’은 남이 하지 못하거나 관심 없는 영역을 찾아서 나의 것을 만들어 가게 해 주고, 이것은 또 다시 차이의 열정과 달란트(재능)으로 발전되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서 ‘차이’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다름’이 아니라 가치를 ‘획일화’ 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서로의 다양성과 가치를 존중하기 보다는 이미 사회에서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맞는 삶이 옳은 것처럼 간주하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오래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를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의 영화 제목에서도 보았듯이, 행복을 성적순으로 평가하려는 사회를 되새겨 보자는 취지의 제목인 듯 싶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서로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받고 있는가? 아니면 다양성이 존중되기 보다는 가치를 획일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모두가 추구하고 원하는 행복마저도 우리는 규격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행복의 규격화

특히 한국 사회에서 행복이라는 가치는 더욱 규격화되어 있다. 우수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찾는 것 그리고 강남에서 사는 것이 신분 상승의 기준 또는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고 있다. 우리는 다시 고전 영화 속의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어야 하고, 행복은 거주하는 집 위치와 평수로 수치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직장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또 누구인가? 우리는 ‘가면을 쓴 행복의 숫자’에 맞춰 획일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사회가 제시한 숫자를 맞추기 위해 살아가고 있고 그 숫자가 행복의 지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행복의 전정한 가치

행복의 가치와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행복이야 말로 기준을 정할 수 없는 가치이다. 행복은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회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기회와 능력을 공동체에 기부하고 발휘할 때 사회 전체가 행복해 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적행복(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이 어쩌면 사적행복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행복은 사적 행복을 넘어 공적 행복까지 이행되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 나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행복까지 추구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숫자(집 평수, 성적, 재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타자와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부자들의 삶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웃음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사회가 제시하는 행복의 획일화를 벗어던지고 개인이 추구하고 싶은 자아실현과 사회 공동체의 공적 행복을 향해 항해를 시작하자. 저 멀리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에서 이미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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