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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따름
소성리 진밭교 평화기도회(18. 10. 4)
2018년 10월 04일 (목) 09:28:17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소성리 진밭교 평화기도회(18. 10. 4)
누가 9:57-62 “온전한 따름”

엊그제『체공녀 강주룡』을 읽었다. 문재인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말한 사람이다. 강주룡은 1931년 조선 최초의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이다. 박서련이라는 작가가 강주룡의 일생을 소설형식으로 풀었다. 소설의 자료는 당시 <동광>이라는 잡지이다. <동광>에서 “을밀대상의 체공녀, 여류투사 강주룡 회견기”를 냈는데, 작가는 그 회견기를 보고 소설재료로 삼은 것이다. 을밀대(乙密臺)는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을밀봉 밑에 있는 정자이다. 고구려가 6세기에 세웠고, 북한의 국보이다.

   
사진은 성주 소설리 사드철회기독교현장기도소에서

강주룡은 32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짧지만 강렬하고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았다. 다섯 살 어린 신랑과 혼인한 후, 남편따라 서간도에 가서 함께 독립운동을 한다. 여자가 무슨 독립운동을 한단 말인가 할 테지만, 강주룡은 톡톡히 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검문이 극심한 기차에서 임산부로 위장해 아슬아슬한 위기를 겪으면서 무기를 무사히 운반한다. 그런 강주룡을 독립군 대장이 각별히 아끼는데, 그게 다른 독립군들의 시기질투를 유발한다. 동료들 속에서 강주룡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다 보고 듣는 어린 남편은 감정이 폭발하여, 강주룡더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강주룡은 남편이 자기를 방어해 주는 대신 귀찮아 한 것에 충격을 받고 그길로 아예 친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반년이 지나고 남편이 큰 부상을 당하고 죽는다.

시어머니는 강주룡이 남편을 죽였다며 중국경찰에 고발해서 일주일동안 지옥같은 유치장살이를 하다 증거부족으로 석방된다. 그렇게 강주룡은 일찍 과부가 돼서 친정으로 돌아가고 친정아버지를 따라 서간도에서 평양 근처로 이사한다. 무능한 아버지는 돈많은 지주에게 딸을 혼사로 판다. 강주룡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아버지에게 분노한다. 혼사를 거부하고 미련없이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홀로 평양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무공장 노동자가 된 것이다. 을밀대 농성 연유는 강주룡이 일하는 회사에서 불경기를 이유로 노동자 임금을 삭감한다. 강주룡은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파업으로 임금삭감 저지투쟁을 한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이 자본가 편에서 노동자들의 권리투쟁을 억압한다. 노동자들이 공장안으로 몰래 들어가서 단식하며, 공장사수 농성투쟁에 들어갔는데 경찰이 강제로 진압하고 해산시킨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노한 강주룡은 처음에 자결을 생각한다. 그래서 광목 한 필을 끊는다. 어디서 목을 매야 사람 눈에 뜨이지 않고 바로 죽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는다. 내가 목을 매면 사람들은 저 사람이 왜 죽었는지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과부가 무슨 흠이 있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거니 짐작할텐데, 그럼 헛된 죽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을밀대로 가서 천신만고 끝에 을밀대 지붕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새벽에 산책나온 시민들을 향해 자기가 왜 여기 올라왔으며, 요구사항이 뭔지에 대해 연설한다. 그 연설내용은 이렇다.

“우리 파업단 49명은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직공의 임감감하의 원인이 될 것임으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깍기지 않기 위하여 내 한몸덩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와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하여서는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우에 올라 왔습니다. 나는 평원고무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노동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뿐입니다. 그러하고 여러분, 구태여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끄려내릴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우에 사닥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곳 떠러저 죽음뿐입니다.”

강주룡의 고공농성은 경찰이 진압해서 수포로 끝나고, 구류를 산다. 그러나 강주룡은 포기하지 않고 회사통근차를 막는 저지투쟁 끝에 공장주와 일대일 교섭을 한다. 교섭결과 임금삭감을 취소하고 강주룡은 희생하는 조건으로 해고된 48명 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킨다. 그 뒤 강주룡은 적색노동조합에 가입한 것이 탄로나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당한 고난 때문에 거의 죽음 직전에 병보석으로 나오고 몇일 후 세상을 떠난다.
강주룡의 일생에 대해 길게 말씀한 이유는 오늘 복음말씀의 사례로 꼭 맞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를 따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 세 가지 사례로 말한다. 머리둘 곳도 없이 고달픈 길이며, 아버지 장례보다 하나님나라를 우선해야 하며, 가족의 인연조차도 단절해야 할 만큼 모진 길이다.

사드철회투쟁은 얼마만큼의 결의와 실천이 필요할까?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가 해빙이고 한반도 평화정세가 오더라도 사드는 저절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미동맹이라는 동아줄과 권력의 생리가 그렇다. 그러므로 사드철회에는 평화를 향한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결의와 실천뿐이다. 사드철회 투쟁할 때, 강주룡의 주체적인 삶을 배우자. 또 예수를 따르는 각오로 무장하자. 우리가 강주룡을 기억하듯이 후대가 우리를 기억하게 하자. 이 땅에 자주를 불러온 선조로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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