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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하지 말라
주일설교문(18. 9. 30) 성령강림 후 스무 번째
2018년 10월 01일 (월) 09:33:25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마가 9:38-50 “함부로 하지 말라”

추석 잘 쇠셨는지요? 우리 부부는 이번 추석에 이명박 생가터와 봉하마을을 다녀왔습니다. 포항도로를 달리다가 불현 듯, 나쁜 놈한테도 배울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찾아갔습니다. 생가터 분위기는 한적했습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 앞에 문상객이 득실거리지만, 정승이 죽으면 빈소가 썰렁하다는 옛말 그대로입니다. 구경 온 관람객은 우리 부부가 유일했습니다. 생가터 마당에 있는 전시판 중 하나는 통째로 뜯겨졌습니다. 저 멀리 밖에 있는 전시판도 아니고 생가터 마당에 있는 전시판이 크게 훼손된 자체가 지금 이명박의 위상을 말해 줍니다. 그곳이 덕실마을이어서 덕실관이라고 이름지은 이명박 기념관에는 직원 두 명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도 사람이 없다가 우리가 오니 반가워서 인사를 합니다. 기념관 주제는 어린시절 가난을 극복하고 크게 출세했다는 내용입니다. 서울시장을 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했으니 출세도 이만저만한 출세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전시물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 입니다. 한 사람이 성공한 게 이 사회와, 이 나라에 어떤 기여를 했나? 하는 의문입니다. 그가 대통령일 때 한 일들이 지금 다 적폐청산 대상입니다. 최근 정부는 이명박이 지시한 용산참사 폭력진압, 쌍용자동차 노동자 강제진압에 대해 모두 국가폭력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한 사람이 크게 출세해서 어떤 지위에 오른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해야 할 공적의무를 얼마나 충실하게 감당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공익 면에서 이명박은 가장 나쁜 사례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리사욕을 채웠고 권력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습니다. 그 결과 이명박은 20년 구형을 받고 10월 5일 일심재판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개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불행입니다.

   

봉하마을 방문소감도 착잡했습니다. 제일 크게 안타까운 장면은 노무현대통령이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달리는 모습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사는 행복이 그 사진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전직대통령의 평범한 일상조차 빼앗아버렸습니다. 대통령의 집도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했습니다.(사저라고 하지 않는다) 현직일 때는 욕먹기 바빴는데, 오히려 퇴임 후에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열두 차례나 찾아온 시민들을 만나러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노무현의 죽음은 이명박의 시기질투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봉하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불현듯 든 생각은, 대한민국 최근의 정치비극은 노무현 서거로부터 시작했다는 소회입니다. 이명박이 노무현을 그냥 놔두었으면, 이 땅의 분열현상도 이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텐데, 특히 최고 권력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았으니, 감옥 보내는 것은 못할 일도 아닌 게 됐습니다. 남의 가슴에 너무 심하게 못 박지 마십시오. 그게 나중에는 다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좋은 일은 좋은 대로, 나쁜 일은 나쁜 대로 돌려받는 게 하늘의 이치입니다.

지난주에 한겨레신문이 중요한 탐사보도를 했습니다. 목, 금 신문에서 가짜뉴스의 진원지를 추적 보도했습니다.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유튜브 채널 백여 개, 카카오톡 채팅방 50여개를 조사하고 연결망 분석 기법을 통해 생산자와 전달자의 실체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가짜뉴스를 연구한 전문가와 가짜뉴스 생산,유통에 직접 참여한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누가 가짜뉴스를 퍼뜨릴까요? 가짜뉴스의 뿌리는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극우 기독교단체입니다. 이 단체가 생산한 가짜뉴스들을 다른 기독 유튜브 채널과 관련있는 사람들이 유통, 확대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퍼진 가짜뉴스들을 9월 상반기 중 137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유튜브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개신교 가짜뉴스들은 어떤 내용들일까요? 이슬람 할랄단지 특혜, 종교인 과세 개신교 말살, 노르웨이 강간 100% 이민자, 동성애 수업 거부(교사) 해고, 동성애 교육 거절 부모 감옥, 지방분권하면 고려연방제, 스웨덴 난민 강간율 1000배, 동성애 에이즈 발생, 개헌하면 공산주의 국가, 차별금지법 (어기면) 징역형, 동성애자 수명 30년 단축, 동성애 치료 가능 등 22개입니다. 가짜뉴스의 또 한 특징은 아무말잔치입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수간도 합법화된다. 또 기독국가 레바논이 난민을 수용해 이슬람 국가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덧붙이기를, “이슬람은 대한민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화 시킨다는 전략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제 불과 5년 남짓 남았습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주장으로 선동합니다. 이 가짜뉴스들을 압축하면 동성애와 난민 혐오, 북한 적대하기 입니다. 허다한 교회 사람들이 이 가짜뉴스에 현혹돼서 자기 주변에 알리고, 거짓을 확대재생산합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은 이런 옳지 못한 일들을 기독교 단체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극렬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을 죄짓게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논쟁적입니다. 두 가지 쟁점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는 요한으로 대표하는 제자들의 생각, 의식의 문제입니다. 둘은 죄를 짓게 한 손을, 발을 찍어버리라는, 눈을 빼 버리라는, 신체절단의 극단적 말씀은 무슨 뜻인가? 입니다.

첫째 쟁점은 요한이 예수께 한 말입니다.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이상한가요? 요한은 그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대신에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자리에 우리를 넣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따름의 대상은 오직 예수입니다. 다른 이는 따름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은 따름의 대상에 자기들을 살짝 끼어 넣었습니다. 예수와 자기들을 묶어서 우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라는 말로, 자기들을 예수와 동일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외의 사람을 차단했습니다. 자기들이 예수에 관한 일체의 활동을 선점하고 있음을 과시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독점하려 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예수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예수이름으로 한 명이라도 더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땅에는 로마와 거기에 빌붙은 이스라엘 지배세력의 폭압과 착취에 피빨리고 신음하다 더는 견디지 못해 귀신들려 버린 민중이 처처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게 급하지, 그가 어느 그룹에 속해 있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기 그룹이면 한없이 관대하고 자기 그룹이 아니면 제재합니다.

물 한 잔에도 이런 속성이 있습니다. 물 한 잔 대접은 흔한 대접이 아닙니다. 우선권의 문제입니다. 물이 귀한 사막 지형에서 물 한 잔은 생명수입니다. 대접할 수 있는 게 딱 물 한 잔이라면, 이 물을 누가 마셔야 하나요? 지금 그 물이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차별과 배제에서 일순위인 그리스도의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때 그 물을 자기들끼리만 독점하지 말고, 지배세력의 억압에 숨을 헐떡이는 사람에게 주라는 뜻입니다. 물 한 잔의 상은 독점의식을 버리고 가장 작은 사람에게 물을 대접하는 사람이 받는 상입니다. ‘우리’라는 금을 긋는 대신, 귀신에 허덕이는 민중을 최우선하는 실천입니다.

두 번째 쟁점입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찍어 버려라.”(43절)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찍어 버려라.”(45절)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47절) 이 극단적인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이 연속적인 세 개의 말씀은 모두 42절에 걸려 있습니다.

“또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막 9:42)

손과 발과 눈의 범죄가 어떻게 42절과 연관이 있나요?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은 “네가 손으로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을 죄짓게(실족하게) 하거든”입니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역시 “네가 발로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을 죄짓게(실족하게) 하거든”입니다.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은 “네가 눈으로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을 죄짓게(실족하게) 하거든”입니다.

그런데 왜 신체를 절단하라는 말인가요? 죄짓게 한 작은 사람과의 형평을 위해서입니다. 죄지은 작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사람이 누구냐가 헷갈립니다. 실족하게 하는 사람인지, 실족당하는 사람인지. 그런데 문맥상 실족당하는 사람입니다. 실족당한 작은 사람은 죄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지느니, 차라리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지은 작은 사람은 차라리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졌으니, 죄를 짓게 한 그 사람도 차라리 한 손을, 한 발을, 한 눈을 잃은 채 생명에 들어가는 게 서로에게 공평합니다. 실제 작은 사람을 죄짓게 한 일을 통렬히 반성하고 자기 신체를 절단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내가 죄짓게 한 사람이 그 죄 때문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면, 적어도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우리 사회 악한 갑은 자기는 일절 손해보지 않고 죄없는 을에게만 책임과 희생을 전가시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불의하고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경종도 됩니다. 한 손과 발을 절단할 각오가 없으면, 한 눈을 빼버릴 결단이 없으면 남에게도 죄짓게 하는 악행을 삼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멀쩡한 두 손과 두 발과 양 눈을 가지고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작은 자가 늘 부당하게 겪는 일이 무엇인가요?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요? 함부로 하고, 대상화합니다. 더 나아가서 수단화하고 심지어 악용합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 악한 일을 보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자기 욕망의 제물로 삼습니다. 가짜 뉴스에 현혹당한 사람은 그 뉴스가 진실인줄 알고, 거기에 목을 맵니다. 가짜 뉴스에 희생양이 됩니다. 그런데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은 조회수에 따른 광고수익으로 큰 돈을 법니다. 신의 한수는 2900만원, 정규재티브는 2400만원을 번다고 합니다. 이 극우채널들은 사람들을 끌기 위해서 더욱 가짜뉴스 특종을 터뜨립니다. 대중은 가짜 뉴스를 소비하므로 생산자의 욕망실현 대상이 돼버립니다. 정치권력도 불의한 권력이 되는 시점은 민을 섬기는 대신, 지배하고 통제해서 대상으로 삼을 때입니다.

어제 ‘시월항쟁 정신계승 노동자대회’ 집체극에서 민중들이 쌀을 달라고 항의하니까, 지배자가 폭력으로 민중들을 사정없이 진압해서 다 쓰러집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대사를 한다. “조용하니까 얼마나 좋아. 평화롭게 살자구” 잠시 후에 쓰러진 민중들이 다시 일어나서 외칩니다. “당신이 말하는 평화는 뭐꼬? 그런 평화는 부숴버리겠다. 권력자만 좋은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선을 넘어 투쟁합시다” 내가 대상화되지도 말고 이웃을 대상화하지도 마십시오. 그럴 때 죄짓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옵니다. 진정 평등평화세상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그런 세상을 사십시오. 주님의 말씀이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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