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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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다
  • 이수호
  • 승인 2018.08.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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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타하는 태풍은 ‘솔릭’만은 아냐

많은 비와 강풍을 동반한 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던 젊은이가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의해 실종 되는가 하면, 전신주를 넘어뜨리고 논밭을 침수시키는 등 많은 피해를 내고 있습니다.

▲ 2018.8.24. 오후1시 현재 태풍 솔릭의 진로영상(https://earth.nullschool.net)

작년 겨울에 여섯 살, 두 살짜리 애 둘을 데리고, 조그만 밭떼기에 움막 같은 작은 집 지어 귀농한 딸네가 걱정입니다. 돈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이, 아이들 시골에서 키워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내려가서, 남의 밭떼기 조금 빌려 고추도 심고 푸성귀도 가꾸어 자기들 먹고 또 우리들에게도 보내주곤 했지요. 상상을 초월하는 올 여름의 가뭄과 폭염 때문에 기진맥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 태풍이 올라온다니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아빠, 걱정 마. 우리 네 식구 태풍 지나갈 때까지 방 안에 가만있으면 돼. 산에 들에 비 오는 경치 보는 것도 괜찮아요.” 나 안심시키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기들 속은 얼마나 타겠어요? 바람 한 번 세게 휘젓고 지나가면, 이제 막 익기 시작하는 고추고 뭐고 엉망이 될 텐데 말입니다. 큰 시설 농업이나 벼 등 대단위 작물은 큰 걱정이 없는데, 우리 딸네 같은 자작 소농은 큰 재해를 입으면 결정적 손실을 입고 재기불능 상태가 되기 때문에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어촌이나 도시 등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풍 등 재난의 피해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에게 언제나 치명적입니다. 피해를 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구호도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기가 일쑤입니다. 그것은 평상시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집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지요.

지난 8월 21일은, 광화문 지하도에서 장애인들이 ‘등급제와 의무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 6년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2017년 9월 5일 복지부 장관의 방문과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1842일 간 계속되었던 농성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답니다. 농성 해제의 조건 중의 하나였던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부는 일방적으로 장애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서, 또 다시 농성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고 있답니다. 이분들이 가장 억울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과의 약속은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인식입니다.

그날 지하철 시청역에서 있었던 휠체어 장애인들의 준법투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동안 장애인들이 열심히 싸워서 대부분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습니다. 힘차게 싸운 장애인 덕에 노약자들이 오히려 많은 혜택을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직도 일부 전철역에 리프트가 남아있어 큰 사고들이 잦아, 휠체어 장애인들이 시청역에서 줄을 맞춰 지하철을 타는 준법투쟁을 벌였는데, 경찰을 동원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지연 운행에 일부 승객들이 불만을 토로하게 유도하는 듯한 행태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근본적 차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하는 태풍은 ‘솔릭’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막바지에 이르러 집단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공공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급아파트 부근에 장애인 학교 등 장애공공시설이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든지, 장애인 . 노약자 .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혐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오히려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납니다.

바람이 점점 더 세지는 군요. 높은 나무 가지 위의 까치집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흔들리고 있네요. 부람 부는 대로 따라 흔들리는 유연함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문득 전주 시청광장 선전탑과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꼭대기에 까치집보다 더 허술하게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이 떠오릅니다. 이번 태풍에 살아남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나무 꼭대기 까치집의 지혜로 ‘솔릭’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책임을 방기하고 외면하며 무시하는 ‘이 정부와 우리 사회’라는 이름의 태풍 앞에는 날려 가버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결국 ‘솔릭’은 지나가겠지요. 내 딸네도 남은 것들을 보듬고 다시 시작하겠지요. 가족들과 이웃들이 서로 물으며 조금씩 보태고 나누며 힘이 되겠지요. 또 다른 태풍 20호, 21호가 불어온다 해도 서로 잡은 손 놓지 않는 한 우리는 날려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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