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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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십자가
  • 김홍한
  • 승인 2018.07.16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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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커지는 주님 맘을 십자가에 담다

상처 난 십자가, 하나

   

높이 79cm, 우리들의 편견과 차별에 상처받았을 장애우들에게 미안함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상처입은 십자가, 둘

   

사냥을 즐기고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한없이 밉다.

성능 좋은 엽총의 총구가 불을 뿜고, 짐승의 몸에 탄환이 박힐 때, 꼬꾸라진 짐승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짐승은 고통의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간다. 사냥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쾌락의 극치를 느낀다. 낚시의 짜릿한 손맛이라니, 그 손맛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물고기가 죽음의 몸부림을 느끼는 것 아닌가?
야! 이 저주받을 사람들아, 차라리 마약을 해라. 차라리 도박을 해라. 차라리 간음을 해라. 어찌하여 생명을 죽이고 그 죽어가는 몸부림을 즐기는가?

노자는 말했다.

“말달려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馳騁畋獵 令人心發狂)” (노자 12장)

사냥을 즐기고 낚시를 즐기는 이들은 생명을 죽이는 것을 쾌감으로 여기는 미치광이 들이다. 인간 사냥이 허락된 상황이라면 사람 사냥의 쾌감은 짐승사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도 그 쾌감은 몇 십 곱절 더 증폭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 4.3항쟁 때 학살에 가담한 수많은 이들, 베트남전쟁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5.18광주에서 일어난 학살극, 그 학살에 가담한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본래 그렇게 악해서 그런가? 그럴 수 없다.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아들이요 사랑하는 오빠요 동생이었다. 그런데 적당한 환경이 주어지자 광기가 발한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흉악한 로마병정들, 그들도 역시 그러한 사람들 이었다.

나도 가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를 본다. 내 딴에는 견고한 철창 속에 그 악마를 가두고 있지만 극한 상황 에서는 그 철창문이 저절로 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인간의 원죄를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학살당한 이들보다 학살한 이들에게 마음이 더 간다. 내 맘이 이럴진대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그래서 주님은 선한 이보다 악한 이를 더 사랑하시는가 보다.

광기에 인간성을 잃은 불쌍한 인간들에 의해서 창에 찔리고 총 맞아 구멍이 뚫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럴수록 더욱 연민의 마음이 커지는 주님의 맘을 십자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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