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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넓히십시오
지금은 은혜 때요, 구원의 날
2018년 06월 25일 (월) 14:39:53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8. 6. 24) 성령강림 후 다섯 번째 주일
고후 6:1-13 “마음을 넓히십시오”

   
▲ 사진은 2018. 6. 25 사드철회기독교현장기도소에서 강형구님

지난주에 문익환평전을 읽었습니다. 그 여운이 아직도 있습니다. 문목사님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평전을 통해 새로 알았습니다. 대충 아는 것과 자세히 아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한 사람이 감동을 받거나 변화하는 데 있어서 대충 아는 것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해롭습니다. 선입견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초심의 자세로 접해야 감동을 받든 변화의 기폭제가 되든지 합니다.

요즘 남북관계의 급속한 해빙을 보면서, 문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문목사님은 민간차원에서 남북관계에 처음 물꼬를 텄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분단선을 최초로 허물었습니다. 1989년 3월 25일 평양에 들어가서, 김일성주석과 두 번 회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고문 자격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허담과 4. 2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 공동성명이 나중에 김대중, 김정일 두 정상이 합의한 2000년 6.15 공동선언의 토대가 됐습니다.

평전을 읽으면서, 새삼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쩌면 이렇게도 밀접하게 조국과 민족에 연관되고 맞물려 돌아가는지! 문목사님이 평생을 역사의 한복판에서 분단극복과 민주주의 수호,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향해 선구적으로 달린 것을 볼진대, 그 길은 이미 히브리 예언자가 걸어간 길이고, 이 민족이 반드시 이뤄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문목사님의 개인사가 역사와 연관맺은 구체적인 한 예가 정전회담입니다. 이 회담은 문목사님 인생역정의 전환점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도쿄 유엔사령부는 영어에 능통한 사람 둘을 선발해서 정전회담 통역원으로 보냈는데, 거기에 문익환과 정경모(방북 동행)가 뽑힌 것입니다. 원래 문목사님은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일제 때, 북간도 명동에서 공동체가 좌익의 폭력에 명동 땅을 다 내주고 떠나야 했습니다. 또 해방 후에는 아버지가 소련군에 여러 차례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정전회담 통역을 통해서 민족분단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게 됐습니다.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분단을 확정짓는 현장의 통역관이 문익환과 정경모라는 것, 또 분단의 실무현장을 지켜본 두 사람이 이후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되는 것은 역사의 우연성을 가장한 기막힌 섭리입니다.

문익환목사님과 박정희 사이에 묘한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박정희의 집권기간이 18년이고, 문목사님이 세상에 나가서 활동한 세월도 18년입니다. 1976년 3.1구국선언을 주도하면서 처음 세상에 나왔고 그 일로 바로 옥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돌아가실 때까지 세월이 18년입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만약에 우리나라 현대사에 박정희의 18년만 있으면 참담했을 것입니다. 오로지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국민을 짓밟고 국가를 능멸한 권력자의 역사만 있었으면 한국민 모두가 비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오직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여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전생을 바친 문목사님이 계셔서 박정희가 드리운 어둠의 역사를 완벽하게 상쇄했습니다. 그 18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 12년을 옥살이를 했습니다.

삶의 자리에 따라 인간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문목사님이 김대중에 대한 평입니다. “3.1 사건 때 피고가 18명인데 가장 신나하던 사람이 김대중씨였어요. 정치인들과만 사귀다가 어린애 같은 사람들(재야인사)을 사귀어 알게 되는 게 그리 신나는 일이었다는 거죠. ‘계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자기의 장부에 한 자본으로 써넣은 계산능력을 버리지 않은 사람-그가 김대중 씨였지요. 나는 그게 불쾌하기는커녕 유쾌하기조차 했다구요.” 뼛속까지 정치인과 뼛속까지 예언자의 성품을 가진 사람의 유전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문목사님은 돌아가실 때 통일운동 진영에서 많은 비방을 받았습니다. CIA의 간첩이라느니, 안기부의 명령을 받는 스파이가 아니냐는 중상을 받았습니다. 급진적인 학생들은 제2의 이광수가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문목사님이 기존의 통일운동에서 벗어나 ‘통일맞이’라는 보다 더 대중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입니다. 급기야는 문목사님이 남쪽 의장으로 있던 범민련에서도 문목사님을 프락치라고 비방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범민련의 가까운 사람들과 밥먹는 자리에서 그런 비방에 대해 화를 내다가 몸이 안 좋아졌고, 그 날 저녁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노선이 달라지면 어제의 동지를 그것도 시대의 큰 어른을 금새 적으로 대하는 풍토가 인간사에 대해 비애를 느끼게 합니다. 저도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부딪히면, 화가 나고 상대가 미워집니다. 그 때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노선과 주장이 다르더라도, 우선 사람을 위하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야 합니다. 내 주장이 세상의 중심이 돼서 다른 사람을 대상화, 수단화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십시오.

오늘 성서말씀 요지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도 나와 같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말합니다.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일에 흠을 잡거나 무슨 일에서나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3절)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합니다. 4-10절입니다. ‘하나님 일꾼의 신앙역정’이라고 제목을 붙일 만 합니다. 신앙역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 번째는 고난목록을 말하고 두 번째는 고난들을 감당한 덕목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 일꾼이 겪은 상황목록입니다.

고난목록은 4-5절입니다. 처음 나오는 “많이 참으면서”는 모든 고난에 임하는 태도입니다. 고난 목록은 환난, 궁핍, 곤경, 매 맞음, 옥에 갇힘, 난동, 수고, 잠을 자지 못함, 굶주림입니다. 모두 아홉 가지입니다. 일신의 안녕이나 영화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런 조항은 한 개도 없습니다. 오직 신체의 고난일색입니다. 실제 이 중 한 개라도 나에게 닥친다면 얼마만큼 견딜 수 있을까요? 우리 신체의 연약함을 생각할 때 고난이 닥쳤을 때 우리가 참고 견딜 수 있는 바탕은 하나님 은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재앙에서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막 13:18)고 했고, “주님께서 그 날들을 줄여 주지 않으셨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막 13:20)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독재자들은 고문으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신체를 학대하는 고문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엠비시 사장 최승호씨가 만든 다큐영화 “자백”을 보면, 끝나는 장면에 고문으로 허위자백해서 간첩이 된 역대간첩조작사건 리스트가 한참 나옵니다. 이 간첩단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됐거나, 정상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 몸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무현정부 때 사학법을 반대하는 목사들이 십자가를 매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십자가 바닥에 바퀴를 달아서 끌고 갔습니다. 신앙의 상징인 십자가 매는 것도 힘들어서 바퀴를 다는 사람들에게 신체고통이 닥친다면 그들은 다 도망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신앙을 지키는 첫걸음은 신체의 고난을 견디는 일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고난을 참고 견딘 덕목을 말합니다. 6-7절입니다. 순결, 지식, 인내, 친절, 성령의 감화,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8가지 덕목이 섬김의 원천이라고 고백합니다. 덕목들 중, 순결 다음에 지식이 나오는 점을 유념하십시오. 무슨 뜻인가요? 순결은 지식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맹목적 순결은 얼마나 위험한지요! 어제 대구에서 퀴어축제를 했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 정체성이 이성애 말고도 매우 많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법과 제도로 성소수자들의 성권리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동성애 반대에 꽂혀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수간을 해서 문란하다고 합니다. 어떤 근거도 없는 거짓주장을 천연덕스럽게 합니다. 또 동성애는 병이므로 전환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주장을 계속 합니다. 이와 같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2016년 3월 ‘세계정신의학회(World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자의 말보다는 성경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해석의 책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따지면 성경을 어떻게 믿느냐고 그냥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최 공부를 하지 않고 검증하지도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주장합니다. 성의 순결을 지킨다고 동성애를 계속 혐오, 정죄한다면 그것은 순결이 아니고 자기도 모르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결은 지식으로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일꾼이 겪는 상황목록입니다. 양손에 드는 무기는 오른손에는 공격용 칼, 왼손에는 방어용 방패를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대처하라는 말입니다. 상황목록은 11가지입니다. 이 열한 가지 상황은 사람 사는 모든 경우입니다. 이 상황목록을 보면, 좋은 경우와 안 좋은 경우가 한 쌍으로 나옵니다. “영광을 받거나”와 “수치를 당하거나”가 한 쌍이고, “비난을 받거나”와 “칭찬을 받거나”가 한 쌍입니다. 영광만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의 큰 어른에게도 프락치라고 비방하는 세상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상황들도 모두 역설적인 표현들입니다.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등등. 이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어떤 특정 상황이든 간에 그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양면성이 있고, 또 다른 상황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 상황에 얽매어서 헤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론으로 하는 말이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마음을 활짝 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우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되레 마음문을 닫았습니다. 바울이 산전수전 겪은 일이 대개는 신체고난이고, 별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황인 것에 대해 부담을 느껴서 옹졸해 진 것입니다. “어휴, 어떻게 저렇게 살아, 아무리 하나님의 일꾼이라지만, 그것은 나를 다 포기하라는 말이 아닌가” 하는 안정욕구가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습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옹졸해지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라고 합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내 마음에서 내 뜻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현존을 모시는 일입니다. 또한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상황이 아무리 크고 무겁더라도 우리를 감싸는 은혜와 구원에는 비길 바가 못 됩니다.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굳게 서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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