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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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하나
  • 박철
  • 승인 2018.06.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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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울 집 큰 아들 호빈이가 여섯 살 때 저 스스로 한글을 깨쳐 일기며 편지를 쓰는데 문장이 끝날 때마다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연필에 침을 발라 새까만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다. 하나의 문장은 마침표가 찍힌 후에 비로소 완성되고 읽혀진다. 매사에 맺고 끝내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을 문장이라 하면 마침표를 찍은 뒤 우리는 무엇으로 읽혀질까?

“어쩌면 우리는 /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는 황규관 시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했다. 난 삶이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나이브(naive)한 낙관주의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보고 열심히 산다고 한다. 사람에겐 참 다양한 얼굴이 있지만 내게 열심히 산다고 평하는 이들은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이 많고, 그 많은 일들을 꽤나 열심히 치르면서 살아내고 있다고 보아서 그러는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말하는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라는 물음은 어쩌면 내가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모든 삶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의 인생(Life on the Road)’이다. 아무리 거창한 삶에게도, 또 비루한 삶에게도 소멸은 공평하다. 그 사실이 나에게 있어서도 역시 빛나는 희망이다. 내가 지금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불멸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멸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망각하기 위한 것이다. 삶을 모르기에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공자처럼 말이다. 내 생의 마지막 강렬하게 마침표 하나 찍고 죽고 싶은 소망이 있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 마침표 하나, /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마침표 하나
-황규관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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