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8.9.19 수 12:04
> 뉴스 > 시사/논평 > 칼럼 | 종교영성
     
기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닮으려 하는 것
2018년 06월 21일 (목) 09:08:39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집회서 48:1-14, 마태오복음 6:7-15 (시편 97:1-8)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8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 6:7-15)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10절)

교회는 기도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정의를 내려 왔습니다.
그 하나가 기도란 하느님께 마음과 정신을 여는 것이라는 정의이고, 또 하나는 기도란 하느님과 사랑 안에서 만나는 것이라는 정의입니다.
하느님과 사랑 안에서 만난다는 정의는 어제의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바로 기도의 은밀성입니다. 골방이 필요한 이유가 됩니다.
기도가 하느님께 마음과 정신을 여는 것이라는 정의는 오늘 주님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께 마음과 정신을 여는 것이라면 기도할 때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크게 두 가지 전제를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첫째가 기도는 하느님을 아빠(엄마)로 여기며 드리는 것이고
다음은 '우리'라는 공동체의 염원을 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이가 하느님께 대하여 아빠(엄마)라는 고백을 할 수 없다면 이미 그 기도는 물 건너간 것입니다.
이 고백은 신뢰의 고백이요 우선성의 고백입니다.
신뢰 없는 마음가짐으로는 기도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하느님을 육신의 아빠 엄마처럼 여기고 바라보며 "나는 어려서 잘 모르니 아빠(엄마) 뜻대로 해주세요. 그리 되면 저와 세상이 가장 잘 될 줄 알아요." 하고 의탁하라는 기도입니다.
또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 생각이 아빠(엄마)의 뜻에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하고 하느님의 뜻을 구하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기도가 이기적인 것이 된다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나' 중심의 기도라면 그것도 이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의 지향은 '나'가 아니라 '우리'가 잘 되는 데로 모아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이는 아빠(엄마)가 나의 아빠(엄마)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들의 아빠(엄마)이시라는 사실을 당연한 전제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는 형제자매로 여기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 될 때라야만 아빠(엄마)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진리의 세계에서와 같이) 땅에서도(욕정의 세계에서도) 성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용서에 대한 가르침으로 기도에 대한 교훈을 마무리하십니다.
우리의 용서가 하늘의 용서와 맞닿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닮으려 하지 않으면 기도는 허당이라는 말씀으로 들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닮으려 하는 것'이 주님의 기도에서 가르치는 기도의 바른 지향이라고 결론지으시는 것 같습니다.

   
▲ 기도는 하느님을 아빠(엄마)로 여기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또한 '우리'라는 공동체의 염원을 담아내야 된다. 그래야 기도의 목적인 하느님의 자비로 물들 수 있다.

김기원의 다른기사 보기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교회 꿈꾼다
아버지의 마중
울어라 꽃아
풍요를 너머 쓰고 버리는 시대
경건, 행동하는 신앙
잠깐 가실까요
환경문제는 곧 평화의 문제 !
아버지와 기독교의 인연
민주주의 한 걸음 나아갔다
다 네가 먹은 것이다
인류, '호모 데우스'를 꿈꾸다
<유전자 정치와 호모 데우스>는 1부 맞춤아기와 유전자 편집 ...
로컬미식라이프, '배려의 식탁' ...
노동자의 이름으로
한국교회 지붕 햇빛발전소 설치를 ...
9월 3일(월) 오후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포천 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산...
온생명살림 기행팀과 함께 평화나무 농장을 방문한 내용을 정리하...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