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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은밀성
알곡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8년 06월 21일 (목) 09:04:05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열왕기하 2:1;6-15, 마태오복음 6:1-6;16-18 (시편 31:21-24)

1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2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5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17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18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들어주실) 것이다."(4,6,18절)

신앙은 하느님과 나, 나와 이웃, 나와 나 사이에서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도, 자선, 단식입니다.
기도는 어버이 하느님과의 은밀한 대화요
자선은 이웃에 대하여 샘물처럼 솟아나는 사랑의 열매요
단식은 불완전한 나를 다스리려는 자정행위입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신앙생활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종교행위가 요식화 되거나 위선이 될 개연성이 있습니다.
해서 주님은 이것들이 하느님께가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하십니다.
그 어느 것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눈길만 의식하며 해야 할 신앙행위들입니다.

하느님과의 커넥션은 은밀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영혼의 맑은 바닥 고요의 세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종 그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방향성을 상실한 모습입니다.
하느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는 신앙이라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의 초보자도 아닌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을 종종 보아야 하는 현실은 씁쓸합니다.
나팔을 불어서라도 자기 의를 과시하려는 유치한 행동이 몸에 밴 이들이 많습니다.
왼손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몸에 배어서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모를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가르침일 텐데, 그런 유치한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하니 그야말로 왼손 하는 일 오른손도 모르는 새에 자기 의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근본을 다지지 않고 껍데기만 배우려는 신앙은 이런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초는 소홀히 하면서 온갖 활동에 매몰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선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방향성을 상실하는 일, 참 어이없는 일 같으면서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여 신앙인이라면 하늘과의 밀회에 길들여져 있어야 옳습니다.
은밀히 그분과 대화하기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 속에서 그분 만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절제 속에서 그분의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늘 가늠해야 마땅합니다.

오늘 나의 신앙이 그런 식으로 드러나길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눈길의 중심을 그분께 향하는
알곡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은총의 선물을 청하며 하루를 엽니다.

   
▲ 하느님과의 커넥션은 은밀하다. 그분은 영혼의 맑은 바닥 고요의 세계에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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