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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을 권한다
굴종하지 않고 ‘아니오’하는 사람
2018년 06월 21일 (목) 08:56:03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김형수 지음, 『문익환평전』 830쪽짜리 책이지만, 내용의 흡인력에 끌려 이틀 만에 독파했다. 좀 안다고 아는 게 아니다. 어설프게 알아서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무엇보다 저자가 공을 많이 들였다. 5년에 걸쳐 썼다니 그럴 만 하다. 그만큼 충분히 사유하고 가라앉히고 농익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연보 따라 써 내려가긴 하지만, 매 장마다 저자의 관점이 짙게 배었다. 사건마다 일일이 의미부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약전을 읽는 식으로 가볍게 접근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평전형식을 빌린 문학작품이다. 문체가 유려하다. 저자의 유려한 서술은 그 때 그 시절, 북간도 조상들의 삶을 눈앞에 훤하게 보여준다.

문익환목사를 깊이 취재한 것은 기본이고, 주변 인물들의 증언, 책들까지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한 게 놀랍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화, 일화들이 쏟아진다. 노태우의 6.29선언이 전두환의 작품인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그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미국은 1987년 6월 20일, 백악관에 한국대책특별반을 편성해 운영하는 등 당황한 빛을 보이더니, 한국 민중의 시위가 반미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직선제 개헌 수용을 종용했고, 전두환 정권은 노태우 대표를 내세워 6.29 선언을 발표하게 했다.”(661쪽) 이 간단한 역학관계를 알아차리는 게 어찌 이리 둔한지!

내가 꼽는 이 책의 최고압권은 이한열 장례식 때 문익환목사의 연설 대목이다.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26명의 열사 이름을 아무런 순서 없이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대로 외쳐 불렀다. 땅과 하늘에 대고 외치는 절규였다. 그리고 끝. 단 한마디의 군더더기도 없이, 문익환의 외침은 고요하게 퍼져나갔다. 연세대 집회장을 꽉 메운 대중들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감히 어떤 연사도 흉내낼 수 없는 너무도 문익환적인 연설이었다. 한국 군중언어사에 기록될 최고의 연설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고조되어 그 순간에 만들어진 역사의 대열을 빠져나가는 이 없이 대장관을 이루며 시청으로 향했다.”(664쪽)

문익환목사의 일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희한한 우연의 일치를 발견했다. 박정희가 권력을 탐하여 민주주의를 시궁창에 처박으며, 국민을 짓밟은 세월이 18년인데, 문익환이 예수사랑의 현장을 학교와 성서번역에서 한국사회로 이동하여 바친 세월도 18년이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을 주도하며 세상에 나와서 1994년에 떠났다. 18년 동안 민족분단을 애통해하며 이 땅의 민주와 조국통일에 온 몸을 바쳤다. 박정희와 완벽히 대조되는 18년이다. 그 18년 동안에 꼬박 11년을 여섯 차례 감옥에서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바탕은 무엇인가?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문익환목사가 예수의 말 중 가장 경외하는 말이다. 부끄럽다.

박정희 유신독재,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에 민주와 자주, 통일을 위해 투쟁한 역사가 없었으면 이 나라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문익환목사와 무수한 동지들, 함께 한 민중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 땅이 비루하지 않게 한 또 다른 복이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자신감을 준다. 지금은 왜 투쟁하고 평화를 구하는가? 어떤 앞날에 이 때를 회고할 때,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다. 굴종하지 않고 ‘아니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최현대사를 개괄하고 싶으면 『문익환 평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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