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란 두 곳을 연결해주는 노정(路程)이다. 그래서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말은 길을 떠난다는 말과 일치한다.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다양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목적지에 쉽게 도달할 수 있고, 힘들게 도달할 수도 있다. 쉽고 빠른 길만이 능사는 아니다. 구부러지고 비탈진 길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갖는 차원에서 걷는다면, 그것이 최고의 길이 되는 셈이다.
인생여정도 마찬가지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곳에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기도 하고 힘들고 더디게 도달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자기 자신의 몫이고, 선택한 노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나름대로 최고의 생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가는데 있어 평탄한 길만 골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곧 누군가가 나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의 선택이 그릇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편하고 빠른 것을 좇는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더디고 불편한 것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이준관 시인은 여유를 갖고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자고 한다. 이는 구부러진 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또 시인은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고 말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구부러진 길’을 더디게 가면서 찾아내는 가치는 틀림없이 값질 것이다.

구부러진 길_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 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