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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행복한 날
어린이날은 노는 날이 아닌 ‘운동’하는 날이었다
2018년 05월 06일 (일) 15:40:26 노관범 dasanforum@naver.com

5월 5일, 올해도 어린이날이 찾아 왔다.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아이들 손을 잡고 집 밖을 나서는 어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유명한 놀이공원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인산인해로 북적이는 인파에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것이다. 해마다 달라지지 않는 어린이날의 이러한 풍속도는 그 기원을 찾아가면 1975년 5월 5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 어린이날이 법정공휴일이 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밖으로 나들이를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서울에서는 창경원, 종묘, 덕수궁, 경복궁 및 어린이대공원에 부모 동반 14세 이하 자녀가 입장하면 무료입장을 허락했고 목욕탕, 이발소의 어린이 요금도 이날만큼은 절반으로 할인된 가격이었다.

어린이 해방, 하늘 나는 새처럼 달리는 냇물처럼

그런데, 이 해 어린이날은 해방 후 맞이하는 30번째 어린이날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1923년 처음 시작된 어린이날은 1938년 중단되어 일본제국주의 말기의 암울한 시절을 숨죽여 지내면서 살아왔다. 1946년 어린이날은 부활하였고 이듬해 〈어린이날 노래〉가 새롭게 세상에 나왔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의 이면에는 해방 공간에서 재개된 어린이날의 기쁨이 담겨 있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의 기쁨, 푸른 벌판을 달리는 냇물의 기쁨은 어린이의 기쁨인 동시에 어린이날의 기쁨이기도 하였다.

어린이날을 부활시키고 〈어린이날 노래〉가사를 지은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이 노래를 ‘어린이 해방가’라고 불렀다. 해방? 그렇다. 1945년 이 땅이 해방되었고, 1946년 어린이날이 해방되었지만, 정작 어린이는 해방되지 않았다. 윤석중(1911∼2003)은 1975년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특별한 어린이날에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반세기를 회고하며 그것이 “어린이 3·1운동이요 어린이 민족운동이요 어린이 해방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 운동의 핵심을 어린이 인권 지키기에서 구하고, 어른들의 마비된 양심을 되살리고 어린이들의 짓밟힌 동심을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불굴의 의지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해 왔다고 자부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이라는 노래 가사는 기쁨과 더불어 해방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의 해방, 푸른 벌판을 달리는 냇물의 해방은 어린이날의 해방인 동시에 어린이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린이의 해방은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중요한 이념이었다. 초창기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주역이었던 김기전(1894∼1948)은 〈소년운동의 선언〉을 기초하여 어린이를 윤리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천명하였다. 〈소년운동의 선언〉은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 때 공표된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중요한 선언서인데, 국제적으로 어린이 인권에 관한 제네바 선언이 나오기 한 해 전에 국내에서 나온 어린이 인권 선언서였다. 김기전이 제시한 어린이 해방이 윤리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물론 경제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경한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가 어린이 문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던 것이 사실이다. 1924년 제네바 선언만 하더라도 선언문 5개 항 중에 어린이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처지에 있어야 하고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초창기 어린이 운동에 해방의 이념이 충만해 있었기에 우리나라 첫 어린이날이었던 5월 1일이 공교롭게 국제노동절인 메이데이와 겹치는 날이었지만 여기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5월 1일이 첫 어린이날로 정해진 사연은 일단 천도교의 어린이 운동과 관계있다. 1921년 김기전을 중심으로 정식으로 출범한 천도교소년회가 이듬해인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정하고, 다시 그 이듬해인 1923년 천도교소년회 사무실에서 소년운동 대표자들이 모여 소년운동협회를 결성, 동년 5월 1일을 ‘조선의 어린이날’로 정해 적극적인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날 서울에서는 소년운동가 이하 소학교 학생들까지 1천여 명이 모여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김기전이 기초한 어린이 인권 선언이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졌음은 물론이다. 기념식이 끝난 후 200명의 어린이가 서울 곳곳을 돌며 집집마다 선전문 12만 장을 배포하였다. 깃발을 들고 선전문을 돌리며 시기를 행진하는 풍경은 오늘날의 풍경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어린이날은 노는 날이 아니라 ‘운동’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5월 1일 어린이날, 곡절 끝에 5월 5일로

어린이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어린이 운동이 하필 5월 초하루에 시작해야만 했던 특별한 사연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김기전은 5월이 1년 중 대우주의 회춘기이기 때문에 5월 초하루가 모든 생명이 탄생하는 천지 만물의 생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이날이 세계적으로 뜻 깊은 날, 곧 메이데이임을 인정하였다. 어린이날과 국제노동절의 동시성 때문에 어린이날은 ‘소년 메이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어린이날이 5월 1일에서 5월 5일로 바뀐 것은 소년운동의 좌우 분화와 관계있다. 표면적으로는 1926년 순종 황제가 세상을 떠나 국상 중에 어린이날을 기념할 수 없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 어린이날을 양력 5월 1일에서 음력 5월 1일로 연기했으나 이날도 인산일에 포함되자 민족주의 계열의 소년운동협회는 행사를 중단했던 반면 사회주의 계열의 오월회는 음력 5월 5일 단오일로 날짜를 바꾸어 행사를 강행하려 했다. 1927년에도 5월 1일에는 비가 와서 기념식만 진행하고 시가행진은 5월 3일로 연기하였는데, 이 해 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는 기념식도 행진도 따로따로 진행하여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결국 1927년 사회적으로 좌우연합의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가 통합되어 조선소년연합회가 창립되었고, 창립 후 어린이날은 5월 1일에서 5월 첫째 일요일로 변경되었다. 평일에서 휴일로 날짜가 변경된 것은 학생들의 원활한 참여를 기하기 위해서였다.

1937년을 끝으로 중단된 어린이날은 1946년 부활하였다.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이해 5월 5일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5월 5일은 식민지시기 거행된 어린이날의 마지막 날짜로 그것의 상징성은 무엇보다 식민지시기에 만들고 지켜온 어린이날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이날은 부활되어 기념식은 치러졌으나 시가행진은 금지되었고 심지어 학생들이 휘문중학교에 가는 것조차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 해방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는 실천적인 날이었지만 정치적으로 해방된 공간에서 도리어 그러한 실천은 위험시되었다.

이제 어린이날은 법정공휴일이다. 어린이들에게 행복한 날이다. 하지만, 과연 어린이날을 만들고 지켜냈던 우리의 지나간 숭고한 이념은 완전히 실현되었는가? 어린이날을 그저 노는 날로 흘려 버리는 것은 아닌가?

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교수

· 논저
〈기억의 역전〉소명출판, 2016
〈고전통변〉김영사, 2014
〈대한제국기 실학 개념의 역사적 이해〉한국실학연구 제25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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