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이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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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이신 주님
  • 양재성
  • 승인 2018.04.2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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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예수공동체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
요한복음 10장 11~18절, 시편 23편


■ 4.19 혁명
오늘은 4.19혁명 기억주일입니다. 4.19혁명은 1960년 2월 3월과 4월에 일어난 비폭력 민중혁명입니다. 당시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부패정권타도를 외쳤고 이에 놀란 이승만 정권은 국민을 향해 총을 발포하였습니다. 이에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거리에 나섰고 심지어는 초등학교 아이들도 부모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침묵하던 지성인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승만은 하야를 선언하였습니다. 200여명의 사람이 희생되었지만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고귀한 희생위에 세워졌습니다.

■ 문익환 목사의 '꿈을 비는 마음'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자리 점지해 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철들고 셈들었다는 것들은 다 죽고
동남동녀들만 남았다가
쌍쌍이 그 앞에 가서 화촉을 올리고
그 박달나무 아래서 뜨겁게들 사랑하는 꿈,
그리고는 동해바다에서 치솟는 용이 품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얻어
딸을 낳고
아침 햇살을 타고 날아오는
황금빛 수리에 덮치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문익환 목사는 서울역에 가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실랑이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가시기도 하였습니다. 문 목사님은 민중을 대표하여 분단을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 할 때 그 분단을 넘어 단신으로 북한을 찾아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부둥켜안고 우리 민족은 하나라고 우리 통일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문 목사님은 돌아와 오랜 감옥생활 끝에 결국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만 문 목사님의 행동은 북한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고 통일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하였습니다.

■ 선한 목자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선한 목자였습니다. 양을 안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 양 무리를 인도하시는 인자하신 주님의 모습은 초대 교회 공동체가 주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권력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받는 사람들, 기득권층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 일상적 삶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노예들, 민중들, 장애자들, 가난한 사람들이 전부였던 초대교회 공동체는 저 혼자서는 설 수도 살 수도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누군가 절대적인 존재로부터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것은 그들의 이상이며 꿈이었습니다. 그것이 목자와 양의 관계였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중요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그 역할을 감당하였다면 새로운 교회 공동체에선 예수님이 그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는 목자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예수의 십자가는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 정신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여 양들을 살리는 목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계약에도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 하나님의 희망과 사람의 소망
오늘 성경 본문 중 하나는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에서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이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아쉬움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최상의 삶)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풍광 아닙니까? 목자가 양을 이끌고 꼴을 먹이는 장면은 샬롬(평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 어린 아이가 저보다 몇 배는 큰 소를 이끌고 꼴을 뜯게 하는 장면은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근심과 걱정, 두려움과 불안이 없는 안전한 삶은 우리 시대의 로망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아쉬움이 없는 삶이 시작된다는 초대교회 공동체는 오히려 근심과 걱정이 많고 염려와 두려움이 많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안전한 사회를 열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목자인데 예수가 우리들의 지도자인데 뭐가 걱정인가라며 초대교회 공동체를 다독였습니다.

"샬롬"은 "평화"(peace)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말은 "샬렘"(완전하다, 건전하다)이라는 말의 명사형입니다. 샬롬은 하나님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모든 계약 조건을 다 이행했을 때에 주어지는 완전한 관계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회복, 이웃과의 채무관계 청산과 올바른 관계회복에서 샬롬은 실현됩니다. 불의가 없고 공의와 진실이 행해지는 완전한 사회가 샬롬이 실현된 사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서 제자도를 가르치십니다. 특히 베드로를 부르시어 간절히 당부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면 당신의 양을 먹이라는 당부입니다. 오늘날 소명을 받은 목회자가 다지고 또 다져야할 말씀입니다. 양은 목회자들의 양이 아닙니다. 주님의 양입니다. 자신들이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린 선한 목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주님의 양을 잡아먹는 목자들이 많습니다. 사이비 이단이라고는 하지만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씨는 마음에 드는 양들을 하나씩 잡아먹었습니다. 아마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을 내 양을 먹어라로 잘 못 알아듣고 행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 기독교의 일탈과 박근혜 종교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생긴 기현 상 중에 하나가 일명 태극기, 성조기 부대의 반동입니다. 이들의 대부분이 수구 기독교라고 합니다. 이들은 지금도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좌익 주사파들의 모함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으며 주사파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익을 위해 사상을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더 깊이 병들어 박근혜 종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을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탈을 쓴 사이비입니다.
어제도 광화문 광장에 나아갔습니다. 많은 인파를 향해 외치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는 길거리 전도자였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선포는 성서적이지도 않았고 사랑을 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하여 정죄하고 저주를 퍼 붙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 할아버지 왜 그래 하며 할아버지의 정신 상태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 때문에 하나님이 불신되고 예수가 외면당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신앙은 가벼운 몇 마디로 전해질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건 투쟁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선한목자와 양
삯을 받는 사람은 삯꾼입니다. 삯은 명예. 권력, 돈을 의미합니다. 교회와 신앙을 자신의 출세가도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삯꾼인 게 맞습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사익을 위해 국가 권력과 국민을 이용한 사태입니다. 이명박은 대통령의 자리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삯꾼들입니다.

이들에겐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국민이 죽든 망하든 아파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불행한 역사입니다.

거기에 기업들의 갑질과 해고는 도를 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외국기업의 먹퇴 전술은 근절해야 할 적폐중의 적폐입니다. 거기에 보수 언론의 기만과 농간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자유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언론은 이미 적폐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어쩌다 당한 운명적 처형이 아니라 예수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입니다. 도덕적 의무감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무상의 은혜에 대한 투신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처참하게 죽을 줄 알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죽어서 가는 천당보다는 살아서 만들 하나님 나라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한목자는 그저 양들을 안전하게 잘 돌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선한목자는 먼저 하늘의 뜻을 길 삼아 죽기를 각오하고 걸어가는 예언자였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신하는 혁명가였습니다.

아울러 주님은 사랑, 정의, 평화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또한 억압받는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 행동입니다. 주님은 죽임을 당했으며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왔고 따랐습니다. 삯꾼들은 온갖 특권을 추구했지만 주님은 온갖 특권과 맞서 저항하셨습니다. 특권을 잃지 않고 특권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삯꾼은 예수를 미워했고 거부했습니다. 그들에 의한 온갖 루머와 비난이 예수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 예수 공동체
초대 교회 공동체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일명 예수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하였고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하였습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공평한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기부하였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사용하였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고 투쟁하였습니다. 로마 제국과 헤롯 정권, 불의한 종교권력과도 맞서 싸우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를 살아냈고 예수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 예수가 계셨습니다. 예수의 삶을 이어 예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완벽한 부활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예수공동체입니다. 예수의 삶에서 희망을 보고 그 삶을 실현하고 예수의 길을 걷고자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 주목받는 두 지도자
한반도는 지금 혁명 중입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합니다. 그래서 유행하는 말이 이거 생방송 맞아? 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모두들 당황스러운 표정들입니다. 2018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시작된 한반도 해빙과 평화는 급물살을 타고 막혔던 분단의 벽을 뚫고 여러 차례의 고위급 회담과 민간 교류가 이어지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고 그 준비과정에서 상당한 성과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와 남북 단일기를 든 선수단의 공동 입장, 대규모 응원단 및 공연단 파견, 남측의 답방 형식의 대규모 공연단 방북, 고위급 회담 성사와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파견을 통한 제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최초 북미정상회담 합의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쾌거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이제 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지 말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위한 선언을 제안하였고 김정은 정부는 신속하고도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북한은 지난 21일 김정은 위원장 주재 하에 열린 당 전원회의를 통해 내린 결정을 언론에 공개하였습니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핵무기 핵기술 이전하지 않을 것, 국제사회와의 적극 대화, 경제건설 총집중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습니다. 이에 청와대가 구상 중인‘한반도 평화협정’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북한의 비핵화선언과 종전, 평화협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놀라운 소식이라고 극찬하였습니다. 아울러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말 대단한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매파인 미국의 매티스 국방장관도 북한과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고 국무장관 내정자인 폼 페이오는 트럼프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였고 그 회의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의 성사가 한반도의 운명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위한 거룩한 역사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우린 그간 비정상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의 잘 못이었습니다. 이제 진정한 꿈이 필요합니다. 혼자 꾸는 꿈은 개꿈이 되고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합니다.

먼 곳의 벗에게 쓰는 편지 / 도종환 시인

벗이여 우리 만나 이런 것을 서로 자랑하면 어떨까
그대와 우리 중 누가 더 많이 서로를 사랑했는지
그대들과 우리 중 누가 더 서로를 그리워했는지
먼 곳의 벗이여 그대들과 우리가 만나
이제는 누가 더 총칼을 많이 쌓아두었는지 자랑하지말고
누가 더 이땅의 하나됨을 간절히 소망했는지
누가 더 한 나라 한 겨레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었는지
벗이여 그런 마음을 서로 털어놓는다면 어떨까
이제는 누구의 곳간이 더 넉넉한가 견주지 말고
어떻게 서로 나누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 밤새워 의논하고
서로를 쓰러뜨리던 기억보다는 서로를 부축해 세울 수 있는 마음을
누가 더 똑똑했던가를 겨루기보다는 누가 더 많이 부끄러웠던가를
터놓고 다독이며 새도록 밤을 밝힐 순 없을까
그대들과 우리 포연 자욱히 묻었던 옛날 옷 벗어 묻고
보통강 물줄기에 빨아 헹군 그대들 옷과
북한강 상류에서 빨아 입은 우리 새옷을 입고
누가 더 전쟁을 미워했는가를 이야기하는 일은 어떨까
벗이여 이땅의 구석구석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우리 함께 찾아나서 삽질해 묻으면서
삼천리를 우리의 새로운 땀으로 적시면 어떨까
우리가 못다 했던 사랑 능금빛 얼굴 우리 착한 아들딸들에게 주어
그대들의 아들과 우리의 딸들이 서로 사랑하게 하면 어떨까
벗이여 그렇게 우리가 화해와 축복의 잔치마당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춤추며 만나는 일은 또 어떨까
아직도 만날 수 없는 먼 곳의 벗이여
이제 다시는 싸움으로 만나지 말고 화해와 용서로 만날 순 없을까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순 없을까
내가 먼저 거짓을 버리고 네가 더 너그러워져서
압록강 낙동강 물이 큰바다에서 만나듯 섞이며 만날 순 없을까
목이 타듯 그리운 사람들이여 목마르게 애타는 산하여 사랑이여.

국민이 성공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더 이상 한반도의 운명을 강대국에 맡기지 말고 우리민족끼리 새로운 평화로 나아가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고 응원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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