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독을 즐긴다
상태바
나는 고독을 즐긴다
  • 김홍한
  • 승인 2018.04.04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부로 외로우려 하지 말라
깊은 밤 문득
시계소리만 방안을 진동하는데
그 소리가 참 낯설다.

선거철이라,
정객들의 입은 분주하건만
거리는 쓸쓸하고

봄이 되어 훈풍이 불건만
어찌하여 손발이 이리 시리운고

나 있는 곳은
밤이면 지극히 깊은 적막
밀폐 잘되는 이중문이
멀리 개짓는 소리도 막는구나.

엊그제,
벗을 만나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생각을 흐려놓고 있어
마음을 진정코자 마당에 나가니
하늘이 몹시 시끄럽다.
무수한 별들이
마구 말들을 쏟아 내는데
어찌하여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가?
숱한 인간의 언어 속에 살다보니
자연의 언어에는 귀가 막혔나보다.

아! 홀로된다는 것,
대부분의 민초들에게 홀로되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다.
“이별보다 더 아픈건 외로움…”이라는 노랫말이 마음에 저린다.
노랫말은 민초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어디 그 정서가 오늘날만의 정서겠는가?
언제나, 어느 민족에게나 민초들의 정서는 같다.

홀로 된다는 것은 깊은 두려움
그러나 외로움이 사무쳐야 그리움이 사무친다.
그리움이 사무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수년전 나를 잘 아는 지인이
“목사님은 고통을 즐기는 것 같아요” 했는데
어찌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고통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즐긴다.

만남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만남이 많은 삶은 얄팍한 삶이다.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을 자랑하고,
그 관계 속에 존재감을 느끼는 이들은 홀로설수 없고 홀로서기를 두려워하는 소인배다.

분주한 삶은 가벼운 삶,
학자가 분주하면 학자가 아니다.
고독 속에 학문에 정진할 수 있어야 학자다.
목사가 분주하면 목사가 아니다.
고독 속에 기도하고 명상하고 성서를 묵상할 수 있어야 목사다.

외로움은 삶을 깊게 한다.
“골방에 들어가라”는 말씀은
외로워지라는 말씀이다.
외로워야 별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외로워야 곡식이 영그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외로워야 죽어가는 짐승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외로워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외로워야 하기에
초대교회 교부들은 사막으로 갔다.
수도원의 높은 담장 속에 숨었다.
불교의 선승들은 골방에서 면벽했고
유가의 선비들은 愼獨(신독)했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 가셔서 기도를 하셨다. (눅5장)

그러나,
함부로 외로우려 하지 말라
상대 없는 싸움에 섣불리 덤비다간 미쳐버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